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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벗 삼아 나와 친구 되기

by 호박씨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근래 집은 물건을 떨어뜨리는 일이 많아 발가락을 찧곤 한다. 발을 질질 끌고 돌아다니다 발가락을 부닫치는 일도 종종 있다. 해야 하는 것들, 할 수 있는 것들이 많고, 늘 시간이 부족한 데 내게 남은 에너지는 그다지 많지 않다. 스스로를 잘 돌봐야 하는데 자신을 돌보기엔, 거기에 전념하기엔 쉬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냥 흘러가도록, 이 모든 행운과 불운에는 그 나름의 때가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몸은 알지 못한다. 종종 까먹고 뭐든 하려고 하니 성급하게 행하다 어설프게 처리하고야 만다. 그렇고 나면 이내 아프고 만다. 찧은 발가락이 아프고, 가슴이 아릿해오고 질문이 저 마음 바닥에서 차오른다. 아픔을 견딜 수 있는가?


친정 엄마는 다정한 사람이다. 그래서 운이 좋기도 하고, 엄마의 다정함은 내게 큰 불운이기도 하다. 참는다. 엄마는 참는데 선수다. 그래서인지 나도 그냥 참는다. 물론 엄마에 비교는 할 수 없지만 나름 참는다고 참는 거다.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으니까. 할 말 다하고 어찌 사나, 참는 거지. 견딜 수 있는 데까지 견디는 거지. 그렇다 보면 엄마처럼 저렇게 늙어가겠지.

가족을 참고, 마음을 참고, 말을 참아본다. 내 마음이 상하더라도,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상한 타인의 마음을 어떻게든 위로하고야 말고 싶으니까. 타인의 카테고리는 아주 저 멀리까지도 나아간다. 엄마는 처음 만나는 사람, 아주 가끔 만나는 사람에게 더 친절하고 더 다정하다. 엄마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에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친절하다. 그러니 내게도 늘 엄마에게 친절하길 기대한다.


내게 주어지는 고통들은 대개 사소하게 여겨지곤 한다. 지금 당장에 환산되지 않는 돌봄이란 과정에서 겪는 일들이란 늘 그러하듯 아픔 또한 흩어질 때로 흩어져버리기 일 수다. 태산 같은 어려움이 아니라 모래산 같아서 아주 조금씩 매일 차츰차츰 나를 잡아먹는다. 부드럽고 소리 없는 느릿한 시간 속에 자취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막과 하나가 되어버릴 거라고, 내 남은 삶도 이대로 그렇게 사라질 거라고 의심의 여지없이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몇 십억, 몇 백억에 달하는 사업의 사원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제 책임을 지는 팀장에 까지 이른 남편은 회사를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내 앞에 와 작은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다 쓴 그의 토너와 오늘 직원들과 먹은 점심에서 나온 주제, 아이의 수행평가 점수 따위 말이다. 단위만 다를 뿐 나의 10년 전, 20년 전의 갈망, 목마름에서 지금의 내가 느끼는 아픔과 결핍의 종류는 정확히 일치한다. 하기 싫은 가사 노동, 만나기 싫은 직장 상사, 맞닥뜨리기 싫은 업무. 어떻게 하면 지금 아니 내일, 또는 미래에 안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궁리하는 순간순간들이 하루 안에 겹겹이 쌓여있다. 어떻게 하면 빨래를 안 널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아픈 허리를 데리고 설거지를 빨리 할 수 있을까?


말없이, 글 없이 혼자 뒷산에 오른다. 단 30분, 아니 단 3분 만이라도 엄마, 아내, 사원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세상이 내게 기대하는 바를 새카맣게 잊고 숨에 집중할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머릿속 알고리즘은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과 가족들에 대한 걱정 그리고 단박에 돈 더 벌어볼 생각으로 가득하다. "생각 끔"의 버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남편은 2주간의 출장, 아이들은 다음 주 수학여행 일정들이 있다. 온전히 나하고 지낼 수 있는 시간 3일 동안 나로 살아보겠다고 마음먹어보지만 실패할 것이 뻔해 키보드 앞에 앉아본다. 금연으로 결의를 다지는 남편을 동지 삼아 머릿속 알고리즘도 바꿔보리라. 브런치를 도구 삼아 부디 나와의 대화에 성공하고 싶은 마음을 갈고닦는 중이다.

나를 집어삼킬 예정인 이 결핍과 고통과 한바탕 씨름을 벌이리라. 나와 잘 지내는 법이란 나를 어르고 달래고 한바탕 메치기도 하다 다정하게 쓰다듬어주는 그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보는 거니까. 지극히 내게 집중해 보기도 또는 나를 브런치 스크린 창 위에 올려두고 요리 저리 뜯어보기도 하는 수많은 시도를 해보고야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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