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박씨 Dec 03. 2024

세상의 선생님들에게

 세상엔 별의별 선생이 존재한다. 이름만 선생인 사람도 있고, 한 학생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만큼 마치 태어나길 선생인 듯한 인연도 있다. 각자 다양한 사연으로 선생이 되었지만, 그 영향력은 제 각각이다. 세상엔 수없이 많은 의사가 있지만, 그 의사들이 세상에 끼치는 영향력은 저마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 목숨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며, 자신의 업을 세상을 이롭게 쓰기도 또는 해치는데 쓰기도 한다. 그것이 오직 선생과 의사뿐이겠는가만은 우리가 '님'이라는 붙이는 몇 안 되는 직업에게는 바라는 바가 있다. 그래서 우린 굳이 굳이 그 직업을 가진 이에게 '나는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또는 '당신에겐 저를 도울 힘이 있습니다.'라는 마음을 남아 '선생님'이라 부른다. 


자정이 넘어도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비어있는 아이 방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큰길까지가 걸어 나갔다. 아이에게 50통이 넘는 전화를 걸고 나니, 집에 있던 작은 아이에게 연락이 왔단다. 따뜻한 곳에서 잘 있으니 전화 걸지 말라고 인스타 DM을 보내왔으니 그만 돌아오라고 한다.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는 아이가 밉지 않았다. 별 일 없이 돌아왔으면, 아이가 없는 방은 내 선잠 한가운데 꿈이었길 기도하며 눈을 감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이는 학교 주변을 밤새 맴돌았단다. 새벽 5시 어귀에 잠이 많이 오고 피곤하니 열린 교문으로 들어가 교실에서 잠시 눈을 붙였단다. 10시가 넘자 눈이 절로 감기는 아이는, 교복을 입고 오지 않았다는 담임에게 혼도 난 김에 쉬는 시간을 틈타 말도 없이 집으로 와 수면 잠옷으로 갈아입고 한숨을 푹 자고 있었다. 

아이의 행적은 아이가 사라 자고 학교 CCTV를 샅샅이 살핀 담임이 내게 전화를 걸었다. 오전 10시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온다. 담임이다. 

"어머니, 집에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흥분한 목소리로 아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무리 걱정이 돼도 내가 너보다 걱정이 덜 되겠는가 싶은데 그런 내 마음을 그는 알 리가 없다. 10년의 교직생활에 학년부장도 되고, 앞으로 교감도 되고, 교장도 되고, 같은 교정 안에 유명한 일반고에서 교장까지 해 먹어야 하는데, 네 자식이 내 앞길을 가로막고 있어. 

그의 목소리에 담긴 메시지를 찢긴 가슴으로 다 받아낸다. 잠을 자지 못해 있지도 않은 힘을  짜내 그에게 차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무단이탈이 학교 규칙을 어기는 거란 이야기 해주셨나요?"

그러자 그가 소리를 지른다. 그 내용을 이야기해 줬는지를 묻는 나에게 그는 자기 속을 다 보인다. 

더 이상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는 선생이다. 내 새끼가 집에 가서 자기 방에서 곤히 자고 있으니 그럼 된 거다. 나로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선생, 너란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또렷하게 알 수 있는 기회를 준 아이에게 감사해야 한다. 

대표에게 아이가 학교를 무단이탈해서 집에 다녀와야겠다며 죄송하단 말을 연거푸 하고 택시를 탔다. 

담임에게 문자가 왔다. 다음 주로 잡힌 시험감독은 취소하겠단다. 이제 더 이상 내게 전화할 용기는 그에게 없는 셈이다. 끝까지 사람 속을 찢어둔다. 아이가 학교를 무단 이탈한 날과 내가 시험 감독 봉사에 응한 날은 9개월의 시간차이가 난다.  선생님은 내게 시험 감독 또한 허락하지 않는다. 


그가 자신과 똑같은 담임을 만나길 빈다. 어린 그의 아이가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하길 기도한다. 그의 심장도 어제의 나만큼 아프길 바란다. 나는 선생님도 의사 선생님도, '님'이 붙는 그 어떤 업도 가지지 못한 채 여기까지 살아온 엄마일 뿐이라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에게 고통이 일어나길 비는 것뿐이다.

 세상의 어떤 귀한 자리에 있든 간에 부디 엄마라는 이름 붙은 사람의 상처에 생채기 내지 말아 달라. 내 아이가 사고를 쳐도 그대는 그 무자비함과 무감정함, 공감력 없는 냉철함으로 교장도 교육감도 할 테니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