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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의 집주인 덕분에 배려를 깨닫는다.

by 호박씨

50대 후반의 임대인 중국에 거주한다.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은 없는데 그녀의 얼굴은 잘 알고도 남는다. 그녀는 카카오 프로필에 동영상도 올리고, 맛있고 비싸 보이는 식당 앞에서 한껏 웃고 있으며 그녀를 똑 빼닮은 의사 아들의 웨딩 사진도 여럿 올려뒀으니까.


20년을 채워가는 아파트 현관 문고리가 이제 죽여달라고 했다. 전세로 만 6년을 살면서 이 집 성한 게 없는 줄이야 알고도 남는다. 삭아 떨어진 레인지 후드도 혼자 1회용으로 설치해 보고, 볼 때마다 기분이 거지 같아지는 방문도 혼자 페인트칠해 보았다. 입주 후 한 번도 교체한 적이 없는 방문이 잠겨 딸이 방에서 못 나오던 날이 2년 전이었던가보다. 문고리 값을 달라고 하기도 전부터 왜 집주인의 냉대를 예상했던 걸까? 긴 시간 동안 지켜보던 그녀의 카카오 프로필 상의 관상이 이미 내게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나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에겐 내 돈은 1원도 줄 수 없다고 그녀의 사진이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으니까.


어찌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이 깊어진 때가 갓 마흔을 넘어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외국살이야 매일이 새로운 날의 연속이었고 사고 없으면 감사하다는 마음이 깊었었던지라 하루를 갓난아기처럼 살다 한국으로 돌아오니 훌쩍 먹은 나이가 내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여전히도 갓 아이를 낳은 산모처럼 나와 내 아이의 안위만을 위해서 온 불안감을 떠안고 세상 내가 제일 힘드네라는 주제로 중년을 살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코로나 우울증과 사춘기의 이중고에 빠졌을 땐 그 누구라도,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나를 도와야 하는 게 아닌가라며 원망도 컸다. 내게 가장 큰 괴로움이 닥쳤을 땐 어찌하여 아무도 내 옆엔 없는 건인 가라고 울부짖곤 했었다. 나는 분명 누군가의 곤란함을 내 일처럼 여기고 간도 쓸개도 다 띠어주고 살았는데 계산은 왜 이렇게 돌아오는 거구 수지는 언제 맞는 거냐는 심정이었다.


친정엄마가 임대사업자가 된 지 어언 8년을 채워간다. 그간 임대사업자의 의무인 저렴한 전세보증금을 잘 지켜가며 엄마는 임차인을 위해 집을 잘 고쳐주었다. 고쳐달라는 요청이 없다면 안 고쳐줄지언정, 고쳐달라고만 한다면 엄마로선 최선을 다했다. 적당히 하라는 조언을 엄마에게 건네던 날이 있었다. 그 하루였을까? 엄마에게 너무 착하게 살지 말라고 조언헀던 그날 때문에 집주인에게 만 5년을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중인 걸까? 사는 동안의 계산이라는 건 오늘 당장이 아니고 삶을 끝내는 날, 그도 아니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세상에 하나도 없어지는 바로 그날까지를 모두 합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럼에도 억울하다. 친정엄마가 쌓은 복은, 시아버님이 주변 친적들에게 베푼 덕은 내겐 왜 오늘 당장 돌아오지 않는단 말인가?


현관문고리가 잘 안 열리더라. 아이들의 입에서 나온 그 한 마디가 내겐 무섭다. 현관 문고리를 교체해야 하고, 그럼 열쇠집에 연락을 해야 하고, 돈을 내야 하고, 그 돈을 집주인 여자에게 달라고 해야 하니 아이들이 집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면 참으로 두렵다.

"아직 쓸만하던데."

문고리를 고치지도, 집주인에게 연락을 하지도 않는 남편은 잘 교체된 현관 문고리를 돌리며 한마디를 했다가 어제 반나절을 내게 말로 실컷 두들겨 맞았다. 비록 전처럼 이런 남편의 한마디에 내가 이러려고 그렇게 뭐든 참고 공부했냐는 둥, 내가 계획했던 40대 후반은 이런 모양은 절대 아니었다는 둥의 신파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에게 조언을 할 뿐이다. 앞으로도 계속 함께 살아야 하니 집주인에게 연락할 게 아니라면 입조심하라고 해둔다.



결혼할 때 구한 집에서 아이들을 낳고 길러 6년을 지냈다. 전세 계약을 같은 사람과 3번을 한 셈이다. 이번 집주인과도 그럴 셈이다. 첫 전셋집 집주인도 어지간히 악덕했는데 이번 집주인도 밀리지 않는 악덕을 고루 갖추고 있다. 연락을 씹고, 비용을 일절 부담하지 않으며, 계약 시 일체의 공적 요건들을 갖추지 않는다. 그런 현 집주인의 아들도 사지 멀쩡하고 심지어 의사이며, 삼 남매 다들 참 인물도 좋은데 첫 집주인 아들 또한 그렇했다. 첫 집을 아들 명의로 돌렸기에 나보다 5살은 어린 그 아들이 그 집주인이 되었고 애가 둘이나 딸린 아 집주인 아들보다 늙은 내 남편은 집 없는 이었었더랬다.


"살다가 발생하는 비용은 본인이 내면 됩니다. 이런 일로 연락하지 마세요."

12시간 만에 그녀에게서 온 카톡 답장 내용에 입안이 바짝 말랐다. 내년 말이면 내 집이 생길 예정입니다. 물론 들어가서 살 수 있을지 없을지 예측할 수 없는 비싸디 비싼 집이고, 은행 이자를 내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허덕거리며 살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드디어 내게도 집이 생길 날이 올 예정인 데다가 그 집을 전세 매물로 내놓을 수 있는 기회도 생길 것이다.

줄 돈 안 주고, 타인에게 엄한 소리 내지르고 나면 두 발 뻗고 어찌 자나 싶다. 일자리를 구하고 나서 내가 가장 집중적으로 신경 쓰는 건 아무 말이나 하거나 게으르게 생각하여 타인의 입장을 덜 고려하는 이가 되지 말자인 터라 집주인 여자의 반응은 참으로 신기하고도 새롭다. 어쩜 저렇고 살지 싶은 게 살면 살수록 신기한 인간상을 만나게 되고 배울만한 사람은 찾기가 참으로 힘들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는다. 좋은 밥 먹고 고운 옷 입고 어버이날엔 아들, 딸이 자체제작한 감사패도 받는 이가 세입자의 현관문고리 바뀌는 덴 단돈 1원도 낼 수 없다. 게다가 세입자 기분을 더럽게 만들어서 다시는 돈 달라는 소리 못하도록 만들 작정을 단단하고 카톡을 날려댄다. 이 인간이 내 가족이 아니라서, 우리 엄마가 아니라서, 내가 매일 얼굴 맡대야 하는 동료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사무실 나가기 전까지는 이런 대화를 나누고 나면 나만 이런 어려움을 겪나 또는 내가 만만해보이 나는 등의 '나'를 다시 바라보기를 하면서 울거나 잠을 안 자는 식으로의 자학을 하곤 했었다. 자학 금지. 나라서 그런 거 아님 등등등. 타인이 던지는 말이 내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길고 긴 시간 동안 정성을 들여서, 애정과 관심으로 대한 대상으로부터 끝도 없는 불신을 받았더라도 결국 그건 나 때문은 아니라는 걸 안다. 내가 상대에게 한 배려를 당사자에게 돌려받지 못한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안다. 헤아릴 수 없는 깊이로 나를 믿어주는 아이들과 언제까지나 내 옆에 있을 것이라는 걸 아는 남편. 그 세 사람을 통해 딛고 일어나는 길 뿐. 그들을 생각하면서 다시 타인에게 다정함을 건넨다. 배려를 내민다. 언젠가 남편과 아이들이 누군가로부터 10번 말로 맞을 일이 생겼을 때 부디 1번만 맞길, 혼자 울 일 생겼을 때 토닥여주는 누군가 한 명이 옆에 있길, 그리고 그들의 비명횡사할 큰 사건 사고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덕을 쌓는다. 배려하고 다정함을 베푼다. 나로부터 돌아 돌아서 부디 그들에게 닿기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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