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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Nov 22. 2024

인턴을 키우며

 백지가 막막할 때가 있다. 스크린에 껌벅거리는 커서가 두렵다 싶을 때가 있다. 내 앞에 서 있는 이의 눈을 바라보다가 무엇을 말해야 하나 방향을 잃어 무섭다 싶은 순간이 요샌 종종 있다. 하던 말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다. 내가 뱉은 말이 어떻게 전달될지 알지도 못하면서 지껄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점심을 함께 먹을 동료가 생겼다. 그 동료들이 버티지 못하고 나갈까 봐 무서웠다. 이 어리고 젊은 이들이 과연 이곳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다. 나로선 감당하기가 보통이 아니었던 지라, 오로지 기댈 곳이라곤 브런치에 글쓰기뿐이라서 잠들며 아침에 눈뜨기가 싫었고, 눈떠 출근하면 사무실 들어가기가 무서웠었다.

  그만큼  내겐 적응의 시간이 고통스러웠다. 이젠 으레 출근한다고 생각하며 출근길을 나서는데 이 변화에는 2명의 인턴 덕분이다. 그들과 함께할 점심에 무얼 먹지 이 단순하고 원초적인 생각으로 집을 나서는 거다. 도시락을 먹을까, 그들과 나가서 먹을까, 내가 이렇게 생각해 주니 이 회사 그만두지 않겠지 등등의 생각들을 하면 어느새 사무실에 도착한다. 10시까지 그 누구도 출근하지 않아 적막함 속에서 집중적으로 일하던 그 한 시간은 온 데 간데없고, 9시 10분에만 도착하면 사무실에 인턴 둘이 모니터 앞에 있다.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하는 이 두 젊은이들이 좋아죽겠어서, 그 둘이 그만두면 안 되는데 하고 기도하듯 출근하는 게다. 



 

점심은 싸간 음식을 덥히는데 5분, 먹는데 10분 다해봐야 채 20분이 안된다. 식탁의 주제는 대부분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먹으면서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만큼이나 서로 동감하기 쉬운 주제가 어디 있겠는가? 먹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절로 내게선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가족 이야기를 하다 보면 쉽게 결혼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두 인턴 중 한 명은 지난 4월에 결혼을 한지라 공감도 잘한다. 다른 인턴은 큰 아이와 같은 나이의 막내 동생이 있어 아이들에 대한 주제를 함께하기도 쉽다. 

 오래 지나간 옛이야기처럼 전업주부로 살던, 온전히 가정과 시댁이 전부였던 나의 이야기를 꺼낸다. 반쯤은 미쳐가던 지난 시간도 지금은 존재하지 않으니 두리뭉실하게 웃으며 꺼내본다. 

"아, 무서워요."

미혼인 인턴은 많은 나의 시누들과 시어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입을 딱 벌린다. 나라서, 나였기 때문에 그 과정들이 있었던 건 아닌 게 분명한데 그때에 난 그들의 시선 속에 갇혀 거의 미쳐가고 있었다. 그런 미친년의 시절을 이제 나는 점심시간 반찬거리로 이야기한다. 그들로부터 자유로워진 순간 난 분명 단단해졌으니 말이다. 그들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까? 

"아, 무서워요."

2세를 준비하는 기혼인 인턴은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를 하면 눈빛이 흐려진다. 한 달 한 달을 학원비와 스터디카페비, 그리고 아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요구하는 그들의 즐거움에 쓰이는 돈들에 대해서 말할 때면 그녀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한참을 내 이야기를 하니라 보따리를 풀다가 그들의 얼굴을 보고 말을 급히 멈추게 된다. 너무 내 이야기만 했다. 꼰대처럼 이 모든 것들은 어찌어찌 다 지나간다며, 다 늙은 이처럼 너네들이 겪는 어려움 따윈 암 껏도 아니라고 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나에 대해 아무리 설명해도 누구 하나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었다. 그 누구도 내겐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인턴들 덕에 출근을 하는 주제에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긴커녕 내 이야기하는데만 열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반성 또 반성한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탓에 4시 언저리에 나 혼자 퇴근을 하는데, 퇴근길에 나서면 늘 후회를 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내일은 절대 내 이야기는 하지 않으리. 오로지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겠다고 주먹을 꼭 쥐어본다. 


 


그들은 나와 비슷하게 시간당 최저임금에 가깝게 근로계약을 하게 되었다. 대표는 그들과 면담을 하고 오더니 기분이 좋아했다. 둘 다 기백이 넘친다며 신나 하길래, 그게 다 나 덕이라는 메시지를 눈빛으로 쏘아 보냈다. 내가 인턴들 데리고 3개월을 밥을 먹었는데 당연한 거 아니야 싶었다. 

 인턴 한 명이 점심시간에 속을 털어놓는다. 한 오라기의 감춤도 없이 연봉과 근로 환경, 복지 그 무엇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업무도 싫단다. 나도 이 회사 사람이고, 겉으로 보기엔 회사에 애정도가 상위에 속하는 사람인데 그녀는 점심시간을 기다렸다가 내게 부지런히 하소연을 한다. 우리의 점심 식탁은 그만큼 솔직하고 노골적이었나 보다. 

 인턴들을 향한 애정에 찬물이 부어졌다. 이제 내 두 눈에 씌워졌던 콩깍지가 벗겨진 셈이다. 애를 써서 회사를 사랑하고 이 공동체를 애정하고 싶게 해 본들 결정은 그들의 몫인 것을 오늘에서야 안다. 나란 인간은 이리도 쉬이 지친다. 아니 지친다기보단 이젠 그 무엇이든 쉽게 풀어준다. 

주부로 살면서, 며느리로 살며, 오로지 엄마라는 이름을 짊어지고 살던 시간 속에서 나는 미쳐 갔고, 그때의 나 안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게 오지랖과 걱정, 집착이 아니었던가? 어렵사리 경력을 이어가는 이곳에서도 미쳐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애정이라는 이름을 붙인 집착은 그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나 하나뿐이라는 걸 지금은 잘 알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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