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가 됐던 날이 사실 대학 입학 통지서 보다 짜릿했다. 마흔쯤엔 뭔가 새로운 걸 시작할 수 없을 거라고, 나이 든 여자가 뭘 할 수 있겠냐고 스스로를 묶어두었었으니까. 있는 그대로 내 삶 그대로, 이방인 또는 이상한 여자, 세상의 기대 따윈 내가 살아가는 모양과는 상관없어도 괜찮다고 세상이 보내는 신호라고 생각했다.
브런치 작가에 합격하는 순간, 작가해도 된다고 또는 너의 모든 이야기는 세상에 고래고래 소리 질러 토해놔도 괜찮다고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잘 벼린 단어와 문장들로 발라내고 도려내어 브런치에 박제시키길 시작했다. 글의 주제가 되는 대상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호박씨라는 렌즈로 필터 해버렸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아니더라. 글의 대상이 되는 것도, 글 속에 들어가는 것도 다들 꺼려하기가 일쑤였다. 나와 대화를 나누는 이도, 만나는 이도 글 속에 들어가길 거부했다. 안타까워하고 싶은 말이 많아 글로 써 내려갔지만, 심장을 둘러싼 피부도 근육도 다 도려내고 뜨겁게 뛰는 내 심장을 있는 그래도 보여주는 일은 대부분의 이들에겐 부담스러움 그 자체였다.
그런 짓을 계속하다간 호박씨 네가 손해 보는 일도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했지만, 사실 내겐 그 누구의 이야기도 나를 위해서 하는 이야기로는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두려워할 뿐이었다.
독일서 돌아오자마자 마주한 현실은 예쁘게 포장된 SNS였다. 끊임없이 24시간 타인의 시선 아래 살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착각을 했나 보다. 아, 스스로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구나. 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보다 했다. 글을 써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이면 좋아해 줄 거라고 지독하게도 오해했다. 마음이 애달픈 이들을 향해 글을 쓰고, 브런치 링크를 보내주면 대부분의 반응이 '이게 뭐야?'였으니까.
그때 알았어야 했다. 그들이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건 곱고 예쁘게 포장된 사진이라는 걸 말이다. 더럽고 추접스러우며 무시무시한 우리의 진짜 삶은 세상 밖으로 나오면 안 되는 거였다. 브런치 작가이길, 그리고 글을 쓰고 있길 그 모두에게서 감추기 시작했다.
브런치 창을 밥 먹듯 켜두는 날들이 있었다. 외롭고, 애달픈 이 삶에 친구를 하나 만들고 싶었다. 내게 나라는 친구를 선물해 주는 기분이었다. 끝도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 지치지 않는 글. 내가 세상에 꺼내둔 또 다른 나 자신이 바로 호박씨의 문장들이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하트를 눌러준다고? 돈은 필요 없었다. 네 자릿수가 넘어가는 통계의 숫자를 발견하고는 입 째지게 미소 짔는 날의 짜릿함은 사실 돈을 주고 살 수 없어며 억만금을 준다 해도 바꾸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브런치는 내 친구가 맞는 거다.
이로써 내 좁은 인간관계는 더더 좁아져서 진짜 친구는 내 하나가 남은 거 같다. 브런치 통계를 보지 않는 날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타인의 이해에 구걸하지 않는다. 내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가 격려하고 응원해 주는데 친구가 뭣이 필요하겠는가? 스스로가 스스로를 위로할 수만 있다면, 내가 나를 위로하고 이해해 줄 수 있는 도구, 살면서 이거 하나 가지고 사는 삶이 얼마나 있단 말인가? 새겨둔다. 글로 내게 주어진 생명을 새긴다. 열 친구가 안 부럽다.
혼자서도 잘 지내는 나는 세상과도 잘 지낼 수 있는 법이라는 걸 이젠 잘 안다. 현란한 말솜씨와 값비싼 선물을 타인에게 주지 않아도 괜찮다. 또한 상대가 내게 그 어떤 힘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왜냐면 내겐 글이 있으니까. 내겐 나란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의 말이 줄고, 감정들의 출렁임이 사라지길 빈다. 그리하여 흘러간 시간들을 박제한 문장들처럼 이대로 영원하길 빈다. 아이가 물었다. 엄마 제사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물었다. 엄마는 말이야. 이 삶을 끝내는 날이 다가오는 걸 느끼게 되는 날이 된다면 말이야. 그냥 사라질 거야. 엄마의 마지막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하게 할 거야. 엄마라는 존재를 아는 네 기억 속에 엄마가 영원히 존재하고 싶어서 말이야. 엄마의 끝은 너에겐 없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