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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 그냥 니들 다 해.

by 호박씨

크레타 섬이었다. 삼십 년짜리 로망의 실현 그리스였다. 첫사랑의 끝은 슬프다던데 웬걸 그리스란 첫사랑은 예감대로 멋지기 그지없다. IMF 가 그리스의 경제위기를 도와주었다는 소식에 관광으로 라도 가서 그리스를 안아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6월 즈음의 그리스는 생각보다 더웠지만, 더위마저도 따사롭게 느껴졌다.

크레타 섬 해안가의 식당에서 10유로짜리에 세숫대야만 한 접시에 담겨 나온 시저 샐러드를 보고 그리스 물가에 또 한 번 반한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였다.

딸아이가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한다.

해변을 따라 줄지어 서있던 하얗다 못해 눈부신 레스토랑들 중 가까이 있는 아무 곳이나 골라 갔다.

모객을 하려고 레스토랑 현관 앞에 반쯤 나온 웨이터에게 물었다.

"화장실 써도 되겠어요? "


돌아오는 답이 신기했다.

" 중국인이신가요? "

화장실을 사용하는데 국적을 밝혀야 하다니, 신기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순간 마음 바닥 저편에서 올라오는 실험 정신을 보았다. 중국인이라고 해볼까? 예비 작가의 관찰 정신이라고 해두자. 아이는 화장실이 급하니 일단 정직하고 국적을 밝히고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호박씨의 본캐이렸다.


2018년, 유럽 어딜 가도 중국인들이 많다. Oberusel에 인접한 프랑크푸르트 신도시는 중국인들의 투자처로 각광받았다. 국제 학교 유치원에는 짧은 머리의 중국 남자아이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샤넬백을 둘러멘 아이들의 중국 엄마들이 카페테리아를 메꿨다.

중국인들이 늘다 보니, 주거지 주변에 아시안 식당과 아시안 슈퍼의 수가 늘어 좋았다. 직접적으로 호박씨에게 피해랄 것도 없었다.


친정엄마가 드디어 독일을 방문했던 때였다. 엄마를 모시고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향했다. 코스 선택이 그리 현명하진 못했다. 유럽 여행이야 그야말로 DIY다. 엄마의 무릎이 예전 같이 못하는 사실을 오랜만에 엄마를 만난 나는 알지 못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지은 루트비히는 흑림 지대 깊숙이 성을 숨겨 두었다. 무엇이 그를 깊은 산속까지 몰아넣었는지 가늠할 순 없지만, 숲으로 들어가 성을 찾아가면 갈수록 누구도 찾아가기 힘든 곳에 부러 그가 지어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성 입구까지 오르는 가파르고도 가파른 길을 오르는 중국인들도 보인다. 작은 아이가 또 화장실이 급하단다. 내려가기도 올라가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내려가면 아이가 경사를 또 올라야 하고, 올라가서 화장실을 찾자니 성에다 도달해야 화장실이 있겠는데. 화장실 인심이 야박한 유럽이 한국 어린이에겐 상냥하지 않다.

오르는 길가의 빽빽한 흑림 사이에서 비료 좀 주는 수밖에. 아이를 데리고 잽싸게 노상방뇨를 시키고 나오는데 중국인 아주머니가 우리 뒤를 바짝 쫓아 들어온다. 그러더니 아이가 볼 일 본 자리 옆에 서서 바지를 내리신다. 이럴 땐 그녀를 위해서 자리를 피해 주는 것이 호박씨 선에서의 상식이라 뒤도 안 돌아보고 숲을 빠져나왔다. 숲 밖에 서 계시던 친정엄마가 기겁을 하신다. 아이이면 모를까 어른이 왜 저러냐며 혀를 찬다.

엄마에게 슬그머니 중국인이라고 이야기해주니, 엄마가 알고 있다고 하신다.


유럽 나와 맨 처음 나에게 말을 걸었던 아시안 또한 중국인이었다. 눈썰매는 알프스에서 타 줘야 하는 것 아니겠다며 아이들을 데리고 루체른으로 향했다. 고생도 그런 고생이 없었다. 블로그도 안 쓰던 때인데, 카톡에라도 사진을 올리고 ' 눈썰매는 역시 알프스다.'라는 식의 못난 짓거리를 하기 위해서 우리는 산악 버스를 타고 필라투스 중턱의 야외 눈썰매장으로 향했다. 여기도 그야말로 DIY, 네가 직접 다하세요다.

눈썰매는 나무로 되어있어 무게도 장난이 아닌 데다가, 상부로 올라가는 컨베이어 벨트는커녕 변변한 길도 빠져 있지 않다. 그러니 올라가기 싫어서 아이들은 한번 타고 내려온 길로 눈썰매장 아랫단의 쌓인 눈에서 눈 장난을 하고 놀았다. 눈썰매를 끌고 가기 무거워서 독려하기도 싫은 지경이었다.

아이들 사진을 찍어 주고 있던 때에 시선이 느껴진다. 빨간 점퍼를 입은 젊은 아시안이었다.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한다. 별로 원하진 않았지만, 뭐 해주겠다고 하니 포즈를 취해본다. 혹시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그녀는 한눈에 봐도 중국인이다. 혼자 여행을 왔다면서 말을 걸어온다. 묻지도 않은 그녀의 이야기를 해주니, 혼자의 여행이 길었나 보다 했다.


옆 나라 사람이다. 이웃 나라 사람이다. 이웃끼리 친하지 않은 경우도 세계엔 많다. 하지만, 바다 건너 대륙 건너에 나가면, 익숙한 눈매를 하고 있는 이들을 보면 반가운 마음뿐이다. 옆집 사람을 만난듯 뭐라고 한마디 건네고 싶다.


국제학교에 중국인이 넘쳐나던 2018년 이전에 Bookstore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대만인인 M이 소개해준 중국인 P는 국제학교의 여자들 중 몇 안 되는 5년지기 친구였다. 영어가 능하지 않은 그녀지만, 짧은 의사 소통 속에 정서가 닿음을 느꼈다. 그녀가 보여줬던 배려들이 호박씨의 중국이다.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의 후기는 연일 기사를 장식한다. 이웃 나라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메달은 그들 다 가지고 가라고 하고, 한복만 입혀 내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당한 선을 지켜 주는 것이 듬직한 이웃이 되는 도인 것을 그들도 충분히 알 텐데 말이다. 사람은 이치를 알아도 국가라는 무형의 것은 이치란 것을 잘 모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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