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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Jul 18. 2024

불안이와 인턴

 처음 그녀에게 말을 걸었을 때 그녀는 내 오지랖에 속하지 않았었다. 스크린 속 수없이 많은 구인 플랫폼 상의 이름, 학교, 어학연수, 어슴푸레한 주소들뿐 중 하나일 뿐이었으니까. 사람인에서 100개의 구인 모집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는데, 그중 구인 메시지를 수락한 이는 딱 3명이었다. 그 3명 중에서 지원을 한 이는 단 2명이었다. 100통의 말 건넴에 답한 단 두 명. 그중 1명은 면접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가장 먼저 내게 답한 이었고, 단 한 명의 지원자다. 최종 합격자는 당연히 그녀고, 그녀는 수없이 많은 거절을 헤치고 내 앞에 실제 하는 합격자다. 작은 체구, 작은 목소리의 그녀는 인프제, 나와 동일하다. 

 그녀를 면접 본 그녀의 팀장에게 인상에 대해서 물으니 마뜩지 않아했다. 대표 또한 그녀를 칭하며 한참 모자라다 했다. 내 눈엔 팀장도 대표도 자신의 자리에서 여전히도 만들어져 가고 있는 미완인데, 그들은 사회 초년생의 마케팅 직원을 탐탁지 않다고 단칼에 자른다. 서울시가 그녀의 임금을 지원하기에 사실 그녀의 출근에는 회사가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다. 그녀를 향한 그들의 선입견과 불만 어린 눈길은 혹시 1년 전 나에게 해당되었던 것은 아닐까? 


 나의 점심친구에 대한 이야기다. 6월 27일 입사니 이제 그녀와 점심을 먹은 횟수가 10회를 넘어간다. 그녀와 밥 먹길 즐긴다. 그녀 덕분에 사실 나도 내 자리에 맞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래서, 이 어린 인턴에게 나는 한없이 고맙다. 마치 처음 회사에 출근하던 날, 내게 기회를 줄 대표와 내게 일을 가르치는 사수에게 고마웠던 그 시간들로 돌아간 기분이다. 

 두 번째로 그녀와 밥을 먹던 날, 20년 만에 경력을 잇게 된 나의 이야기를 주절주절 해댔다. 그녀를 볼 때마다 나의 시작을 생각했다. 그녀의 출근 첫날, 출근 이튿날을 볼 때마다 나의 처음, 나의 이틀을 떠올렸다. 그래서일까, 겨우 두 번째 마주한 그 점심자리에서 나의 첫 출근날과 사고침을 여과 없이 말했다. 아주 놀라운 경험이었던 것이, 그녀의 눈엔 눈물이 고였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말을 덧붙이면 그녀는 나의 1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해버릴 셈이었다. 성수동 화장실에서 혼자 울먹거리던 날, 대형 사고를 치고 호흡이 잘 안 되는 퇴근길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며 터졌던 눈물 이 모든 시간을 마치 읽는 듯한 눈빛이었다. 신기한 찰나였다. 

"자기 검열 금지요."

'울컥'을 누르기엔 명령어가 제격이고, '눈물'을 쑤셔 넣기엔 미래에 대한 계획이 적당하다. 인턴 첫날을 그녀는 퇴근하고 자취집으로 돌아가 수도 없이 되돌렸을 것이다. 그녀가 없는 자리에서 일어났던 그녀에 대한 선입견과 판단을 마치 아는 듯이 한껏 움츠려 없는 듯이 지냈던 그 첫날을 머릿속에 녹음하고 녹음기를 재생해서 무엇을 잘못했더라 하고 수없이 되풀이했을 터이다. 안 봐도 뻔하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러니, 그녀에게 명했다. 부디 자기 검열하지 말고, 어깨를 펴라고! 그래야 인턴 기간 6개월을 이어갈 수 있다고 말이다. 



 공황장애에 대해서 글로만 써봤지, 가족들 외에 누구에게도 말해본 적은 없다. 하마터면 점심 친구 인턴에게 털어놓을 뻔했다. 화근은 '인사이드 아웃 2'였다. 불안이를 향해서 기쁨이가 던지던 말, " 라일리는 놓아줘."을 듣고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주룩주룩 비 내리듯 감정이 쏟아 내렸다. 불안이의 손을 기쁨이가 잡았을 때가 '저렇다 불안이는 라일리를 삼키고, 스스로도 산산이 부서져 버릴지도 몰라! 누가 불안이 좀 구해주세요, 제발.' 하고 마음으로 절규하던 타이밍이었다. 

 인턴과 먹던 점심에서 대화거리를 찾다가 마침 화요일이라 주말에 뭐 했냐고 주제를 짜내다 나온 이야기였다. 설마 그녀에게 내 속의 '불안이'의 존재에 대해서 알리게 될 거라곤 꿈도 꾸지 못했다. 

" 저 지금도 울 것 같아요."

또 인턴의 큰 눈에 눈물이 스쳐 지나간다. 

"저희 집 애들은 완전 '따봉이'였어요!"

 너스레를 떨며 눈물을 또 삼켰다. 혼자여서, 나만 이런 거 같아서 힘든 시간이었다. 세상 최약체 중 가장 약체가 나이며, 내가 약체 중의 1등이며 그래서 외롭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맞장구를 친다. 살을 섞고 산 남편도, 내 속으로 나은 자식도 그녀보다 더 공감했던 날이 없었던 거 같은데, 인턴님은 양자컴퓨터 정보처리 수준으로 나만의 비밀, 지나간 공황의 시간들을 이해한다. 

 공황의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노라고 그녀에게 메시지를 심어가며 말을 건넸다. '불안이'에게 사로잡혀, 라일리가 숨을 쉬지 못했던 그 1초를 나는 너무나도 잘 안다. 그 시간의 고통과 그 시간이 다시 다가올까 봐 세상 두려운 나의 근심을 그녀에게 전했다. 그녀가 내게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어주기 때문이다. 

 우린 들어줄 수 있는 이에게 말하고 싶어 한다. 꺼낸 이야기가 120% 이해될 수 있는 상대를 평생 기다리기도 한다. 함께 사는 가족, 가까이 있는 배우자가 내 이야기를 100% 받아들이는 그 귀한 순간이 오면 세상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그런데 별 노력 없이도 내 말을 다 알아듣고, 자꾸자꾸 내 과거로 함께 돌아가는 그녀는 신기하다 못해 두렵기까지 하다. 그녀가 나를 spoil 할지도 모른다. 나쁜 버릇이 들을지도 모른다. 누구나에게 그녀처럼 나를 이해하길 기대하면 어쩌나.... 나의 '불안이'는 또 미래를 대비하려고 한다. 




 

 부디 보석같이 빛나는 인턴을 대표와 팀장이 알아봐 주길 빈다. 그래서 그녀가 울지 않는 밤을, 후회하지 않는 퇴근길을 즐기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내내 그녀가 함께 일할 수 있길 기도한다. 그녀는 경력 이음자 호박씨 커리어 인생 최대의 복리후생이다. 

 미래를 대비하는 나의 '불안이'는 라일리의 불안이처럼 실력이 좋다. 적당히만 하면 꽤나 쓸만하다. 인턴을 위해 '불안이'를 소환해 본다. 계획하고, 준비해 보자. 고고, 불안이! 나의 불안이는 그녀를 위해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할 예정이다. 내내 그녀와 함께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테다. 적당히, 적절한 수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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