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못 이겨 글을 써 내려간 것이 대부분이었다. 브런치에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 것도 불안이요, 글을 계속 쓰게 했던 것 또한 불안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간다는 말을 피부로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요샌 하루하루가 다르게 커감을 느낀다. 그렇게 성장하는 게 누구냐 하면 바로 나다. 경력 이음이라는 학교에 다니면서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느낌이다. 전업주부로써의 삶은 불안을 벗 삼아 사는 내게 맞지 않았다는 걸, 또는 그 어느 누구도 주부로 살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있다. 유명 심리 전문 철학자가 그의 책에 쓴 문장을 읽으며 격분했던 5년 전 한국으로 막 돌아왔던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공황장애는 흔히 집안의 아버지나 남편에게 의지하며 사는 중년 여성에게 나타난다."라고 말이다. 단단하고 든든한 어딘가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불안이 그녀들을 잡아먹어 버린다는 사실, 어렴풋이 느꼈지만 그 철학자의 문장에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너무 맞는 말을 하면 이렇게 화가 나는 법이다. 진실의 문장을 읽으면 외면하고 싶기도 하고 열받기도 하는 거다.
일을 하면서 배운 점이 있다면, 여럿이 모인 집단은 어느 순식간에 사라지거나 망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같이 모인 순간부터 사람은 사람에게 기대어 산다. 가족이든 혈연집단이든 회사든 그 집단의 성격이 뭐였 건 간에 일단 모이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우린 서로 덕분에 삶을 이어가게 된다. 옆에 있는 누군가가 엄청난 실수를 해도, 어마어마한 불행에 휩싸여도 그런 경험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나를 살게 한다. 누군가가 헤매고 있으면 내가 힘을 내서 도와주기도 한다. 그게 누구든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내게 가장 무서운 상황은 작은 아이의 탄생이었다. 엄마도 시어머니도 반대한 아이, 그 아이가 나오면 육아는 오롯이 나만의 것일 거라고 환영받지 못한 탄생은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작은 아이를 임신하면서부터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보내두고는 한참을 울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작은 아이가 나오자마자부턴 큰 아이를 집에 데리고 있었다. 나의 이기심이었다. 큰 아이가 있으니 얼마나 든든하던지. 든든함 그 자체였다.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안 보냈다 왔다 갔다 하니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이 보다 못해 한소리를 했다. 큰 아이의 생활 리듬이 깨지고 불안해지니 보내려면 보내고 말라면 말라는 뜻이었다. 나의 불안을 이기기 위해 큰 아이를 일찌감치 쥐고 흔들었다.
이름만 들어도 살 떨리는 고2의 시작에 나는 아이에게서 '공부'와 '시간'이라는 단어를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지내라 저렇게 지내라 이거 해라 또는 저거 해라를 지시하던 나는 결국 아이가 어떻게 될까 봐 불안하고 걱정되어서 아이를 위한다는 가면을 쓰고 내 불안을 그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 있었다. 진정 내가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건 불안하고는 거리가 먼 삶이다. 내일 죽더라도,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태어나봤으니 이걸로 족하다고 뭔 큰일이 있어도 한번 태어나 살아봤다는 사실은 삭제되지 않는다고 그러니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늘을 살라는 메시지를 아이에게 유산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렇게 살지 못했으니 오늘부터는 그렇게 살겠다고 결심했다면 아이를 대하는 태도도 바뀌었어야 했는데, 큰 아이 앞에만 서면 도로 제자리였다. 불안이라는 무기로 여기까지 잘 살아왔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스스로에게 지껄이고 있었다.
용기라는 방패를 들고 있는 내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 오직 이것이 전부다. 내가 이 아이의 엄마로 태어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살아있는 한 별일 없다고, 개똥같이 살아도 이승이라고 아이의 반 발자국 앞에서 보여주는 것 이게 다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