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보단 긴장이 컸다. 아이들에게 같이 가달라고 해볼까 여러 번 고민을 했다. 문제의 시작은 건강검진이었다. 주재원 파견 시, 주재원 당사자와 동반 배우자는 건강검진을 하고 파견에 이상이 없을 것임을 회사에 알려야 한다. 과거 주재원 파견 후 암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에 걸려서 회사가 비행기 값이며, 산재며 여러 감당해야 할 비용들이 발생했던 이력이 많았던 탓이겠거니. 최근 2년이라는 시간을 일과 큰 아이 일로 갈아 넣었다 보니 몸이 성한 데가 없더라. 갈아 넣지 않았어도 여기저기 아프고 뭐가 있고 하는 나이 아니었겠는가만은 새가슴이라 검진표를 열어보고는 눈물 한바탕 쏙 뻈다. 겁쟁이 호박씨.
난소암 표지자 수치가 높고 유방암도 의심된다고 하여 병원 여기저기 가고 수술도 하고, 돌아오는 여름엔 반드시 한국에 돌아와 수술을 하라는 권고도 받았다. 막상 와보니 나만을 위해서 한국을 드나들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원래의 나로 돌아온 셈이다. 아이들 적응을 위해서라면 가족들의 적응을 위해서 합리적인 방법으로 나를 조절하고 조정하면 되겠다 싶다. 한국 병원에서 준 결과지를 다시 살펴보고 AI에게도 물어본다.
"6개월 만에, 올여름에 꼭 한국에 가야만 해?"
의사에게 물어봐야지. 모니터링하면서 의사 도움받아서 관리하고 최대한 올여름은 미국에서 버텨보자 싶다. 소원을 담아 의사를 고르고 온라인 예약을 한다. 학벌이 제일 좋고, 타이틀이 가장 많은 나이 있을 거 같은 느낌의 중국인 의사로 신중하게 골랐다. 부디 그녀가 친절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예약 버튼을 눌렀다.
애틀란타의 종합병원은 Emory 병원으로 에모리 병원은 지역 전반에 걸쳐서 퍼져있다. 앱을 통해서 종합병원 산하의 패밀리 닥터를 예약했는데, 사람을 어지간히도 귀찮게 굴었다. 앱은 가입하기 어려웠고, 예약은 2주 후 월요일 아침 9시만 가능했다. 앱을 통해서 메시지도 연이어 왔다. 초진이라서 그런지 지속적으로 다양한 정보를 텍스트로 요청해 왔다. 귀찮지만, 문서로 사전정보 전달할 수 있으니 안심도 되었다.
8시 45분까지 오라고 이틀 전부터 당부해 왔고, 노쇼할 경우 비용 부담해야 한다는 경고도 날려왔다. 그래. 정 원한다면 일찌감치 가주지.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고 모니터링을 위한 산부인과로의 이전을 요구하는 체크업 수준의 진료인데 뭘 이렇게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는 건지. 이 템포에 맞게 새벽 6시에 일어나 남편 아침을 챙겨주고 집에서 10분 거리의 병원을 20분 전에 출발했다.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 8시 35분. 문자가 또 왔다.
병원 리셉션인지 아닌지 문자로 답장을 요청하는 내용. 대단하다, 대단해. 의사와의 약속을 반드시 무조건 지키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만들어주는 시스템이라니.
나의 기억 속에 대학병원은 공황장애로 찾아갔던 강남 한가운데 병원, 그리고 시아버님의 폐암 수술을 위해 갔던 아산병원. 그 어디서도 사람 목숨에 대한 여유는 느낄 수 없었다. 정신의 건강도 찾을 수 없었다. 나를 대하던 의사들의 정신 건강 또한 지켜진다고 생각된 적도 없었다.
에모리 병원의 의사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떙땡이 블라우스는 입고, 아주 편한 신발을 신은 작은 체구의 중년 여성이었다. 그녀의 키와 몸매로 보아 본인을 위해 돈을 바치거나 시간을 들인다고 느낄 수 없었고, 그녀가 나에게 건네는 말 어디서도 '내가 의사다.'라는 메시지는 없었다.
"당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 여유를 가지세요. 저에게 당신의 아픔에 대해서 말해봐요."
이 낯설고 낯선 사람에게 기댄다. 이 사람이 내게 말한다. 의사란 나의 아픔과 나의 고통을 들어주고 덜어줄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사람인 것을 오늘에서야 깨달은 셈이다.
어디서 아파서 간 것도 아니고 산부인과의 자궁 근종 모니터링을 부탁하는 패밀리 닥터로서 방문한 것인데, 왕 박사와 그녀의 간호사인 엠마는 내게 총 20분의 시간을 투입했다. 그들 누구도 시간에 쫓기지 않았기에 친절했다. 그들이 친절할 수 있는 상황이 부러웠다.
왜 우린 이렇게 살 수 없는 것일까?
어째서 우린 텅 빈 가혹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 쓸고 닦고 색을 입혀서 멀쩡한 척을 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
뭘 위해서 이다지도 바쁜 건지 궁금해진다. 아버님의 폐암으로 갔던 코로나의 아산 병원은 복도마다 병실마다 사람이 가득했다. 그 큰 병원을 가득 매운 빨리 아프고 빨리 처리되고 빨리 말하고 걷는 사람들의 한가운데에서 어지러움을 느꼈던 건 오직 나만이였을까 싶어 외로움이 또 밀려온다.
우린 이렇게 참으로 아름답고 효율적으로 끔찍하게 삶을 살고 있나 보다. 반들거리고 매끈하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병원과 의사와 접수 데스크들이 없는 미국 남부 시골의 종합 병원이 나를 위로해 준다. 방금 만난 그녀에게 온 지 얼마나 되었는지, 긴장한 탓에 혈압이 높게 나온 이유 또한 구구절절이 아직 터지지 않은 나의 영어로 최선을 다해 내밀어 본다. 1년 후에 오라고 했는데, 27년 2월 전에 그녀를 만나러 에모리 병원에 갈 용건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생긴다면 좋아라 병원을 향할 예정이다. 종합병원이 좋아질 줄 누가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