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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Dec 07. 2024

청계산에 사는 이유

 집을 나서본다.부지런히 기쁘다는 듯 힘차게 나서보지만 사실은 거짓이다. 다들 그렇지 않나?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 어떤 것도 사실은 즐거운 마음으로  끝까지 하는 이는 인간이 아닌거다. 

 산에 오르고 싶은 자가 어디있을까? 그 힘든 걸 때론 살아돌아올 수 없을 수도 있는 산을 내 발로 걸어올라가는 거다. 지구의 무게를 이기고 구지구지 산을 오르는걸 하고싶은 자가 있겠는가?

 많다. 오늘은 청계산엔 온통 할아버지들이다. 한 번 살아보고 싶어서 태어난게 아니라 태어나보니 살고있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정신 차려보니 오롯이 혼자라 지독한 외로움에 치를 떨다 어떻게해서든 떨쳐보려고 떼로 다니듯 산도 우루루 함께 몰려다닌다. 나와 같은 등산복을 입고 비슷한 등산화를 신고 나의 무리는 거울이다. 안심의 거울이다. 그들을 보며 안도한다. 아,나는 혼자가 아닐 수 있으니 잠시라도 외롭지 않다고 말이다.

 이 청계산의 늙은 남성들 사이에서 혼자 산을 오르내리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까페라떼를 마시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집에 있으면 지독하게 외롭기 때문이다.

 침대에 45도 쯤 기대 서너시간도 거뜬히 유튜브를 보는 남편은 외로움의 증명이며 내 실패의 산 증인이다.

"자도 자도 힘들지?"

눈을 마주치지 않고 허공에 대고 그가 내뱉는다. 그의 말에 답하지  않는다. 내겐 그를 일으킬 기력도 동기도 흥도 없다. 최선은 그가 스스로를 일으키도록 기다리는 수 밖에.

그러니 집을 비워주고 그를 혼자 남겨두면 된다. 그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온전히 외롭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오늘의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최고의 방법이다. 

몸을 움직일 꺼리를 전화로 알려준다.

빨래, 청소,설겆이 간단하지만 하기싫은 그 일들 때문에 난 지금껏 살아있다. 내게 맡겨진 돌봄의 치닥거리들이 나를 살게했다. 왜 사냐고 스스로에게 초단위로 물었었다. 살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다. 

 먹고싶은 게 뭔지 쥐어짰고 밥을 짓고 스스로를 위해 밥을 떠먹이고 고기를 씹는 그 시간속으로 남편을 밀어넣어본다.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시간을 주기위해 자리를 비워준다.

 선행은 작은 선물을 준다. 약수터 나무 벤치에 앉아 땀을 말린다. 드뷔시를 듣는다. 새로  산 등산화를 조성진의 피아노에 맞춰 까딱거린다. 혼자라 이 시간을 단 한 알도 놓치지 않고 움켜쥘 수 있다.

 타인을 위해 시간을 쓰고 몸을 움직인다. 살아야하는 이유다. 잘 살아야한다. 막 살지 말고 찬찬히 아주 느린 속도로 잘 살아가야만한다. 그래야 살아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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