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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Dec 09. 2024

생일

이혼이 별 게 아니라 한다. 누구나 살다가 마음에 안 들면 헤어질 수 있는 거라고 그들의 선택에 박수를 치는 그런 세상이다. 그래서 이혼한 이들이 다시 사랑을 찾아 나서고, 그들의 마음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척을 하며 그들을 응원하고 위로한다. 어째서 이다지도 바스락 건조하며 어째서 이렇게도 가벼운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와이프를 위해 계엄도 선포한다고 한다. 이건 또 무슨 관계인가 싶다. 우리들은 관계 맺음에 혼란스러워하고 끝도 없이 아파하고 서로에게 생채기를 낸다. 탄핵은 불발되고 지하철 노조는 파업에 들어갔다. 국정이 어지러워도 아이들의 기말고사는 치러지고, 나는 대치동 국어학원으로 교재를 받으러 가다 지옥철 속에 갇혔다. 

 오래간만에 마주한 사람들로 가득한 지하철에 잠시 숨이 가빠오다 말았다. 나만 생각하면, 나를 둘러싼 이들은 위협이지만, 우리라고 생각하면 우린 서로에게 상처 입히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가련한 대중일 뿐이다. 그러니, 외롭지 않다 여기고 스스로를 다독거렸다. 숨 막히는 인파를 삐집고 어떻게든 차칸에 올라타고 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오히려 내 병은 나아가는 듯하다. 


생일 아침이라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계엄의 밤부터 불안 지수가 높은 친정 부모님의 심기는 상태가 많이 좋지 않다. 그러니 "엄마, 내 생일이야!"라며 50에 가까워오는 내 평생 중 가장 철딱 서니 없고 명랑한 목소리로 엄마에게 건넨 자축인사는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대꾸를 받았다. 아침 일찍 전화하지 말 것을 싶었다. 힘을 내어본다. 

"엄마, 내 생일은 별거 아니어도 엄마는 나 낫느라 많이 아펐을 거잖아." 

왜 안 그랬을까? 엄마의 엄마는 막내딸의 출산에 함께 하지 않았고, 엄마의 남편은 출근을 했을 것이다. 오롯이 전적으로 엄마 혼자 맞은 첫 출산이다. 병원에서 엄마는 난생처음 출산을 겪었을 것인데 갓 스물 후반의 엄마는 혼자 그 모든 일들을 지나쳤으니 소리 높여 친정 엄마의 대단함을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런 내 마음은 노인이 된 엄마에겐 가닿지 못한다. 엄만 나약하고 심장과 불안한 신경을 겸비한 남편과 40년을 사니라 아빠보다 더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산에 올랐다. 혼자 산에 또 올라야 하다니 기가 막혀 눈물이 났다. 분명 남편은 내게 일요일 하루라는 시간을 내어준다 했다.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그에게 시간을 청했었다. 아파트 당첨 덕에 팍팍하기 한이 없는 우리 부부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건 선물이 아니라 시간이니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혼자 다녀오란다. 

 청계산을 오르며 기억 저 멀리에서 스멀스멀 어두움이 솟아올랐다. 이유 없이, 아니 분명한 이유로 내게 모질게 굴던 시누이와 그런 모짐을 눈감는 시어머니, 그들과 함께 살아온 남편 모두 이유 없이, 그냥 나를 싫어하는 거다. 존재만으로 나는 미움받을 만한 사람인게다. 남편은 오로지 일만 생각하는 사람인 게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마음 저 구석 억울하기만 했던 경험들이 파도처럼 떠밀려왔다. 화병이란 이런 것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나와 인연을 맺는 곁의 사람들에게 모질게 굴면 그 모짐의 파동은 아주 긴 시간 동안 이 세상을 떠돌아 오늘 같은 날 누군가의 눈물이 되어 흘러내리는 법이다. 

남편에게 용기를 내어 전화를 했다. 

"시간을 달라고 했잖아."

"개인적인 일이 있어."

"뭔데? 또 일? 왜 맨날 나는 뒷전인데!"

"아니, 생일잔치 서프라이즈하게 하려고...."

아! 

생일 당일 날 저녁을 함께하지 못하니 그 전날 깜짝 생일 파티를 준비하려고 한 남편이 시간이 부족했던 게다. 그래서 혼자 밖에 좀 다녀오라고 한 거였던 걸, 세상모르고 억울해하며 울며 불며 산을 올랐던 것이다. 

정면으로 마주하고 앉을 수 있었다. 내 속의 화와 미움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이, 미움을 받았던 사람이 사랑을 베풀기란 인간으로서는 극한의 어려움이다. 신쯤은 되어야 참지 않고 맞은 쪽 반대쪽 뺨을 내밀 주 있는 것이다. 그냥 참는다는 건 인간 레벨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냥 참다 그 화가 낳은 오해를 끌어 앉고 곁에 있는 사람을 밀어내어버리는 것, 이혼 같은 것을 해버리는 게 인간이다. 어제 나는 청계산에서 신을 마주했나 보다. 오늘 오후에는 그 신을 내 속으로 가져 끌어다 당겼다. 전화를 들어 엄마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통화를 했다. 

어제 혼자 청계산 간 이야기, 엄마는 주말을 어떻게 보냈냐는 이야기. 오전 내내 울음을 삼키며 일을 했지만 그런 내색 없이 퇴근하며 엄마와 전화를 했다. 나를 혼자 나은 날 엄마는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겠는가. 신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까지 내 레벨을 끌어당겨 올려보는 거다. 이 쪽을 떄리며 성한 쪽을 내밀어 보는 거다. 나를 찌를 이를 부둥켜안아 보는 거다. 그래봤자 엄마와는 이혼할 수도 없으며, 내 남편은 돌싱이 되기엔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인 데다가 나란 인간은 혼자이기엔 사랑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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