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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키드의 시선 < Kimberly>

by 호박씨


킴벌리도 킴벌리의 딸, 켈리도 K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졌다. K라는 알파벳에 의미 부여를 하고, 킴벌리의 애칭인 킴에 한국인의 성중 가장 흔한 성라는 것에 신기해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킴벌리는 한국계 입양아였다. 킴을 처음 만난 날 킴의 눈빛을 기억한다. 그 눈빛을 마음에 담은 나는 킴에겐 뭔가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 내내 갖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간다면, 그녀의 엄마를 찾아줘야 하지 않을까? 그녀의 미국인 부모는 그녀 말로는 세상 최고의 부모라는데, 그럼에도 그녀 어딘가엔 구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요새 같은 올림픽 시즌에 한국계 미국인 클로이 김과 같은 선수들의 얼굴이 TV에 비치면, 한결같이 나는 킴을 소환한다. 잘 구운 빵처럼, 적당히 까무잡잡한 킴의 피부와 쌍꺼풀 없이 눈꼬리가 가느다란 눈, 우아한 영어를 구사하는 킴이 그립다.


옆동네 시민 체육센터에 큰 아이는 농구를, 작은 아이는 짐나스틱을 넣어두고 꿀맛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킴에게 전화가 왔다.

" 내가 아는 한국인은 너뿐이라서, 부탁 좀 할 것이 있어서 말이야. 급한 일이야."

켈리는 엄마 킴벌리를 닮아 밝은 소녀다. 남동생이 둘이고, 구김이 없는 성격이라 Uppper school에서 마주치는 그녀는 남녀 구분 없이 누구 하고나 어울려 다닌다.

킴의 말로는 같은 반 소년이 켈리와 문자를 주고받던 중 살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들다고 메시지를 보냈다고 했다. 이른 저녁 시간이라, 독일의 가을은 밤의 한가운데처럼 캄캄하다. 소년이 어디를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소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봐 심히 우려되는 켈리는 엄마 킴벌리에게 달려왔고 킴은 나에게 연락을 했다.

킴이 학부모 명부에 나온 소년의 아버지 전화번호를 준다. 본인이 전화하는 것보다 한국인인 내가 한국어로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킴은 말한다. 사실 학교에 많은 한국인 부모 중에 갑작스레 온 미국인의 전화가 편안할 리 없다는 것을 그녀는 계산하고 나에게 부탁을 했을 듯하다. 나였다고 하더라도 이런 일에 미국인이 전화를 한다면, 더 경황이 없을 것 같다.


즉시 전화해보겠다고 킴을 안심시키고, 소년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본다. 그는 퇴근을 했을까? 학교의 한인 아버지들은 대다수 주재원이고, 남편을 포함한 주재원들 대부분 이 시간이면 여전히 일하거나, 식사 접대를 하고 있을 시간이다.

통화 연결음이 여러 번 울리지 않고도 그가 전화를 받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내 나라라 말인데, 사정 말하기가 쉽지 않다. 킴과의 관계, 켈리와 그의 아들과의 관계, 그리고 아이들이 주고받은 메시지 이 세 가지를 음성으로 전달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주제는 자녀다. 자녀 문제에 누가누가 가장 뾰족한가 올림픽을 한다면 금메달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기에, 아드님이 문제를 일으킬 것 같다는 요지의 대화를 얼굴 본 적 없는 이에게 전달하는 것은 안 하고 싶은 일이다. 그럼에도 친구 킴이 걱정하니, 킴의 딸 켈리가 손톱을 물어뜯고 있을 생각을 하니 입을 띠어본다.


돌아오는 그의 음성은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황했기에 침착하고, 놀랐기에 낯은 그의 목소리. 그는 한마디만 하고 통화를 마무리한다.

"제가 집사람하고 통화해보겠습니다."

감사는 없다. 이해하도록 노력을 해보았다. 감사할 정신은 안들만큼 놀랬노라고 말이다. 다만 아이에 대한 분노나, 아이의 문제 해동에 대한 부끄러움은 아니길 하고 기도했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별일 없다는 소식을 돌려주길 간절히 기도했다. 그래야 나도 친구와 친구의 딸에게 해결사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10분 여가 흘렀는데 진땀이 났다. 드디어, 그가 전화를 건다.

" 아이는 집에 있다네요. 집사람하고 같이요. 아무 일도 없답니다."

여전히 그는 건조하고 무뚝뚝하게 사실을 전달한다.

감사는 없다. 이해하자. 별일 없으니 된 것이다.


" 킴, 걱정 마. 집에 있데. 켈리에게도 전해줘."

킴은 백번을 나에게 감사한다. 감사를 받을 사람은 따로 있는데 킴이 거듭 고마워한다.

이튿날 학교를 가서 레이더를 켜고 Upper school의 친한 언니와 대화를 시도해보니, 분위기가 감에 잡혔다. 켈리는 워낙 인기가 많았다. 예상대로였다. 소년은 켈리의 관심을 많이도 끌고 싶었나 보다. 소년도 여자 친구가 많은 편이었는데, new face인 켈리에게 강력한 인상을 초장에 주고 싶었던 것으로 추측되었다. 그럴 수도 있다.


감사할 사람이 따로 있는데 엉뚱한 이가 감사하는 경우가 있다. 킴의 친부모가 킴을 만났다면, 킴의 존재 자체 만으로 감사했을 터이다. 대륙을 건너 남편을 따라 주재원을 나간 피 한 방울 안 섞인 나는 킴의 존재가 감동이다. 킴이 따뜻한 사람이 아녔다고 하더라도, 킴의 오지랖이 대서양만 하지 않았더라도 킴이 내 친구가 안되었었더라도 킴의 존재는 감동이다.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을 보며 눈물, 콧물을 짜냈던 나였다.

도끼눈을 뜨고 킴의 남편 브래드를 살펴본다. 브래도 또한 사람 좋기가 대서양이다. 구김 없는 킴의 딸 킴벌리를 보며, 아들의 친구인 킴의 막내아들의 철딱서니 없음을 보며 감사했다. 귀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겠냐만은 비디오 키드였던 나는 킴이 고맙다 못해 자랑스러웠다. 킴은 미국이 기른, 천조국 국민인데 말이다.

자식의 일이라면,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에 예의 차릴 경황도 없이 당황하는 것이 한국인이다. 한국이 낳은 아이로 그녀를 바라보던 나를 우리가 인연 맺은 시간들 속에서 킴은 느꼈었을까? 아직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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