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

by 고라니

어느 얼음이 녹지 않는 그늘이 가득한 겨울이었다. 누군가의 노래처럼, 영아의 부름을 받고 두근거림을 간직하고 가고 있었다.


영아 – 입을 살짝 벌리고 발음해야 하는 이름. 단어. 여자. 남자. 어린아이. 어른. 이보다 더 중성적 의미의 이름이 있을까? “15만원을 윤영아님에게 입금하시겠습니까?” 나는 그렇게 이름을 알게 되었다. 윤영아. 누워있는 모습과 닮아 있는 그 이름 윤영아.


맨정신의 밤에는 도저히 그 집 앞에 갈 수 없었다. 왜냐면 너무 무서웠다. 누군가에게 맨 살 이상의 무언가를 보일지도 모른다는 그 두려움은 나로 하여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해가 우뚝 서있는 그 따뜻한 낮에는 그런 것은 없었다. 걸음을 옮겼다. 버스를 탔다. 역전에서 내려서 걸었다. 약간 얼어 있는 그 거리 사이는 두려웠다. 동네사람들은 표정이 있었는데, 벽은 투명했으나, 투명한 유리 안으로 보이는 것은 모두 벽 이었다. 대낮의 그 거리는 어두웠다. 높은 건물 하나 없는 80년대의 원미동 같은 모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지만, 이를테면 사육사가 우리에 들어가있는, 그런 이상한 동물원의 모습이었다. 이제는 몇 남지 않은 손님들은 장을 봤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버린 손님들과, 사육사들, 그리고 건물의 모습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선택당했다. 영아는 나를 불렀다. 2달전 추워지기 시작하는, 그런데 아직 눈은 오지 않는 그런 한파가 올해 처음 얼굴을 내놓은 그런 날이었다. 눈을 마주쳤다. 그래 눈을 마주쳤다. 그게 시작이었다. 눈을 마주쳐버린 것. 나는 우리에 들어가 있는 여러 사육사를 구경하다가 눈을 마주쳤다. 나를 불렀다. 그렇게 3달간의 결핍 적인 관계가 시작되었다. 나는 일주일에 한번은 꼭 영아를 보러 갔고, 수입이 없는 사람 치고는 많은 지출을 했다. 사실 나는 출혈이 심했지만, 영아가 좋았다. 왜냐면 그 입 모양과 요염한 혀가 자꾸만 생각이 났다. 참을 수 없었다. 어떤 떄에는 일주일에 두 번도 봤다.


너로 살아. 혹은 생긴 대로 살아라. 너를 안다는 것. 나를 안다는 것. 그것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대부분의 것들은 익숙해지면 끝이 나버린다. 나를 알게 되면, 너를 알게 되면, 모든 것이 끝이 나버릴까? 우리는 때로는 하나였지만, 당신을 알기에 나는 두려웠다. 영아도 아마 내가 알게 되기를 두려워했을까? 피시방의 시간처럼 충전해야 보낼 수 있는 시간은 항상 흘러가고 싶었고, 나는 그 시간을 채우기에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길어봐야 2시간의 시간을 한번 늘려 보기도 했지만, 늘어난 시간만큼 가치있는 시간은 아니었다.


너랑 같이 있으면 재밌어. 돈 조금만 더 내고 나랑 같이 있자. 영아는 항상 집에 갈 시간이 되면 나를 붙잡았다. 나는 붙잡혔다. 영아는 내 돈을 잡은 것일까 나를 잡은 것일까? 조금의 진심도 없었을까? 아마 조금의 진심도 없었을 것이다. 시간은 항상 흘러갔고. 나도 많은 생각을 했다. 정말 영아가 나를 좋아했다면 동물원 밖에서 만나 주었을까? 라는 별로 의미없는 생각을 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하는데, 참을 수가 없다.


한번은 영아와 초밥을 먹으러 갔다. 다른 조명에서의 영아는 아름다웠고, 도도해 보였다. 내 손을 꼭 잡고 다녔고, 대충 입고 온 나에 비해 영아의 패딩과 의상은 화려했다. 밥도 잘 먹었다. 운전도 잘했다. <XX허 XXXX> 허, 호가 붙은 번호판의 의미를 알려주었다. 제네시스 <XX허 XXXX> 동물원 주인의 차이자, 영아의 차였다. 영아는 실력 있는 조련사였지만, 항상 가난했다. 왜 인지는 영아의 카드 빛과 리스 자동차, 그리고 명품의 옷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영아는 조련사 생활을 즐겼다. 어쩔 수 없이 그런 길로 빠진다는 누군가의 말과는 다르게.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믿어지는 무언가가 나가지 못하도록 잡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발음하고 있는 듯한 입술과 흔들리는 침대 위로 보이는 부적들은 왜 인지 자꾸만 나를 거기에 묶어두고 있었다. 묶여 있는 것은 영아도 마찬가지였다.


무시무시한 동물원은 시작도 끝도 없다. 불은 항상 켜져 있었고, 꺼질 줄 모른다. 손님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무지막지하게 장을 봐댔으며, 조련사들은 다들 조련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따금 어디선가 고함이 들려왔으며, 어떤 이들은 동물을 사랑하는 동물원장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동물원장들은 동물을 너무 사랑해서 몸에 동물그림이 가득했다.) 영아는 점심을 먹고 나와서 밤 늦게까지 업무를 보는데 여념이 없는 삶을 보냈다. 주말도 없이 일했지만, 대화를 나누다보면 역설적으로 자유로워 보였다. 왜냐면 별로 편견이 없어 보였다.

우리 할머니가 무당이었거든. 요즘에 치매에 걸리셔서 말이야. 이런 류의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다. 대부분 영아가 말하면 나는 들어주고 대충 적절한 이야기를 던져 주어서 말이 멈추지 않게 했다. 그냥 평범한 30대의 이야기 같았다. 형제도 있었고, 부모님도 있었고, 강아지도 있었다. 그러나 절대로 현재의 일에 대한 이야기는 하는 법이 없었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어떻게 하면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대충 비위나 맟추어 주거나, 돈이 아깝다는 이유로 말을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재미있는 사람이 좋았기에, 그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했다. 영아의 얄팍한 술수임에 틀림없었지만, 나는 그냥 당해주기로 했다. 뭔가 아스피린대신에 아달린을 먹고 잠을 자는 이상의 모습 같아서 실제로 기분이 좋기도 했다. 왜 인지 나는 항상 이상이 되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곧 나는 돈이 없어졌다. 그리고 두려웠다. 아마 돈이 없다는 것을 들키면 영아가 나를 버릴 것만 같았다. 어느 누구도 버려지고 싶지 않을 텐데, 그건 나도 그랬다. 영아는 꼭 만나고 일주일이 지나면 나에게 연락을 했다. 점점 나는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사기에 당했다고 했다. 주식에 물렸다고 했다. 그러다가, 나도 이제 취직을 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은 얼마간 사실이었다. 마지막으로 영아를 보러 갔다. 그날도 조금만 더 있다 가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씁쓸하지만 결연한 미소를 지으며 거절했다. 영아는 애써 웃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 되고 싶었다. 아무런 재주가 없지만 그냥 예술가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쓰기로 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지만, 누구나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고, 누구나 글 쓰기로 돈을 많이 벌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 나는 그저 아이일 뿐이었다. 22년 가을을 지나 23년 초 봄이 오기전 겨울이었고, 나는 이제 그만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시기가 있는데, 오늘이 그랬다. 영아는 내 연락처에도, 카카오톡에도 없다. 그래도 나는 영아를 기억하고 있다.


역 옆의 동물원은 아직도 사람을 도축하고 있으며, 많은 동물 손님들이 오며 가며, 조련사들의 손길을 느끼고 간다. 누구도 간 사람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며, 조련사들은 쉴 틈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벼르고 있지만, 항상 그게 다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커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