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박씨 Jul 03. 2024

진짜 신문 기사, 가짜 이야기.

엄마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다. 남들도 다 하는 걸 해야 했고, 남들이 가진 걸 나도 갖어야만 했다. 그런 불안감에 부랴부랴 첫째를 임신했다. 죽기보다 가기 싫은 거지 같은 회사를 안 갈 수 있는 방법은 임신이었다. 번듯한 학교과 취업 잘 되는 전공을 지닌 20대가 집으로 숨으려면 그것보다 더 편한 이유가 없었다. 

경력을 이어보니 경력 단절이 된 많은 사연들이 들린다. 20년 전 업을 사랑하고 치열하게 일도 하고 싶었으나,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치열한 스토리들이 세상엔 많다. 은근슬쩍 나도 그 스토리에 숟가락을 얹고 있다. 

 일이 하기 싫어서 임신을 했다. 출근하지 않기 위해 가정을 꾸렸다. 진실은 이렇게 덮였다. 일정 때가 되면 무엇을 해야 하는데 어느 나이가 되면 어느 정도 이뤄야 하는데라는 굴레 앞에서 스스로를 깎고 끼워 맞추는 사람이 29살의 나였다. 누구는 신혼집을 어디에 차렸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누구는 패물로 무엇을 받았다에 열받아했다. 자식도 그런 기준의 한 가지였다. 다들 있는 자식, 하나만 있으면 되지 했더니 둘째가 나를 찾아왔다. 그 무엇도, 그 어떤 것도 내 뜻대로 계획대로 진행되는 게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 세월이었다. 

나 하나는 부리는 게 오히려 제일 쉬웠다. 뭐든 참고 뭐든 맞추면 됐으니까. 가면을 쓰는 게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었다. 엄마라는 타이틀도 내겐 가면이었다. 타인이 보기에 좋은 엄마, 옆집 아이가 보기에 괜찮은 엄마, 이웃 여자가 부러워하는 육아, 딱 그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건 누워서 떡 먹기였다. 

 엄마라는 이름 또한 내겐 가져야 하는 대상일 뿐이었다. 20년이 지난 오늘 일하는 엄마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서고 아이들이 돌아오는 시간에 퇴근하고 남편, 아이들과 같이 먹을 저녁을 준비한다. 여전히도 나의 생활은 절반의 "해야 함"이 담겨 있다. 무릇 마흔 후반의 기혼 여성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지키는데 시간을 50% 넘게 할애한다. 여전히도 나는 해야 할 일을 지켜나가는 사람이다. 

 20년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가족이 아이들에게 기대어 산다는 점이다. 그들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없이는 살 수가 없달까? 양육은 내게 인생학교이며 스승이다. 요 근래 남편과 함께 하는 양육은 지금의 내겐 최고의 기쁨이고 희열이다. 

그래서, 거짓말을 했다. 여전히 나는 스무 해 전 명품 하나 구비하듯 아이를 갖었던 스스로를 받아들이긴 힘들다. 솔직해질 용기도 없다. 유명 신문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다. 서울시 주최로 경력을 잇는 기회를 제공한 프로그램의 성공 케이스로 서울시 여성가족 재단이 날 신문기자에게 추천한 경위였다. 경력을 이을 용기를 내지 못하거나, 가정 안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고군 분투 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용기를 붇돋워주고 싶어 인터뷰에 응했는데, 그런 나의 의도를 위해서는 거짓말이 필요했다. 어떻게 경력이 단절되었는지의 과정에 대해 꼬치꼬치 묻자 더없이 마음이 불편해졌다. 전화로 진행되는 인터뷰라 통화를 끊고만 싶었다. 


"일을 그만두셨던 그 이유가 무엇이셨나요?"

"임신하면서 일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어요."


아니다. 노력했더라면 가능했을 것이다. 힘은 들었겠지만 불가능하진 않았런지도 모른다. 

자신이 없었다. 대기업도 아닌 회사, 명품가방 하나 살 수 없는 푼돈급의 월급, 이 둘 다 싫었다. 아이야 내 속으로 낳을 테니 내 마음대로 되겠지. 그럼 취업하기 전처럼 다시 뭐든 잘 해내는 완벽한 내가 될 수 있을 거라 셈하고 있었다. 


경력단절자였다가 경력이음자로 살고 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세상에서 아이를 나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으로 살고 있다. 가정을 돌보는 이의 가치가 월 300으로 환산되는 나라에 존재하고 있다. 나의 이야기는 잘 포장되어 신문 한 구석을 채울 것이다. 진실은 여기에 남겨져있다. 그리고 아이들. 아이들은 잃었던 엄마를 찾았다. 아이들이 나의 것이 아니라고 깨닫기 전까지는 엄마가 아니었을 것이다. 낳은 사람으로 살았던 시간을 지나 그들과 눈을 나란히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진짜 엄마가 되는 과정이 나의 진짜 이야기다. 



대문 그림 : https://unsplash.com/ko/%EC%82%AC%EC%A7%84/%EB%93%9C%EB%A0%88%EC%8A%A4%EB%A5%BC-%EC%9E%85%EC%9D%80-%EC%97%AC%EC%84%B1%EC%9D%98-%EA%B7%B8%EB%A6%BC-1wFSlVTIHh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