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자도 괜찮아
생일 전날 싸웠고 그날부터 부부싸움 모드였으니 오늘로 열흘이 넘었다.
남편이 월요일 하루를 콜록대더니 목이 아프다고 했다. 목이 아파 찝찝하다고 재택근무 신청을 하고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갔다 왔다. 남편 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꾸 묻는다. 코로나 증상이 어떠했냐고 묻는다.
증상을 물을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혼자 앓던 밤이 떠올랐다. 혼자 앓던 낮도 떠올랐다. 토하고 어지러웠으나 아버님을 뵈러 KTX를 타러 내려가던 날도 생각났다. 아버님을 산책시켜 드려야 하니 부산역에는 못 나온다는 말에 눈물이 핑 돌았던 것도 기억났다. 부산역에서 배고프다고 말하던 딸에게 소리 지른 것도 떠오른다. 못나게도 아이에게 화를 냈다.
코로나에 대한 기억은 두려움이다. 코로나인지 모르고 혼자 이겨낸 것은 감사할 일이다. 일주일 정도 약을 먹고, 한 달 정도 체력이 저하됨으로써 마무리된 것으로 복도 많다 여겨야 한다. 아나필락시스가 예상돼 백신도 맞지 않고 버티고 있었는데, 자가 면역이 생겨 백신이 필수는 아닌 상황이 되었다. 여러모로 감사할 일인데, 여전히 코로나는 무섭다. 한발짝 코로나 밖으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무서운 코로나의 터널에 갇혀있나 보다.
" 코로나 증상이 어땠어?"
자꾸 묻는 그에게 처음에는 상세히 이야기해주었다.
" 얼마나 아픈지 모를 만큼 아팠어."
그러니까 당신은 코로나가 아닐 거야라고는 하지 않았다. 사람마다 증상이 다 다르니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증상이 어떠했냐고 다시 묻을 때에는 섭섭함이 밀려왔다. 아버님이 돌아가셨으니 경황이 없었겠지. 많이 힘들었겠네라는 말은 생각은 하되 말은 하지 않는 거겠지 했다.
그가 말한다.
" 회사에서 별소리 다 들었어. 식구들이 증상이 있는데 출근했냐고."
그가 어제오늘 이렇게 조심을 하는 이유는 지난번 우리들의 확진으로 인해서 회사에서 엄한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구나. 부산에 가기 전에 아프다고 그에게 말했지만, 부산에 오지 않아도 된단 이야기를 그는 하지 않았다. 거스르기 싫었다. 아버님의 마지막이라는데 아무리 아파도 가야지. 회사가 소중하고, 부산의 가족들이 소중한 그다. 그런 것 같다.
" 엄마, 나 사실은 그 때 목 많이 아팠어."
한 달이 넘게 지난 지금에서야 딸은 자신의 코로나 증상을 말한다. 부산에 도착해서 아빠한테 말했다고 한다. 엄마도 듣지 않았냐고도 말한다. 화가 났다. 내 상태가 가장 안 좋아서, 기침을 해대는 아들 때문에 말 없는 딸아이의 아픔은 알지 못했다. 신경 쓰지 않았다. 딸아이는 또 말한다.
" 엄마는 많이 아프고, 오빠는 기침이 그렇게 심했잖아. 그래서 말 안 했지."
남편은 알까? 부산에서 남편을 만나자마자 딸아이가 남편에 했던 그 말을 기억할까?
"아빠, 나 목 많이 아파."
혼자 아팠을 딸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저린데, 남편이 옆에서 자꾸 묻는다.
" 나 코로나 증상인가? "
남편의 검사 결과가 나올 시간이다. 아이들이 등교를 하자마자 자가검진을 체크하는데 항목 끝에 이런 글이 보인다.
" 동거인 중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나요?"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면 등교를 하면 안 되는 건가?
아프면서도 코로나일 것이라고는 생각 안 했다. 발열, 기침, 호흡곤란, 오한, 근육통, 두통, 인후통, 후각. 미각 소실. 나는 이중 절반이 넘게 해당되었으면서도 코로나일 것이라고 의심하지 못했다. 의심했었어야 했는데 사실은 무서웠다. 코로나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이 무서워, 호흡곤란이 없으니 난 코로나가 아니야라고 우겨댔다. 아들은 기침을 했고 딸은 인후통이 있었지만, 우리는 어떤 감기를 앓고 있는 건가 보다 했다.
내가 탄 기차의 승객들, 방문했던 식당, 우리가 탔던 택시. 내가 지나간 어디든 나로 인해 코로나에 누군가 걸렸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잠들기 힘들었다. 죄책감이 덮쳐 들어 집 밖에 나서면 눈 마주치기 두려웠다.
그런데 그런 일이 또 생기면 어쩌나?
"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면 등교를 하면 안 되는 건가? "
남편에게 이 말을 건네니 갑자기 그의 눈빛이 바뀐다.
" 그렇게 걱정되면 애들을 도로 집으로 불러."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하다.
남편이 보건소에 전화를 걸어 검사 결과가 나왔는지 확인을 한다. 음성이라고 한다. 남편은 출근할 준비를 하더니 멍하니 앉은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 내 걱정해줘서 고마워."
"??"
비비 꼬인 그의 말투. 왜일까?
자신이 코로나일까 봐 걱정하지 않아서 섭섭하다고 한다. 자신은 지난번에 우리의 확진으로 회사에서 그리 곤욕을 당했는데 그 걱정은 안 하고 애들 걱정만 한다고 한다.
딸아이는 엄마가 많이 아파서 자신이 아프단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았고 한다. 아이와 나는 부모 자식의 관계인데, 그 아이가 내 눈치를 보고 나를 배려하는 게 싫다.
남편은 자신의 아픔과 난처함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 남편과 나는 부부관계인데 남편은 나에 대한 배려는 뒷전이라 싫다.
사과하지 않겠다. 냉전을 먼저 깨지 않겠다. 침묵해야겠다. 나에게 지나간 전쟁, 코로나를 그가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로 설명할 수 없다면, 시간이 가길 기다리자. 그에게도 나 없이 혼자 지낼 힘든 시간이 올 테지. 그때 그가 나를 원망함으로써 우리가 비기는 날을 기다려 보자. 빚쟁이처럼 그의 공감과 배려를 구걸할 수는 없다.
독일에 있을 때 즐겨보던 유튜버가 있다. 올리버라는 미국인인데, 한국인 부인과 미국에서 살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고 아기를 미국스럽게 또 한국스럽게 키워내고 있다. 두 문화의 좋은 점만으로 균형을 맞춰가는 부부의 삶이 긍정의 기운을 준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아이는 혼자 아기 침대에서 잔다. 미국식 수면 습관이라 한다. 한국인 부인과도 마찰이 있었다는데, 홀로 잘 자고 일어나는 아이를 보면서 부부는 미국식의 습관을 이어나가고 있다. 뒹굴 거리며 스스로 잘 방법을 찾는 올리버의 아기. 칭얼거리기도, 노래를 부르기도 하다 결국 잠이 든다. 올리버가 돌쟁이 딸에게 말한다.
" 어차피 세상은 혼자야."
이 사실을 왜 이제 알았을까? 마흔이 넘어서야 깨닫는다. 위로와 배려는 나에게서 구한다. 혼자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남편에게 기대하고, 원망하다 그와 싸우는 일도 없었을 터이다. 딩굴거리다 울다 웃다 잠드는 돌쟁이처럼 나 또한 혼자로도 괜찮은 하루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