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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수술하는 중

by 호박씨

사흘을 울부짖으며 잠에 들었다. 사흘이 아니다. 거의 반년이다. 큰 아이의 기말고사 성적표를 받았던 크리스마스부터 반년을 이렇게 지내고 있다. 아이는 한 시간을 앉아 있질 못한다. 아이 성적은 바닥을 쳤다. 지난 기말고사 성적표를 받은 날부터 제정신이 아닌 셈이다.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아이를 일으켜야 할지 알지 못한다. 내가 아이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아이는 도와달라고 내게 요구하지 않는다. 언제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알 수 없다. 지독하게 혼자서 길을 찾아야 하는 그런 날들로 돌아간다. 혼자였던 시간들이 파도처럼 덮친다. 되감기. 테이프를 되감아 본다. 고통스러웠던 그 시간들 속에서 내가 했던 판단들은 대부분 잘못된 판단들이었다. 기대하고 바라는 방향이었던 순간은 없었다. 뜻대로 되는 시간은 없었다. 모자란 내가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자신이 없는데 뭐라도 해야 하니 자꾸 울기만 한다. 말 그대로 고통스럽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와 혼자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이 시간에 그는 그의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혼자 아이를 마주하라고 그가 의도한 적은 없지만 결국 나는 정면으로 아이를 마주하고 있다. 닷새라는 시간을 온전히 큰 아이만을 생각하면서 보내고 있는데 오롯이 혼자라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답을 달라고, 내 고통을 함께 해달라고 그에게 호소했다. 그는 답을 미룬다. 기다리면 된다고 했다. 남편이 말했다. 기다려주라고, 더 기다려 주라고 한다.

몸이 아프건 마음이 아프건 고통의 종류만 다를 뿐 문제가 있는 건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몸이 아프다고 해서 쉽사리 고칠 수 있는 건 아니다. 전신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하고 피부를 열어 환부를 눈으로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가? 제 아무리 명의라고 해도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스로를 열어 들여다보고 환부를 끄집어낼 수는 없다. 결국 누군가의 힘을 빌어야 한다.

가장 엉망진창이었던 나의 스물은 치유되지 않은 채 덮어졌다. 없던 일인 양 도망가려고 최선을 다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멀쩡한 척하며 덮고 넘어간다. 결혼이라는 반전이면 판을 손쉽게 뒤집을 수 있을 거라는 얄팍한 생각. 삶이 어찌 그리 만만하단 말인가?

찾지 못한 답이 나를 다시 찾아왔다. 세상을 눈 가리고 아웅 하며 살 수 있을 망정, 나 스스로로부터 도망갈 수는 없다. 내 삶이 내게 던졌던 질문. 네가 가진 것들은 모두 너에게 자격이 있냐고 물었었다. 주어진 삶을 나 자신을 위해서 써도 되냐고 물었다. 순전히 오롯이 나의 즐거움을 위해, 매 순간 이기는 삶을 사는 게 당연하냐고 물어왔다. 고통스럽지 않은 이 찰나에 만족하라고 내게 명령했다. 감히 미래를 운전하려고 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배고프지 않고, 아프지 않으면 감사하라고 명령했다.


자식이, 삶이, 이 모든 것이 너의 뜻대로 되지 않아. 너에게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네"라고 대답하렴. 네 몸뚱이조차도 너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2주 정도를 야근의 연속이었다. 앉아 있을수록 허리 통증이 심하다. 허리가 아파 앉아 있기 힘들고, 해야 하는 일들을 할 수 없고, 앉아 있기는 고역인데 병원은 가기 싫다. 내 쓸모를 다 하기 위해서 나를 위해 병원은 갈 수가 없다. 이 모든 것이 제자리에 제 역할을 하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나는 고통을 모르는 이 몸뚱이여야만 한다. 몸이 말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뜻대로 되지 않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이건, 초등학교 2학년이건 사람에겐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 매일 한 끼의 라면을 먹고, 학교를 가던 아이의 몸무게는 10킬로가 넘게 늘었다. 겨우 숨만 붙어 있던 상태로 말랐던 아이의 몸이 내게 말하고 있었다. "엄마, 나 힘들어요." 그때 등을 떠밀었었다. 일어나라고. 당장 일어나라고 했다. 너의 고통을 눈 뜨고 볼 수 없으니 일어나라고만 했다. 어떻게 아이를 마주해야 하나 답은 하나다. 지금 너로서 충분하다. 오늘 나와 함께 밥 한 끼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이게 다다. 무얼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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