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한심해 보일 때가 종종 있다. 왜 나와는 생각이 저리도 다를까 싶다. 가정이란 공동체에서 빠지기 쉬운 오류는 마치 가족들이 나와 늘 같은 생각이고,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독선이다. 적어도 전업주부로 사는 시간 동안엔 이런 생각의 방향이 독선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취업이 되고 내 안에서 화를 불러일으키는 건 어떤 순간인가 하고 들여다보고 기록으로 남기면서 발견하게 된 점이 바로 이것, 마치 동료들과 내가 생각의 수준이 일치하고 비슷해야 한다고 여기는 점이다. 내 속에서 솟아오르는 화는 불안이나 걱정, "위해서 그러는 거야." 따위의 변명과 위선으로 포장되기 일쑤다.
고민하여 워크숍 일정을 짠 대표의 메시지는 보자마자 싫었다. 1박 2일의 워크숍, 외박이라는 일정은 여러모로 부담스럽다. 집에 돌봐야 하는 애들이 있으니 호박씨 너는 1박 2일에서 1박은 하지 말아라고 미리 대표가 안내해 줄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굳이 1박 2일 일정을 짤 필요가 있나? 그럴 거면 일본으로 가던지. 직원들 중 여성의 비율이 50%가 넘는다. 가장 나이가 어린 커머스 직원이 나에게만 외박이 싫다고 토로한다. 그녀가 직접 대표한테 이야기하면 좋을 테지만, 그녀는 알고 있다. 대표가 그녀의 건의에 귀를 기울일 여지가 없다는 걸 말이다.
직원들의 성향을 섬세하게 살피기보다는 워크숍을 통해서 경험시키고자 하는 시간을 제시하는 대표는 나와는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이다 싶고, 생각이 꼬리를 물어 이렇게 안 맞는 대표와 얼마나 함께 갈 수 있을까에 까지 이른다. 워크숍 일정엔 번지점프가 들어있다. 번지점프는 돈을 내고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자고로 돈을 받고 해야 하는 것이다. 돈을 주고 왜 뛰어내린단 말이야. 위험천만함을 즐기는 그를 알고도 남지만, 그는 직원들에게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번지점프는 절대 안 뛰겠다는 3년 차 재직자들의 빠른 반응에 '고심해서 짠 건데.'라며 대표가 구시렁거린다. 그들은 No를 쉽게 표한다. 대표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런 일정을 짰는지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의 감정이 먼저다. 그들의 빠른 의견 표시도 마음에 안 든다. 싫어하는 상황 그 자체, 의견을 내고 배려받지 못하며 반대 의견을 표하고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 이 상황이 펼쳐지는 건 다 그들이 어리고 미숙해서이다. 성숙하고, 나이 든 나와 그들은 다르니까! 나와 다른 이들로 가득 차 있는 이곳에서 1분도 더 경력을 쌓고 싶지 않아! 화장실을 가거나 초점을 풀고 단순업무에 돌입한다. 또는 '나는 아무것도 안 들린다.'를 천만번 반복해 본다.
과연, 이런 상황에 처하는 건 그들이 어려서인가? 그렇지 않다. 나와 같은 생각의 범위를 가진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공동체란 애초에 존재하질 않는다. 내 안에 떠올랐던 생각이든 감정이든 그 무엇이든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저들처럼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순간이 있으며 하기 싫은 건 계획도 하기 싫다는 의견을 표한 적도 있었다. 시댁은 물론 친정, 함께 사는 식구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늘 일치하지 않으며, 서로를 견디고 싸우고 조율하면서 지낸다. 나이, 위치와는 사실 거리가 멀다.
강릉에서의 지난 워크숍은 마음에 안 드는 과정 투성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것대로의 의미가 있었다. 누구는 극도로 이기적인지 또 누구는 눈치가 없는지, 그리고 누군가는 무시당하고 있고 또 어떤 이는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모든 일에 분개하는지 등을 구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루종일 말 한마디 할 일이 없이 사내 메신저로 소통하면서도 지낼 수 있는 일의 성격 상 동료들을 알기란 쉽지 않았는데 12시간 넘게 그들을 바라보니 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한 시간이었다.
그러니 워크숍을 대표가 어떻게 짜든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된다. 스쳐 지나가는 이 시간들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문장 하나를 쓸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게 아닌가? 살아보지 못한 시간들을 나의 동료들은 지나가고 있다. 계엄이 선포되고, 트럼프가 또 대통령이 되고, 혼밥은 물론이고 키친 클로징까지 흔하디 흔하며 한국어 노래가 온 세계에 울려 퍼지는 오늘 30대를 살아가는 그들 옆에서 시간을 거꾸로 달려갈 수 있다. 그리하여 내게 주어질지 주어지지 않을지 알 수 없는 내일은 조금 더 다르게 살면 되는 거다.
나와 책상을 마주한 H에겐 전화가 가장 스트레스다. 요새 H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해 보인다. 사내 연애도 살 나가고, 새로운 업무로 확장도 하고, 야근도 하고 월급 또한 그녀가 목표하던 대로 받고 있는 게 오늘이다.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 H에게 신규 업체나 말썽을 일으키는 회원은 그야말로 노여움의 대상이라 그녀의 전화 통화에는 노여움이 뚝뚝 베어난다.
"그렇게 친절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는 거네요."
가만 내 통화를 듣던 그녀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음.....
그녀는 나의 과거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영리하다. 긴 시간 동안 나는 독선적으로 늘 화가 난 상태에서 누구 하나만 걸리라며 전화를 받았으니까. 전화를 걸 대상을 향해서 뜻하는 바를 쏘아붙이기 위해 벼르곤 했으니까. 그게 마치 정의인 냥 아주 작디작은 것 하나라도 내 뜻대로 하기 위해 퍼부어대곤 했었으니까.
그 시간을 지나 누구든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대상에게 최선을 다해 없던 친절을 짜내어 예의를 갖추며 내 뜻을 주장하기보단 상대가 원하는 걸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오늘의 나는 그녀의 미래다. 시간의 비밀은 바로 이것이다. 내가 그녀일 수도, 그녀가 나이기도 한 시간은 언제든지 찾아온다는 점. 삶이란 것의 비밀 한 개 더 알아냈다. 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