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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메이링 미국의 맨디

by 호박씨

종이신문을 받고 있다. 아는 이가 하나 없는 이 동네에서 한동안은 매일 아침 문 앞에 놓인 신문이 세상과 연결되었다는 안도감을 주었다. 독일에서도 신문을 좋아했다. 매수 수요일 오는 지역 신문에서 아는 독일어 찾기 게임도 했고, 신문 사이에 낀 마트 전단지와 맥도널드 쿠폰도 사랑했다. 독일에선 내가 있는 낯선 이곳이 알고 싶어 기꺼이 읽었다. 한국에 오니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는 한국의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어 버벅대었다. 내 나라인데 머뭇거리는 것을 견딜 수 없어 신문에 매달렸다.

한국을 알고 싶어 읽는 종이 신문인데, 시선은 국제면, 신문의 A12에 머물러 있다. 미국이 나오면 미국 친구들을 생각하고, 중국이 나오면 중국인들과의 인연을 떠올린다. 국제면을 보면 타국에서의 사람들이 머리를 스친다.


대만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의 최전선에 위치한다. 반도체 세계 1위의 TSMC , 대만 해협의 중국 항공모함, 그리고 어젠 대만의 국민투표까지 다양한 대만의 행보를 신문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해외 영업팀 막내 사원에게 즐거운 출장이란 드문 일일 것이다. 나에게 대만은 그리 드물다는 즐거운 출장지였다. 타이베이 시에서 열리는 전시회 참여로 팀장님과 나를 포함한 사원 3명이 대만으로 향했다. 사원들도 콧바람 쐬어 보라며 CEO 가 즉흥적으로 결정한 출장이었다. 팀장님의 주 출장지는 유럽이었으니 대만은 사원들을 여럿 보내고도 생색 내기 좋은 항공료가 드는 곳이다.

서른 안된 동년배 해외영업팀 여사원 셋이 갔으니 관광이나 진배없었다. 호텔방을 같이 써도, 3일 내내 붙어 다녀도 의견 차가 없을 만큼 합이 맞는 셋이었다. 전시회는 이틀이었고 팀장님은 대만 온 김에 주변국 미팅을 잡았다며 출장 이틀 차에 빠지셨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는 팀장님까지 없었으니 남의 돈으로 하는 여행 같아 뭐든 좋았다. 타이베이 시내에 비가 내렸다. 열대의 스콜이 쏟아지면 러시아워로 꼼짝 못 하고 있는 관광버스 창에 빗물이 흐른다. 오토바이 불빛이 번졌다. 그마저도 좋았다.


처음 본 메이링은 타이베이 101 같았다. 팥죽색 구찌백과 세련된 단발이 101 타워를 생각나게 했다. 도시적이고 화려하다. 그녀가 자기소개를 한다. 이제 그녀는 맨디다. 메이링은 영어로 발음하기 어렵지 않다. 이름에 '어'가 들어가 영어 이름이 꼭 필요한 나와는 달리 그녀의 대만 이름은 그대로 써도 괜찮은 편이다. 맨디라는 영어 이름 또한 맞춤옷처럼 그녀에게 적절했다. 깔맞춤 같은 그녀의 이름이 부럽다. 영어 이름을 고르지 못하고 타이밍도 놓쳐 발음하기 힘든 한국 이름을 고수하고 있던 중이었던 나에겐 그러했다.

그녀의 가족은 뮌헨에 3년을 살고 프랑크푸르트로 이사 왔다고 했다. 프랑크푸르트는 처음이지만 독일살이는 3년 차다. 이제 겨우 독일 살이 반년 된 나에겐 3년이란 회차도 부럽다. 영어를 잘하는 그녀의 아들이 부럽다. 그녀와 친해져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이유가 그녀의 둘째 아들이었다. 대만 고궁박물관 같은 맨디의 아들 윌리엄이 좋았다. 때 하나 묻지 않은 대리석 계단에 질서 정연하게 진열된 유물들처럼 반듯한 모범생 윌리엄. 아들도 저랬으면 좋겠다 싶다. 게다가 맨디는 미국 유학파다. 맨디라는 이름은 20여 년 전부터 그녀의 것이었다. 미국 학교를 다녀보았으니 국제학교 생활도 그녀에겐 수월하겠다. 좌충우돌인 나와는 다르게 말이다.


한국으로 발령이 나고 맨디와는 여러 번 환송회를 했다. 맨디가 그간 소개해준 홍콩인, 중국인들과 함께 브런치를 했다. 함께 일하던 국제학교 자원봉사 그룹인 Bookstore 매니저들과 베트남식 점심을 먹었다. 아들끼리 절친인 미국인 트랭과 셋이서는 각자 음식을 가져와 우리 집에서 케이터링 파티를 했다. 그녀의 남편과는 한식당에서 불고기를 대접했다. 환송회 때마다 맨디는 눈시울을 붉혔다. 대만으로 돌아갈 기약이 없는 맨디 남편의 법인장 임기 때문에 맨디는 국제학교 커뮤니티에 머물며 여럿과 계속 이별을 했다. 주재원이나 외교관이 대부분인 국제학교에서 떠남은 반복되는데, 맨디의 아쉬움은 무뎌지지 않았다.


대만 출장 이튿날 밤 10시, 우리 셋은 야시장 가이드 투어를 했다. 호텔에서 가까운 야시장을 잡았기 때문에 관광객들 사이에서 그리 유명한 곳은 아니라고 가이드는 말했다. 그럼에도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101 타워와 고궁박물관을 보고, 야시장을 가니 세끼 연속 샤오롱 빠오만 먹다 칠리크랩 먹는 기분이다. 섬세한 만두피에 육즙 가득한 샤오롱 빠오도 계속 접하면 물린다. 이럴 때 칠리 크랩은 개운하고 정겹다. 야시장 거리의 가득한 음식들, 그리고 음식만큼이나 사람도 가득하다. 아무렇게나 입고 있으며 아무 곳에서나 먹고 있다.


메이링이 마지막까지 맨디이기만 했더라면 오늘의 기록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그녀가 끝까지 부럽기만 한 존재였다면, 그녀를 친구라 생각했을까?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 채근담의 맑은 물 같은 맨디는 어려웠다. 어디를 가자고 권하면 고마웠고, 뭔가를 함께하고 나면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나에겐 숙제 같은 맨디였다.

친구라 부르기보단 5년 동안 친했던 이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별 앞에서 그녀가 보인 눈물에 대만의 야시장을 떠올렸다. 야시장의 사람들은 가벼운 음식을 나누며, 긴 하루를 마감한다. 삶의 열정에 들떠 쉽게 잠들지 못한다. 사는 모습을 보여준 야시장이 나에겐 진짜 대만이다. 101 타워와 고궁박물관만 보고 대만을 떠났더라면 대만 출장을 이렇게 긴 시간 동안 기억하진 않았을 것이다.


친구의 나라인 대만에 대한 기사를 읽는다. 막상 친구는 대만에 있지 않지만, 그녀의 나라를 염려하고 주의를 기울인다. 신문을 보며 메이링의 안부를 궁금해한다. 오늘도 그녀와 함께 한 시간들을 되돌이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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