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양파 껍데기

by 호박씨

단톡방에 애들 학교서 연락이 와서 아이들을 데리고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갔다 왔다거나 자가 격리를 며칠씩 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보인다. 확진자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코로나 검사 한 번쯤 안 받은 사람 찾기가 더 힘들다. 나의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조언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라 입력 칸에 길게 써 내려갔다가 지우기를 반복이다. 빈 입력 칸에 커서만 깜박거린다. 말자 싶다. 코로나 걸렸었다고 커밍아웃하기엔 코로나는 아주 까다롭다. 양파껍질처럼 까도 까도 양파고, 확진이 되어 코로나가 나아도 내 마음은 계속 확진자다. 베인 양파 향처럼 코로나는 날 떠나지 않는다.


코로나의 신체적인 후유증은 다음과 같다.

나는 여전히도 냄새가 맡기가 쉽지 않고, 하루에 두세 번 정도 코가 갑자기 막혀서 비강 스프레이로 코막힘과 코막힘에서 오는 두통을 해결한다. 중학생, 초등학생인 두 아이는 지난주부터 발바닥에 작은 포진이 잡히기 시작했다. 두세 개 나던 것이 이젠 발바닥의 절반 정도를 덮었는데 아이들이 동시에 똑같은 양상을 보이는 것이 아무래도 코로나 증상인 것 같다. 매우 작고 붉은 수포인데 문지를 때만 좀 아프다고 하여 별다른 처치는 안 해주었다.

캘리포니아대학 피부과 신카이 교수가 라이브 사이언스지에 실은 논문에 의하면 집계 대상인 이탈리아 내 코로나 환자 가운데 20%에게서 두드러기나 발진이 발견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미국이나 유럽에서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던 작년에는 가와사키 병처럼 신생아나 어린이들의 팔과 다리 등에 아이들의 발에 진한 홍반이 극성이었다고 했었다.

입원 대기를 하다 사망한 중증 환자의 소식이나 어린이 코로나 사망환자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죽지 않고 살아 이런 뉴스를 접할 수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홀로 일주일을 꼬박 몸살과 오한, 복통으로 고생했지만 진통제를 먹고 이렇게 코로나를 지나간 것의 의미를 나는 매일매일 되새긴다. 무사히 코로나의 터널을 지나왔음에, 살아 있음에 감사하다는 말을 하루도 빠짐없이 블로그에 써 내려간다. 이 정도 아픈 것으로 코로나의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것은 그 의미를 평생 되새긴다 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신체적인 후유증이 있다면 관계적인 후유증도 있다.

관계적인 증상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타인과의 사회에서 내가 겪어가고 있는 코로나다. 코로나는 나의 인간관계를 양파 껍질처럼 한 겹 한 겹 벗겨내어 그 겹과 겹 사이의 거리를 알려준다. 참으로 신기하고 기묘한 병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친정 부모님은 자나 깨나 걱정이다. 이 두 분은 아직도 나를 1/3쯤은 코로나 환자로 본다. 후유증이 약화되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증상을 물어보고, 각종 면역과 영양보충 약을 디미신다. 시간이 더 흘러 증상이 완전히 사라지는 때가 되어서야 근심이 멈추실 테다.

남편은 이제 다신 코로나 안 걸리게 백신을 맞으라고 한다. 집에만 있던 마누라가 애들에게서 전염되어 자신이 없는 사이에 홀로 앓았으니 해결방안을 내림으로써 본인의 임무를 완수했다는 뿌듯함을 느끼고자 한다. 코로나 증상이 나타나고 5일 후에 남편을 만났고, 확진 판정을 받기까지 3일간 남편과 함께 지냈지만 남편은 음성이었다. 그러니 그는 여간 백신이 미덥지 않다.

남편의 회사에서는 남편이 별거 상태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코로나의 관계적 모습이다. 나의 코로나 확진은 얼굴도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된다. 아이들과 나만 걸리고 남편은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상황은 남편이 아프신 아버님을 뵙기 위해 우리와 함께 하지 않았었던 스토리는 쏙 빠진 모양새다. 관계의 거리가 멀어지면 스토리는 사라지고 상황만 남는다. 상황은 추측을 부르고 추측은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나에게 도착한다.


코로나의 무게가 무거운 친정 엄마는 본인의 친정, 외갓집 식구들에게 나의 코로나 확진 소식을 알렸다. 지난주 큰외삼촌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친척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내가 바라는 정답 같은 반응은 몸은 괜찮냐 이다. 그리고 시험에서 정답을 맞힌 이는 몇 되지 않는다.

" 나는 어딜 가도 마스크는 안 벗는다. 봐라. 마스크 잘 끼니고 있으니 코로나 안 걸리지 않니? 마스크 좀 잘 끼고 지내지 그랬니."

굉장한 오답이다. 또는 멀찌감치 나에게 접근하지 않는 이도 있다. 아이들과 나의 상태에 대해서 묻기 위해선 다가와야 하는데 다가오지도 묻지도 않는 이도 있다.


함께 독일 살이를 한 엄마들은 독일에 있기도, 한국에 있기도 하다. 코로나로 2년째 서로 드문드문 연락을 하지만, 나의 확진 사실을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있고 없는 관계가 있다. 일찍이 나와의 대화에서 편견 어린 시선을 강하게 드러낸 바가 있는 이에게는 코로나의 코자도 꺼내지 않는다. 고르고 골라 말을 꺼낸 이에게서 나와 아이들의 건강에 대한 걱정이 나오니 너무나 다행이다. 본인의 가족도 코로나에 걸렸었는데 그간 나에겐 말하지 않은 이도 있다. 그이 또한 나에게 관계의 거리를 재고 있었던 것일까? 나의 확진 사실을 알리자 그제야 1년도 넘은 그녀의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코로나 확산 초반에 앓았던 그녀의 남편은 홀로 독일에서 많이 아팠을 테고, 혼자 진통제를 먹으며 버텼을 것이 눈에 선하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그녀의 시간을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양파를 계속 까다 보면 양파 향이 옅어진다. 더 이상 맵지 않다. 울다 보면 양파 속에 이르고 뽀얗디 뽀얀 양파 속은 매운 양파에 단련된 눈 덕분에 이제 달기만 하다. 코로나 덕에 나는 이제 누가 양파 속이고 누가 양파 껍데기인지 선명히 알 수 있다. 코로나는 양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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