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데리고 나온 10번째 주말이다. 아이를 데리고 처음 데리고 나온 날은 졸다 말다 하는 상태를 보고 기겁을 했었다. 잘하지 못하는 공부, 앉아서 해야만 하는 공부를 엄마와 같이 하겠다고 나온 것만 해도 기특하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생각은 거기에 미치지는 못했다. 전혀.
그렇게 바라던 의류 회사에 들어갔지만, 일은 낯설기만 했다. 내가 하는 일을 의류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은 4년을 꼬박 해왔었고, 조직이 원하는 건 부자재들에 대해서 아주 빠삭하고 꼼꼼하기 그지없는 철든 젊은 여자였다. 회사에서 소중하게 취급받는 사원은 그런 이들이었다. 자기 몸을 갈아 부셔 넣어가면서 일 처리를 해내서 대리도, 과장도, 팀장인 부장도 귀찮을 게 하나도 없는 그런 젊은 여자. 가장 쓸모 있는 그녀가 나의 사수였다. 바쁜 정도가 하늘을 찌르는 그녀의 인수인계는 친절함은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담백한 인수인계를 받고, 1년여를 사고를 쳤다. 비행기로 생산 공장이 있는 괌에 계속 부자재를 보냈다. 감당할 수 없는 항공비용이 내 위에서 일하던 대리 앞으로 떨어졌고, 나는 경영지원팀으로 보내졌다. 연이은 봐줌을 당하고 있던 중이었다. 봐주고 또 봐주고, 사고 치고 또 사고 치고.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알지 못하고, 공부 잘했고 좋은 대학을 입학했던 나의 목소리가 세상에 닿지 않아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며 사표 한 장 써놓고 사라졌다. 인수인계는커녕 변변한 인사도 하지 않고 1년 만에 그만두었다.
그렇게도 철이 없었다. 그렇게도 세상을 몰랐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다. 곱게 자라서, 곱게 키워져서 그랬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는 걸까?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세상의 눈에 내가 어떻게 비치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공부만 잘하면 이 모든 일들이 내 마음대로 풀릴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출근하지 않는 내게 엄마와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늘어놓은 이런저런 긴 변명을 엄마 앞에 늘어놓았을 뿐이었다. 아빠와의 대화는 당연히 없었다. 어떻게 세상으로 딸이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서 아빠는 알지 못했다. 아빠 자신도 모르는 걸 어찌 내게 알려 줄 수 있겠는가? 나와 관계 맺음 조차도 아빠에겐 실패일 뿐인 것을...
엄마가 잘했으니, 알려줄 수 있다며 아이 앞에서 내가 위대해지기 위해 주말마다 아이를 데리고 나와 있는 게 진짜 진실일 수 있다. 내가 잘하는 거, 참는 거, 앉아 있는 거, 문제집 풀고 책 읽고 하는 걸 함께 해주면 아이도 나처럼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점수를 받아 어디 나가서 무시 안 받을 테지. 내 알량한 생각으로 아이의 건너편에 앉아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감시하고 있는 거다.
엄마라는 단어는 노력해서 얻은 게 아니다. 그저 아이가 나를 찾아왔을 뿐이며, 아이가 나를 엄마라고 불러줬을 뿐이다. 아이가 나를 엄마라 부른다면 그 이유는 하나일 것이다. 아이 옆에 있었으니 엄마일 뿐이다. 엄마란 어떡해야 한다고, 부모면 이러해야 한다고들 한다. 아이도 말한다. 부모라면 그때 도와줬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 기꺼이 짊어지고자 하는 부모라는 간판 아래 신음하는 어리석은 내가 여기 있다.
엄마든, 아빠든, 자식이든 자기 삶을 살 뿐이라는 걸, 그저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인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 삶의 비밀, 소중하게 빛나는 비밀은 바로 이것이다. 공부를 하든 하지 않든, 돈을 많이 벌어오든 말든 곁에 존재함으로 의미가 있다는 걸 우린 거의 알지 못한다.
"배고파."
아이에게서 처음 듣는 말이다. 맛있겠다. 배고파. 이 말이 좋아 죽을 지경이다. 오늘 여기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말들이 너와 나를 여기 이곳에 함께함을 알리는 문신이다. 시간에 한 땀 한 땀 새겨본다. 부모님은 늘 약국에 계셨다. 아이만 할 때, 나는 엄마 아빠와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 부모님은 가열하게 살아 무너지지 않아야 했고, 12시간이 넘는 약국 운영시간에 맞춰 그저 자신들의 삶을 살았을 뿐이다. 나를 위해서 살지도, 너를 위해서 살지도 않았다. 혼자 부딪혀 넘어지고 쓰러지고 변명하고 실수하고 실패하다 흠집 하나 없이 정말 무결한 새 삶을 다시 살아보겠다고 자식을 가졌다. 자식이 있어야 하니까, 마치 내 것인 양 두 번째 삶인 양 결점 없는 인생을 빚어보겠다는 지극한 어리석음이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의 마음가짐이었다.
나의 죄를 이곳에 털어놓았으니, 자유로워져야겠다. 늘 곁에 있던 친구가 바로 이 아이다. 존재함만으로 사랑하는 이 친구에게 지은 죄를 차마 말할 수 없어 이곳에 기록으로 남겨둔다. 대신 최선을 다해 귀하게 여겨주어야지. 죄의식으로, 미안함으로, 송구함으로, 죽을죄를 지었다는 마음으로 대하지 않으리. 나의 친구 또한 나의 존재함만으로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친구는 사고뭉치, 실수투성이였던 나의 과거를 알지 못한다. 그러니 내게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사랑해 달라고 할 뿐이다. 있는 그대로, 지금 오늘 이 시간과 공간이 여기 펼쳐져있음을 함께 기뻐하라는 그 한 가지를 요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