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나의 선긋기가 잘 되시는지 요들. 그게 잘 안된다. 축복이지 저주인지 모르지만 주변엔 선긋기가 힘든 사람들로 가득이다. 반백이 다되어가는데도 남편의 엄마와 친엄마가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계시는 데다가, 누나가 셋이나 되는 남자랑 결혼을 했고 그와의 결혼을 20년째 이어가고 있다.
그들 모두 남과 나의 선긋기가 되지 않는 삶을 치열하게 살고 있다. 여적이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그들의 말을 듣고 살았다. 그들의 뒤에서 나 또한 부지런히 그들과 같은 삶과 닮은 모양으로 살아갈 확률이 다분하다. 선인장에겐 사막이, 북극곰에겐 빙하벌판이 주어졌든 내겐 선긋기가 안 되는 아름다운 여성들이 주어져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남편이 옆에 없다. 잠이 들면 남편의 체온이 많이 올라가는 편이라 같이 자기가 좋아지는 계절이 겨울이다. 침대가 좀 썰렁하더라니. 절에 다녀오너라. 맞다. 그제 어머니는 남편에게 절에 다녀오라고 하셨었다.
첫째 누나의 남편은 치과의사다. 지난가을 아주버님이 억 단위의 사기를 당하고 이번 명절 당연히 큰 누나 내외는 오지도 가지도 않는다. 팔순이 넘은 어머니에겐 절대 비밀인 게 당연하고, 어머니는 무슨 일이 있냐며 큰 딸에게 자꾸 전화를 걸어 짜증 섞인 말을 한 바가지 들으시고야 만다.
그럼 이내 아들에게 전화를 한다. 절에 가서 누나를 위해 기도드리고 오너라. 나라면 데굴데굴 구르고는 절에 곧장 다녀왔을 테지만, 남편은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걸로 속상함을 달랜다. 나와 마주하면 그제야 이건 아니지 않냐며 속마음을 이야기한다. 그가 시어머니에 대한 불평을 내게 한다. 같이 오래 살고 볼 일이 아닌가? 실로 그러하다. 조심스럽게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같은 사람하고 오랜 시간 결혼생활을 이어나가는데서 오는 보람이란 바로 이런 순간인 거다. 그래. 이맛이지!
사람이 어찌 바뀌냐 하지만, 사람은 바뀐다. 선인장은 사막에 맞춰 살아야 하고 북극곰은 빙하벌판에 맞춰 속속히 겹겹이 털로 무장으로 하고 살아야 생명을 이어갈 수 있듯이 사람은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맞춰야 살아갈 수 있다. 내가 선택한 사람은 나를 옭아매는 환경이며, 바뀌게 하는 날씨라는 걸 이제야 안다. 어떤 날씨는 더 견딜만하고 어떤 날씨는 덜 견딜만하다. 하지만 그 어떤 날씨도 영원하지 않으며, 일정하지 않은 감정만큼이나 날씨 또한 변덕스럽다. 신이 있다면 그 신은 마음이 없을 것이다. 마음이 없어야 한다. 마음이 있다면 신은 변덕스럽고, 변화무쌍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침엔 텐션이 높은 남편이 오늘 아침은 차분하다. 고분고분 엄마말을 듣고 오더니 기운이 빠져있다. 아들에게 절에 가라고 하는 어머니가 싫은 눈치다. 분명히 우리 엄마는 내게 무엇을 요구하지 않았는데, 엄마가 왜 이리 바뀌었을까 하는 눈치다. 그렇지. 어머니는 아들이라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태세였다. 긴 시간 동안 며르느리인 내게 가스라이팅을 했다. 내 아들은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잘한 일이야. 보석. 어머니는 아들을 본인 삶의 보석이라 했다. 거리낌 없이 아니 목소리를 드높여 아들의 소중함을 내게 말한다. 그러니 너도 귀하게 여겨라. 내 아들. 흠집 없이 보살펴라. 내가? 왜?
처음엔 이 " 내가?", "왜?"가 쉽지 않아 어머니와의 통화가 꺼려지다 못해 무섭기까지 하던 시절이 있었다. 요샌 듣고 흘린다. 그녀의 말은 내겐 날씨다. 지나가는 소나기다. 마음을 다해 소나기가 내리지 않을 바라본들 소나기는 내리고야 만다. 그러니 흠뻑 맞고 바삭하게 말리면 그만이다. 언제 비가 내렸나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털면 그만인 것이다.
어젯밤 사랑을 나누기 전 남편이 손바닥을 만져본다. 거칠어진 손바닥을 안타까워하길래 때는 이때다 싶어 동그랑땡 백만 개 만들다가 내 손이 이리되었다고 꼼꼼히 이야기해 주었다. 고기가 몇 킬로였으며, 다진 양파와 파가 몇 개였고, 동그랑땡을 만드는 데에 걸리는 시간과 아무도 먹지 않아 흘러 흘러 우리 집 냉장고에 잔뜩인 상태라고 자세히 알려주었다. 손바닥 상태는 날씨처럼 내 기분과 컨디션을 말해준다. 티를 내고야 만다. 하기 싫은 일을 하고 나면, 하고 싶은데 힘들 일들을 해내고 나면 곧잘 거칠어지는 게 내 손바닥이다. 마음이 흘러가는 곳을 손바닥에서부터 알 수 있는 나는 남편과 어머니의 환경이다.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삶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스스로를 표현하는데 서툴러서 글은커녕 말도 쉽지 않은 그 두 사람은 내게 축복이다. 그들 몰래, 아무도 몰래 글을 쓰며 그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나는 그들에게 축복이다. 어머니 본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순간이 있다. 소나기를 잠시 피하면 언제 그랬냐고 해가 나듯 그녀가 남이 아닌 '나'에 대해서 말한다.
우리는 콩나물을 사러 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차린 밥상 앞에서 늘 먹는 시늉만 하던 바싹 말랐던 어머니의 손주, 큰 아이가 콩나물을 한 움큼 집어 밥 한 그릇을 뚝딱 먹는 순간을 어머니는 놓치지 않더라. 그렇게 잘 먹는 이유는 본인이 콩나물을 잘 골랐기 때문이라며 그걸 사러 가야 한단다. 아이를 위해 콩나물 사러 가는 길엔 부산에선 만나기 힘든 찬바람이 불었다. 부산 바람은 웬만해선 매서운 적이 없는데, 그날은 제법 불어대더라.
겨울은 이렇게 쩅하고, 바람이 불어야 한다며 이런 나라에 살고 있으니 얼마나 복이 많냐고 얼마 남지 않은 삶이지만 남을 위해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녀가 내게 친구에게나 할 법한 말을 한다. 그녀는 참으로 말이 없는 사람인데, 그녀를 만나지 20년 만에 자신의 마음을 꺼내 보인다. 살아온 날보다 죽음의 날이 더 가까운 시어머니는 이제 제법 친구 같은 날씨가 되었다.
나와 남이 잘 구분이 가시는지 요들. 하늘을 바라보고 내 마음에 맞장구를 쳐주면 고마워한다. 슬픈데 때마침 비와 주면 그리도 감사할 수가 없고, 삶이 거지 같이 느껴지고 내가 싫은 날 쨍하니 따사로운 날씨를 내려주면 그리 원망스러울 수가 없다. 그냥 그러고 만다. 나를 뺀 나머지는 그냥 날씨일 뿐이다. 하늘이든 사람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