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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Jun 08. 2024

비 오기 전

"비 오겠다." 

후덥지근한 날씨는 학교 앞 분수에서 물놀이하기에 딱이다. 앞머리가 이마에 유난히 달라붙은 딸아이가 나처럼 늘어지지 않고 생기 발랄한 이유는 분수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아이가 부럽다. 비 오기 전날의 이 무거운 공기가 원망스럽기는커녕 아이에겐 반갑기까지 한 거다. 친구들과 분수놀이를 할 빌미가 생긴다. 

 주말이면 기저귀 찬 아기들과 물총을 든 초등학생들로 붐비는 동네 공원 분수를 중학생들이 몰려서 들어간다고 해도 뭐라 할 이가 아무도 없다. 동네 주민 누구든 이 정도의 더우면 너네들도 들어갈만하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금요일 3시면 영어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다녀온 꼬마들이 돌아오기엔 이른 시간이다. 

 분수에서 물놀이할 친구가 그립다. 이럴 땐 산책이 제격이다. 딱히 누군가에게 분수 앞에서 애들 물놀이하는 거 보면서 아이스티 한 잔 하겠냐고 묻기 어렵다. 학군지에 사는 중년이 훅 전화해서 훅 누군가 나타나길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애들 이야기, 공부시키는 주제, 남편 등 그 어떤 이야기도 나누기 싶지 않다. 그냥 무거운 공기를 함께 청량하게 덜어낼 편한 누군가가 함께였으면 싶지만, 그런 친구는 내겐 없다. 

 딸이 작년까지 신던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단지 옆 산책길을 나선다. 길 초입부터 붐빈다. 나만 더운 게 아니다. 중장년으로 붐비는 산책길에 나서니 부모님 생각이 난다. 이 시간에도 약국을 지키고 있을 두 사람은 번갈아서 약국 옆 호수를 산책하고 있으실 게다. 

 부지런히 혼자 걷는 아무렇게나 입은 차림의 중년 여성들만 바라본다. 저녁식사를 준비할 필요가 없을는지도 모른다. 아님 나처럼 저녁 준비 할 힘을 충전하기 위해 나왔을는지도 모른다. 사람보다 개가 더 많다. 털이 수북한 개에게 옷은 또 왜 입히는 걸까? 혀를 늘어뜨린 저 개들이 주인에게 옷 좀 벗겨달라고 말할 수 없으니 어서 비가 내리길 비는 수밖에 없다. 

 비가 올게 분명하다. 개미의 움직임이 빨라서 밟지 않으려면 조심해야 한다. 걷는 길을 가로지르는 개미들의 속도가 빠르다 보니 피하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할 지경이다. 무당벌레들이 낮게 난다. 날개가 무거운 게다. 어깨를 스쳐 지나가는 무당벌레들에게 내 이 거대한 몸을 부딪히지 않게 조심하게 한다. 내일은 산책길에 지렁이들이 잔뜩이겠구나. 비 오면 마주치게 될 인연들에 대해서 미리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아니어도 다양한 생명들이 산책길을 함께 한다. 외로운가 싶다가도 이럭저럭 고려할 인연들이 많아 나름 마음씀이 바빠진다. 이만하면 됐다 싶다. 인연 없는 동네로 귀임해서, 코로나를 지난 중년이 이 많은 생명들과 1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잘 살고 있는 셈이다. 물놀이 즐길 친구도 커피 한 잔 하겠냐고 말을 건넬 이웃이 없어도 괜찮다. 

 어둑해진다. 드디어 쏟아진다. 산책길은 이제 완전히 조용하다. 숲길 저 앞까지도 나뿐이다. 이것 또한 나쁘지 않다. 이젠 숲이 함께여서 다. 떨어지는 비를 맞을 준비를 하는 나무들이 보인다. 손가락 사이로 비를 몰고 올 시원한 바람이 스친다. 나뭇가지 사이로 불기 시작하는 바람을 숲은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북적이던 산책길에선 보이진 않던 나무가 비 오기 시작하는 이 순간엔 길의 주인이다. 

 외로울 틈이 없다. 고독한 중년이라고 스스로를 안쓰러워하는 건 순전히 착각이다. 어림없는 착각이니 셀프 불쌍해하기는 이제 그만하자. 산책길에선 인싸 중 인싸다. 자, 이제 내게도 사람 친구가 생길 것만 같다. 혼자서도 이렇게 잘 노니 함께 놀기 괜찮은 인간이 되었다. 저기요, 여기 괜찮은 사람 한 명 있어요! 

사진: UnsplashThe Cleveland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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