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

by 고라니

우리는 다음생에 고래로 만나서 Wave number 250으로 서로를 알아보기로 했어. 넌 기억하겠지?


한국말로 Wave number는 파수야. 파수는 다른 의미도 있는데, 그건 손을 맞잡는 것이야. 난 너와 손을 잡고 걸었던 순간이 기억이나. 처음에 당황했던 모습도, 내가 미안하다고 했던 모습도 다 기억이 나. 그 뮌헨의 거리와, 사람들, 갑자기 따듯해져가는 온도까지. 이번생에 운이 좋게도 우리의 파수를 목격한 셈이지.


나의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해. 전에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야.


군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봤어. 자신만만한 사람, 능력이 출중한 사람, 착한사람, 나쁜사람, 바보같은 사람, 바보인척 하는 사람, 그리고 조용한 사람. 난 그 중에 바보인척 하는 진짜 바보였지만 말이야. ㅋㅋㅋㅋ 처음엔 그랬지만, 나중엔 노력을 많이 해서, 칭찬도 많이 받고, 능력도 인정받았어. 사람들이 나한테 고민상담도 많이 하러오고 말이야. 그래서 또래상담병이라는 직책을 받게 되었어. 전우들의 고민들 들어주고 기록하는 그런 일이었지. 다행이 내가 담당하는 전우들은 재미있고 긍정적인 친구들이라 고민이 별로 없었던거 같아. 물론 사소한 고민들은 있었지. 내일 뭐 먹을까, 일이 너무 힘들다, 집에 가고싶다 등등.


말을 잘 들어주다보니까, 거의 모든 사람들과 친해졌어. 나도 사람인지라 여전히 친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말이야. 그들도 그렇지만 나 말고 친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난 걱정하지 않았지. 그들도 그들의 취향과 삶과 방식이 있을테니까.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체력단련실, 그러니까 헬스장에서 무슨 큰 사고가 났다고, 다들 방 안에 모여있으라고 했어. 조금 잔인한 사고가 났나보다 생각했지. 우리는 다들 모여서 무슨일인지, 누가 사고를 당했는지 추리하기 시작했어.


어떤 바보같은 놈이 벤치프레스를 하다가 깔렸다.


런닝머신을 뛰다가 넘어졌다.


덤벨이 발등을 찍었다 등등. 뭐 그런


그 낡은 운동기구가 문제를 일으켰다는게 대부분의 의견이었고, 누구인지는 잘 모르는 눈치였어. 그러다가 곧 어떤 사람이 방안에 없다는 것을 다들 알게 되었어. 그 사람의 이름은 A었고, 나보다 군대에 늦게 들어온 동생이었어. 오며가며 인사는 하는 사이였지만, 친한 사람은 아니었어. 같은 건물에 살고있었는데도 말이야. 일 때문에 말 몇마디 해 본것이 전부였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어떤 사람인지는 잘 떠오르지 않았어. 그냥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근데 헬스장에 잘 가지 않는 친구가 거기에서 무슨 사고를 당했을까 쉽사리 예상이 되질 않았어.


그런데 자꾸 우리에게 무슨 일인지는 알려주지 않고 몇 시간을 더 대기를 시키는 거야. 그러다가 간부가 들어와서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어.


A가 죽었다고.


이게 그렇게 큰 사고인가 싶었어. 아니 왜? 라는 질문이 먼저 들었지. 어떻게 사고가 났길래? 그런데


자살했다고 했어. 헬스장 옆 공터에서.


그리고 또 의문이 들었어. 아니 왜? 어제까지 근무 잘 들어가고 잠도 잘 자던 친구였는데. 누가 괘롭혔나 싶었지. 계속 생각을 하니까, 속이 메스껍고 토가 나올 것만 같았어. 그러고 있으니까, 나의 상관한테서 전화와서 무기의 숫자를 확인하라고 하더라고. 사고가 났으니까. 간부한테 조용히 나와서 사무실로 향했어. 그러니까, 참을 수 없는 눈물이 나오면서 걸을 수가 없었어. 내가 잘 모르는 친구의 죽음인데도 말이야. 결국 내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은 뭐였냐면.


내가 이 사람과 친했다면, 이 친구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잘 모르는 사람의 죽음이 슬펐던 이유는 모르지만, 잘 알수도 있는 가능성이 높은 사람에 대해서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냈어. 난 A이에 대해서 조용하다는 것 말고는 아는 점이 전혀 없었어. 그게 가장 슬픈 점이었어. 내가 잘 아는 친구였다면, 말이라도 한번씩 먼저 걸어줬다면, 음료수라도 한잔 사 줬다면 이렇지 않았을 것같은데 말이야. 나와 내 동기는 그렇게 같이 울었어. 그 여파는 1달 넘게 지속되었어. 심리 상담도 많이 받았고.


그 친구의 유서와 노트가 발견되었는데, 누가 괘롭히거나 그런 것은 전혀 없었어. 그 전날에도 부모님과 문자도 하고 그랬는데, 혼자 끙끙 앓고 있었나봐.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말이야. 난 그래서 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고독사가 발생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역설적이게도, 많은 사람들중에 자기를 들여다 봐 주는 사람이 없으면 이런 일이 발생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그렇게 전역을 했는데, 나는 좀 달라져 있었어.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도 힘들고, 학교를 다니는 것 만으로도 힘이 들어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무기력증에 걸렸지뭐야. 뉴스에서 비슷한 사건을 보면 나도모르게 눈물이 나오고, 몸이 떨리고 뭐 그런 PTSD를 겪고 있었어. 그렇게 1년, 2년이 지났어. 그냥 대충 살아 간 거지. 괜찮은 척 하면서. 그렇지만 한가지 나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이 있어. 힘든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말자는 뭐 그런. 한마디 따듯한 말이라도 해주면, 힘들다는 말을 들어주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무기력증에 걸렸어도 난, 그 정도의 힘은 있었으니까. 책임감도, 죄책감도.


지금의 나는 달라. 그때와 또 다르고.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 우울과 힘듦은 나를 결국 강하게 만들었고, 나에겐 넘치는 힘과 자신감과 미래가 있어. 아름다운 과거의 기억도 있고, 지켜주고 싶은 사람도 있어. 너 말이야.


전에 너에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알려줘서 사실 뭐를 부탁하는 말을 하기 힘들어졌어. 어떻게 생각해도 좋아. 그냥 너에게 맡길게. 나를 편하게 이용해도 좋아.


그냥 편할때, 하고싶을때, 내킬때, 너의 부분을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 보여줘. 그렇다면, 나에겐 큰 힘이 될것 같아. 그리고 너에게도.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혼자 앓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도 너의 일부가 되어서 도움을 주고싶다는 말이지. 전에 말했던 것처럼 그게 필요 없다면 그것도 그런대로 난 받아들이겠어.

그렇지만, 손을 맞잡으면 강해진다는 것은 확실하니까. 파수.


파수를 생각하지 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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