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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미소는 새해에는 그만

by 호박씨

기록 하나 없이도 10년이 넘게 지나도, 어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한 일들이 있다. 그날도 돌아가고 다시 돌아가고 수억 번을 돌아가는 행위는 뇌가 한다. 무엇을 위해서일까?


토요일이었다. 샘플 작업실이 있는 신림동으로 출근했다. 다른 작업실 사장님들은 말 건네기가 쉽지 않았다. 작지를 들고 가면 눈도 안 마주치고 인상부터 찌푸렸으니, 작업실 가기 전부터 사무실 책상에 앉아 사장님들 한 명 한 명을 떠올리고 망설이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 작업실 사장님은 그나마 거절이 부드러운 편이셨다. 박아낸 샘플의 매무시도 델리( 마감일) 도 별로라고 사수인 선배는 이용하지도 않는 작업실이다. 뻔히 알지만, 그 작업실로 가는 데에는 이유는 하나였다. 거절당하고 다시 부탁하는 과정이 나에겐 어렵다.


델리가 급해서 이 샘플실에 작업을 맡긴 것이 며칠 전이였다. 샘플의 진행이 어느 정도 되었는지 확인하러 갔던 날이었다. 주 5일 근무제가 공기업과 몇몇 대기업에서야 말 나오기 시작하던 때였으니 중견 의류 회사 사원의 토요일 샘플실 행은 당연한 일이다. 봉제 작업하시는 분들은 토요일은 순번 작업을 하셔서, 그날 작업실은 아무도 없었다.

" 이번 샘플 잘 부탁드리게요. 다음 주 수요일에 꼭 나가야 해요. 사장님."

할 수 있는 최대의 미소를 담아 부탁했다. 사장님은 작업대 건너편에 서있다가 다가왔다. 그리고 내 팔뚝을 맨손으로 잡았다. 여름이 한창이라 소매가 짧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의 맨손이 팔뚝 피부에 닿았다. 팔뚝살을 쥐었다가 놓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1초 정도였겠다.


시간은 사진처럼 순간에 멈춰있다. 그 후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다시 한번 샘플을 잘 부탁드린다며 인사를 드리고 작업실을 나와 본사가 있는 여의도를 향했을 테다.

직장생활을 하지 않으면 이런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긴소매를 입었더라면 그 사장의 손을 피부로 느끼지 않았을 텐데 정도의 후회를 했다. 20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 그 자리에 마흔이 넘은 은 호박씨를 보낸다고 해도 호박씨는 순간 아무 말 못 하고 얼음이 되어버릴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색한 상황에 처하면 미소를 지어왔다. 마음이 불편하면 미소로 무마하려 했던 것 같다.

미소를 만들어 내려면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입 주변 근육이 위로 올라가면서 눈 또한 양쪽으로 잡아당겨져 눈꼬리도 쳐지게 된다. 표정이란 것이 자기 맘대로 지어질까만은 근육이 움직여야 하는 일이라면 소요되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을 놓치지 않고 잡는다면 자기 표정도 스스로 통제가 되지 않을까?


미국식 국제학교지만, 독일에 위치하니 유럽답게 축제 빼면 이 국제학교도 싱겁기 그지없겠다. 가을이면 독일의 옥토버 페스트와 유사한 테마로 가을 축제를 한다. 테마는 호박, 사과 등의 풍성한 추수와 관련된 것들이다.

아이들이 국제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 했던 여러 봉사활동 중 시간을 가장 많이 들인 것은 교내 bookstore volunteer 북스토어 매니저 활동이었다. 북스토어는 평소에는 학생들의 준비물과 각종 수납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다가 축제 때가 되면 팝업을 한다. 학교의 상징인 버건디 컬러의 로고 Frankfurt warriors가 박힌 각종 티셔츠나 스포츠 용품들을 판매한다. 학교 로고가 쓰인 우산이나 문방구 따위의 아이템은 그 종류가 점점 늘어났었는데 그것은 북스토어 매니저의 장이였던 인도네시아계 엄마 E가 부지런을 떨어서였다. E는 매니저 활동에 진심이었고 그녀의 기운이 힘입어 봉사활동의 의미를 찾곤 했다.


축제 때 팝업 매출이 크다 보니 팝업 카운터는 거의 그녀가 도맡아 했다. 그런데 이번 축제는 10여 명의 매니저들이 함께 있는 Whats app 톡방에 부탁의 메시지를 거듭 보냈다. 가을축제 기간에 가족행사가 있어 독일에 없을 예정이니 팝업을 부탁한다고 했다. 그런데 하루 이틀이 지나도 매니저들 누구도 답이 없다.

학교 바로 앞에 사는 나야 어차피 애들이 가을 축제날 내내 학교에서 죽치고 놀 예정이니까, 아지트 삼아 북스토어에 있으면서 판매도 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북스토어 일은 몇 년째이니 가격을 외울 정도로 시스템에 적응하고 있던 상태였기도 하다. 다른 한국 엄마들도 내가 북스토어에 있으면 평소에 영어 때문에 꺼리던 북스토어를 이용하러 올 수 있을 것이란 추측도 했다.


축제날 10시부터 3시까지 팝업 카운터를 맡아보았다. 날씨가 이번 가을축제를 돕지 않았다. 비가 흩뿌리고 바람이 거세 축제는 파하는 분위기라 북스토어 앞은 한산했다. 클로징 하기 30분쯤 전이였을까? T의 아빠가 카운터로 다가왔다. 아이들을 챙기는 전형적인 미국 아빠인 T다. 학교를 등교하다시피 와서 Volunteer 하다 보니 T 아빠와 얼굴도 트고 대화도 나눴던 터였다. 싱긋 웃으며 인사를 하며 말한다.

" 오늘 계속 서 있는 거야? 혼자 수고가 많아. "

"응. 그렇지? 괜찮아. 뭐 필요한 것 있어? "


대화를 주고받는 찰나에 그의 손이 카운터 위에 얹힌 내 손 위에 포개졌다. 미소를 띤 그의 얼굴에 미소로 답해주고 있던 찰나였는데, 그의 손이 느껴졌다. 내 손을 빼지 못했고, 미소를 거두지 못했다. 그의 검지가 내 손등을 훑었는데 거기엔 1초 정도 걸린 것 같다. 1초 동안 나에게 일어난 것은 또다시 얼음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별 일 아니다' 또는 '친밀감의 표시다'라고 상황을 넘기고 싶었지만 세상 어려운 일은 나를 속이는 것이다. 그렇게 만만히 잊혀 지나가지 않을 노릇이라는 것을 그때 알고 있었다. 하얗게 된 머릿속 때문에 10분 일찍 팝업 스토어를 닫았다. E에게 날씨가 안 좋아 더 이상 북스토어 방문객은 없을 것 같으니 예정보다 빨리 매출 정산하고 마감하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덕분에 가족행사를 즐길 수 있었다면 E는 거듭 고마움의 텍스트를 보냈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반복해서 기억의 필름을 돌려본다. 원인은 정답을 알 수 없어 일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면 이런 일은 없을 거라고 속단했다. 정답이 아니었다.

다시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정답이 알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 일단 나를 탓하게 된다. 평소에 T 아빠에게 과한 친밀감을 표현했었는지, 그날 어떤 표정으로 그를 맞았는지 생각해본다. 다시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일이 지나고 나면, 지난 것은 어쩔 수 없으니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싶다. 발생할 확률을 줄이기 위해서 바뀌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미소인 것 같다. 감정노동만큼이나 비싼 노동이 없을 것이다. 미소는 공짜가 아닌 것을 모르고 살았다. 독일에 살면서도 깨닫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난처함이 발생하면 짓는 미소는 독일에서도 국제학교에서도 애매함만을 불러일으켰다. 반면, 독일에서의 일상을 살면서 미소 짓지 않는 독일인들을 의아해했다. 물건을 사러 가면 한국서 의례 접하던 미소 띤 얼굴은 독일에선 찾기 힘들다.

남의 나라 살이는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다름 속에서 익숙함을 찾고, 낯섦 속에서 친밀함을 찾는다. 과거의 내 행동 패턴을 그대로 현재에 적용시키게 되는 것이 인간인데, 거기에서 파열음이 들리면 해오던 패턴을 멈추게 된다. 불편한다는 마음을 표현할 순발력이 없어 그것을 대신하던 애매한 미소는 새해에는 그만하자. 더 이상 거짓 미소는 얼굴에 띠우지 말자.


딸아이는 호랑이띠다. 지나간 불편한 상황들을 되돌이킬 때마다 딸아이를 생각한다. 아이가 세상에 나가서 닥칠 일들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내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었듯이, 딸아이도 나에게 토로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하여 딸아이 앞에서 호랑이 같이 살아보리라 마음먹어 본다. 어색하여 미소 짓고, 애매할 때 침묵하던 호박씨는 독일에 벗어두고 온 듯이 살아야겠다. 과거에 지었던 미소도, 미래에 딸아이가 행할 선의도 공짜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호랑이 같은 영혼을 가진 존귀한 존재이기에 2022는 각자의 존귀함을 실천하는 삶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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