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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 개구리 feat. 다국적 커플들

by 호박씨

옆집으로 이사 온 안드레아의 남편은 독일인에 대한 편견을 깨준 고마운 이다. 국가에 따라 국민이 가지는 성향이 있다고 생각해야 사실 남의 나라 살이가 쉬워지긴 한다. 그들의 일정한 행동 패턴을 규정하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맞추는 것이 가능해지니 말이다. 남의 나라 살이 하는 한 명이 독일이라는 전체에 맞추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떤 잡음도 없겠거니 또는 그들 속에서 안보이듯 섞여 들어가 자연스럽게 눈에 띄지 않는 안도감을 갖고 싶었다.


안드레아의 남편 G는 대만인 여자와 결혼했다.

동양인 여자와 결혼하는 남자는 자국 사회에서 루저 일지도 모른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BTS가 인기를 얻던 초반, 이런 뉴스가 꽤나 횡횡했다. 미국 루저들이나 방탄을 좋아하는 것이라는 댓글은 방탄소년단의 기사 밑에 항상 달려있었다. 역사 속에서 한국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하대한다. 방탄을 좋아하는 미국 여자애들은, 서양 여자애들은 사회에서 아웃사이더일 거야라고 했다. 방탄을 보고 게이 문화를 조장한다며 비난하는 미국의 주류 pop 계 인물들의 시각과 한치도 다를 바 없는 관점을 우리 스스로도 갖고 있다.


호박씨도 다르지 않다. G는 독일인 남성 치고는 키가 매우 작다. 유럽 국가 중 평균 신장 크기로 top 5에 드는 독일이니 G가 괜찮은 독일 여성을 배우자로 맞기에는 힘들 것 같다.

그래서 작은 대만인 여성을 선택했나 보다 생각했다. Ph.D 의학박사 학위가 있는 그가 영리하게 순종적이고 키 작은 동양인을 선택함으로써 본인이 자국에서 만날 수 있는 여성보다 나은 조건의 여자를 선택한 것이다 여겼다.


인생 처음으로 다양한 사람들 속에 살면서 우물 안 개구리의 편협한 우물 벽은 쉽사리 깨지지 않는다. 그런데 G라는 이 사람, 대화하는 맛이 있다. 일단 키가 152 밖에 안 되는 호박씨에겐 독일인 남성은 물론이거니와 웬만한 독일인 여성도 눈 마주치고 대화하긴 쉽지 않다. 키가 커서다. G 씨는 눈높이가 맞는 독일 남성이다!

나를 만나면 그는 대화를 이어 나가려는 노력을 한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으니 그를 미국인으로 이해하려고 했었다. 톤이 낮은 미국인 남성의 말은 리스닝에 2배, 3배의 노력이 든다. G와의 대화는 토씨 하나까지도 잘 들린다. 이제와 그의 음성이 잘 들렸던 이유를 짐작한다. G가 나에게 공감을 기대하고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가 나에게 건네었던 대화의 첫 번째는 "자신이 미국에서 독일로 돌아온 이유가 도날드 트럼프 때문이다."였다. 그는 내가 도날드 트럼프 싫어할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미국인이었다면 그는 보자마자 첫 만남, 첫 대화에 농담으로 포장된 솔직함을 건네길 망설였을 테다.


그가 나눈 두 번째 대화는 안드레아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북스토어에서 근무를 하던 날이었다. 그가 아들 felix의 준비물을 챙겨준다고 북스토어를 방문했다. 옆집 살지만 그를 마주치긴 드물어 반가운 마음에 안부를 물으니 안드레아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대만에 간지가 열흘이 넘었다고 했다. 일단, 부인 없이 열흘 넘게 지내고 있는 데다가 아들 준비물을 챙기려고 학교에 온 것만으로도 G는 훈훈한 남편이다.

그리고 나에게 안드레아의 상태에 대해서 말한다.

" 안드레아가 많이 힘들어해. 나는 부모님이 다 살아계셔서 안드레아가 어떻게 느끼는지 가늠하기 힘들어."

그는 안드레아와의 공감을 시도하고, 시도의 방법을 내게 묻는다. 동양인 아내에게 부모란 가족이란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다. 부모를 잃는 경험을 지난 자신의 아내가 삶을 어떻게 바라볼지 알고 싶어 한다.


그의 예상처럼, 대만인인 안드레아에게 친정의 의미는 어머어마했으며, 아버지의 부재도 그녀에겐 인생의 큰 변화였다. 돌아온 안드레아는 채식주의자를 선언했다. 아빠를 닮아 키가 작은 Felix는 한창 먹고 자랄 10대였다. 안드레아는 채식을 했고, Felix의 끼니는 물론 챙겨주었지만, 안드레아의 냉장고 속 고기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G는 그녀의 채식을 존중해주었고, 안드레아는 내가 떠나는 날까지도 꿋꿋이 독일의 베지테리안으로 살아갔다.


자, 이제 개구리가 망치를 들고 우물 벽을 깨 본다. 당신도 G가 루저라서, 선택받기 힘든 독일 남성이라서 대만인 아내를 얻었다고 생각하는가?


북스토어에 학생 손님이 유난히 없는 시기가 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긴 크리스마스 연휴가 다가오면 북스토어 하루 매출이 50유로, 6만 원도 안 되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이면 맨디와 작은북 스토어 안쪽 공간에 마주 앉은 호박씨는 프리 토킹 시간, 쓸데가 없는 영어를 조잘거리는 것으로 지루한 시간을 메운다.

맨디가 말한다.

" 근데, 왜 동양인 남자랑 결혼한 서양 여자는 한 명도 없고, 학교에 다국적 커플들은 조합이 언제나 서양 남자와 동양 여자인 걸까? "

그렇게 말이다.


트랭은 베트남계 미국인이다. 보트 피플이었던 부모님의 10명이 넘는 자녀 중 끝에서 두 번째인 트랭은 베트남을 가본 적도 베트남어를 읽고 쓸 줄도 모른다. 트랭의 남편은 아일랜드 출신의 B다. 이 커플도 서로를 미국에서 만났다.


" 우리 집에 바비큐 파티하러 와."

트랭의 막내와 우리 집 첫째가 단짝이고, 15살이던 트랭의 둘째 Sarah는 당시 7살이던 우리 딸 눈엔 그야말로 아이돌, 우상이었기에 가족 모임을 하게 되면 호박씨는 아늑하고 편안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애들은 끼리끼리 놀고 고기는 B가 굽니다. 한국 불고기 좋아하니 불고기 사다가 양념해가고, 담가 둔 내 김치만 가져가면 된다. 손수 만든 김치를 가져가면, 주변 한인 마트에서 비싸게 김치를 사 먹는 트랭이 진심으로 고마워한다.

트랭이 맵고, 생선류의 감칠맛이 나는 베트남 음식을 그리워하는 것을 알기에 그녀에게도 힐링 시간을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B가 굽고, 나머지들은 음식을 나르고 열심히 먹고, 알코올과 대화의 시간이 왔다.

먹으려고 모였으니 먹는 주제는 늘 바베큐장을 맴돈다.

콜라를 가지러 온 트랭의 아이들을 보다가 나온 이야기였다.

" 할머니는 콜라가 귀한 음식이라고 생각해서 망설임 없이 나에게 콜라를 주었었죠. 우리 할머니조차도 콜라를 좋아했었어요. "

음료수를 들고 가는 아이들을 보며 트랭이 말했다.

그러자 B가 높은 톤으로 답하다.

" 할머니가 못 배우셔서 콜라가 얼마나 안 좋은지 모르고 그렇게 행동하신 거지."

보트 피플이었으며, 바다를 건너 미국에 도착해 그 삶을 이어 갔던 트랭의 할머니가 바비큐 파티에 소환되신 순간이었다. B의 말에 트랭은 응수하지 않고 입을 닫았다. 트랭 옆에 앉은 호박씨의 얼굴은 이미 마신 독일표 리슬링 와인에 붉어져 있었기에, 이 파티에 있는 누구도 호박씨 눈에서 튀던 불꽃은 보지 못했다.

어벤저스가 되어 눈에서 레이저쯤 쏠 수 있다면, B를 향해서 레이저 한 바가지를 쏟아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B의 아일랜드 시골집 이야기가 나왔다. B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신의 고향 정취에 대해 자랑했다. 언제든 아이랜드를 방문하면, 부모님의 그 시골집에서 묵으면 된다며, 하루 들르는 식의 여행 말고 홈스테이처럼 몇 주를 지내봐도 그 맛이 있다고 추천했다.

잠자코 B의 말을 듣고 있던 트랭이 말한다.

" 아시안이 그 동네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었나 봐. 내가 갔을 때 모든 사람이 나만 쳐다 보더라고."

얼마나 시골 일지는 B가 직접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사돈의 팔촌까지 모여사는 유럽의 농촌 마을은 홈스테이가 아니어도 독일 산지 몇 년 차가 된 나는 짐작이 간다.

미녀 삼총사의 미녀 Lucy Liu와 꼭 닮은 트랭이 나에겐 할리우드 배우보다 더 멋지다. 손녀를 콜라로 키워낸 베트남 할머니를 가진 트랭이 나에겐 히어로다.

" 트랭을 루시 리우로 안 것은 아닐까? 싸인해 달라는 사람은 없었어, 트랭?"

한껏 그녀를 치켜주며 루시 리우의 마담 투르소와 함께 살고 있는 B에게 나오지도 않는 레이저를 쏴 보내 본다.


그저 다양한 사람들일 어우러져 산다는 결론에 이르고 나면, 사실 더 혼란스러운 것이 타향살이다. 이들은 모두 인종차별주의 자야라고 생각하면 다칠 확률이 낮다. 애꿎은 희망을 가져 상처 입기보다는 미리 경계 태세로 살면 상처 덜 입을 수 있다.

다국적 커플들은 대부분 서양 남성과 동양 여성 커플이며, 서양 남성들은 동양인을 이해할 생각보다는 본인의 이득을 위해서 그런 선택을 한 거야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상처 입지 않기 위해서 세상을 편리하게 바라보며 살아가던 어느 날의 한가운데서 내가 부끄러워지는 날이 온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망치를 건네주는 이가 세상에는 존재한다.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는 이가 무서워 개구리는 사람만 나타나면 우물 벽에 바짝 붙어 없는 척을 한다. 그런 개구리는 우물 밖으로 나올 기회를 잡지 못해 그 안에 갇혀 머무르며 그저 살아 있음에 감사할 뿐, 바깥세상은 위험하고 우물은 안전하다 여긴다.


독일 사는 동안에는 사람 그림자만 어른 대도 돌을 던질까 무서워하던 개구리였다. 감사하게도 나에겐 또 이렇게 하루가 주어지기에 이젠 상처 입을까 봐 지레 숨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세상엔 돌을 던지는 이보다 내가 우물 밖으로 나오기를 기도하는 우물 밖의 이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깨닫음과 깨부숨의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



P.S. 트랭의 이름은 Trang이다. 베트남어로 췡이라 발음해야한다. 아무도 그녀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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