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아름다운 코로나 나라

by 호박씨

온라인에서 맺은 인연을 처음 만나는 날이었다. 귀국해서 두문불출하여 독일 촌놈, 반외국인인 자로 산 지가 어언 2년이라, H가 만나자고 하는 여의도엔 어디가 좋은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녀가 레스토랑도 정해주고, 찾아오는 길도 알려준다. 다정하다. 그래서 설레었다.


공황장애가 생긴 후로는 어딘가를 찾아가는 일은 어렵다. 여기가 어딘가 하고 불안감이 밀려오면 가슴이 답답해오기 때문이다. 헤맬 수도 있고, 낯설 수도 있는 건데 스스로에게 여유로워지면 이 병도 사라질 것 같다. IFC 몰은 환하다. 그리고 낯설다. 런던의 대형몰을 떠올렸다.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웨스트필드 쇼핑몰은 런던 유일의 대형 쇼핑몰이다. 우리 집이 있던 독일 시골 동네가 지긋지긋하고 나의 서울이 그리워 웨스트필드에 도착하자 물 만난 듯 좋아라 했었다. 6년 전을 떠올려 보았다. 공황장애가 없으며, 도시와 내 나라를 그리워하던 거칠 것 없더 그 여자라면 IFC몰은 천국이였겠지. 나였던 그 여자가 되자라고 생각한 순간 두근거림이 잦아든다.


잠잠해지자 레스토랑도 잘 찾는다.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라 대기줄이 있다. 모두 백신 패스 인증을 위해 휴대폰을 들고 있다.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름은 격리 확인서다. 상단에는 코로나 확진 날짜와 격리 해제일이 명시되어있고, 하단에는 서초구 보건소 직인이 찍혀 있다. 입구의 직원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격리 확인서 처음 보셨나? 오늘 처음 보는 이 직원분에게 지나간 코로나의 시간을 종이 한 장으로 보여드린다. 우린 서로 간단히 말한다.

" 이거면 될까요?"

" 아. 네."



직원은 격리 확인서와 신분증을 훓었고, 식당 안 자리로 안내해주었다. H가 오기까진 5분 정도 남아, 격리 확인서를 뜯어보았다. 아이와 같이 확진이 되어 격리 확인서는 두 아이와 나에게 각각 1장씩 총 3장이 문자로 발행되었다.

그런데, 격리 해제일이 2021년이 아닌 2010년으로 되어있다. 문서를 만든 담당 공무원분이 작은 아이의 출생 연도인 2010을 복사해 붙이셨나 보다. 졸지에 2010년에 코로나가 걸려 격리되었었던 것으로 기록이 남았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2010년이면 메르스의 해인데, 그럼 이 문서는 메르스 격리 확인서이겠다.


전 세계적 논란의 대상인 백신 패스다. 백신을 맞지 않으면 구글은 직원을 해고도 한다. 백신 접종으로부터의 자유를 주고, 확진에 대한 증거가 되는 이 공문서다. 어떤 담당공무원이 컴퓨터로 작성하고 직인 pdf를 갖다 붙인 작업의 결과물이라 해제 연도가 잘못되어 있을지언정 지엄한 공문서다.


H가 왔다. 두 차례의 접종을 마친 그녀는 백신 패스를 보여주고 입장했다. 어떻게 들어왔냐고 묻길래 그녀에게 격리 확인서를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확진 스토리를 꺼냈다. 온라인으로만 만나던 그녀와 처음 나누는 대화는 역시 코로나, 백신, 확진, 백신 패스다. 우리는 어색함 없이 코로나로 대동단결이다.



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함께 고통받고 있지만, 그 고통이 같은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한 명 한 명에겐 코로나의 사연이 700여 일의 시간만 큼씩 주어져있으나, 기록된 고통과 그렇지 않은 고통이 존재한다. 침묵하는 죽음 또한 있다. 흑사병이 지나고 살아남은 이들은 이야기꾼들이 되어 르네상스를 열었듯이, 코로나는 살아남은 이 개개인을 스토리 소유자로 만들었다.

웨스트 필드 쇼핑몰을 휘저으면 EC카드를 내밀고 다니던 손은 설거지와 밥 차리기로 주부습진 투성이다. 터진 손은 쉼 없이 자판을 두드린다. 코로나와 비슷한 시기에 찾아온 공황장애를 앓는 호박씨가 되었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눈빛을 살피며 흔들리는 그들의 영혼을 읽고 싶어 진다. 공황장애 환자이나 배려받지 못해 격리 시설에서 목을 맨 이의 기사가 마음에 와 박힌다. 나에게 마음의 병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거들떠보지 않았을 사회면 기사이겠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코로나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삶의 순간순간을 낚아채어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내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에 말이다. 격리 확인서의 날짜를 틀리게 작성한 공무원의 삶이며, 두 달 전 나의 코로나 투병을 확인해야만 하는 식당 직원의 삶이다. 그리고 코로나로 사람이 그리운 호박씨에게 인연이 되어준 H의 스토리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코로나 나라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코로나 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