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진실, 그리고 해석의 시대
실제 언론 보도처럼 보이도록 가공해 신뢰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유포되는 정보
가짜뉴스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젠 우리에겐 구분할 수 있는 방법과 힘이 없을지도 모른다.
나의 어린시절에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정보를 조심하라고 교육을 했었다. 비 전문가들의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 많이 돌아다니니까, 거짓정보일 가능성이 지류 정보보다 높다고 그랬었다. 그게 한 15년 전의 이야기이다. 이젠 정보를 책으로 찾는 사람은 거의 멸종했다고 봐야 하고, 모두가 인터넷의 바닷속에서 수영하면서 정보를 건지고 있다.
요즘 미디어 리터러시에 관한 수업을 듣고 있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좀 모호한 부분이 있어서 좀 알아보게 되었다. 내가 생각한 쟁점은 다음과 같다.
가짜뉴스란 무엇인가.
그것에 앞서서, 가짜란 무엇이고 사실이란 무엇인가.
진실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가짜뉴스"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옳은 언어선택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 좀 알아보고 싶어서 나름의(?) 연구를 한 것을 글로 써보려고 한다.
사전적 정의로의 가짜뉴스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교묘하게 조작된 ‘속임수 뉴스’를 뜻한다. 경찰은 가짜뉴스를 `실제 언론 보도처럼 보이도록 가공해 신뢰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유포되는 정보'로 정의하고 있으며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 보도의 형식을 하고 유포된 거짓 정보'로 정의한다. "
[네이버 지식백과] 가짜뉴스 [fake news] (한경 경제용어사전)
가짜뉴스에는 사실이 교묘히 포함된다. 그렇다면 사실이란 무엇인가?
이건 매우 철학적 질문이기에, 여러 가지 분야에서 "사실"을 정의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른 듯 보인다. 먼저 사실이란 무엇인가?
고전적 인식론적 관점에서 사실은 경험 그리고 관찰에 기반한다. 이를테면
오늘 비가 10mm 내렸다.
관찰을 통해서 비가 10mm 내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이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의 감각을 통한 인식으로 만들어진 사실이다. 눈으로 보고 확인했으니까. 그런데 감각이란 무엇인가? 감각이 과연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구성주의적 인식론 관점에서 다루는 내용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각이 모두 동일하다고 확신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매운맛을 잘 못 느끼고, 어떤 사람은 매운맛에 민감하다. 어떤 사람은 색에 민감하고 어떤 사람은 색맹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성주의적 인식론 관점에서의 사실(fact)은 해석의 산물이라고 말을 한다. 해석이란 개인마다 처해진, 언어습관 관습, 문화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말한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사실은 없다. 해석만 있을 뿐이다"
요즘엔 모두가 말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서, 한 현상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이 폭발하고 있다. 그 해석을 하나하나 가짜뉴스라고 명명하고 검열하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일뿐더러, 옳지 않은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과연 세상에 객관적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있을까?
그렇다면, 가짜뉴스를 진짜 가짜뉴스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까? 사실마저도 해석의 영역이 포함된다면, 사전적 정의에 나온 "교묘한 조작"이라는 것이 과연 개인마다 모두 해석이 다른 사실 인식과 큰 차이가 있는가는 생각해 봐야 한다. 물론, 교묘한 조작이 사회적 혼란을 불러이르키고, 특정 집단에 불공정한 부를 쌓다는 것은 사실이다. 개인도 교묘한 조작을 통해 말을 전하면서 개인적 이득을 취하고 있다. 가령 직장 내 소문 같은 것들이 그렇다. 그 가운데에서도 중요한 것은 "조작의 의도"이다.
개인은 교묘한 조작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으로 대응을 해야 한다. 받아들이던지,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던지. 그것도 아니면, 또 다른 조작을 가해서 받아들이던지. 그것도 아니면, 아무 말도 듣지 말아야 한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진실이란 무엇인가?
진실은 아무래도, 구성주의적 인식론 관점과 닮은 점이 많다. 개인이 개인의 해석을 가해서 현상을 본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구성주의적 인식론은 개인에게 가해지는 힘과 구조에 대해서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들 한다. 사실을 만드는 구조의 힘과 그 구조에서 살아가는 개인이 인식하는 것이 진실이다. 왜냐면, 같은 환경에서 비슷한 인간이 탄생하지만, 같은 인간이 양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대체적으로 그렇다고 믿어지는 사회적 합의에 의한 진실은 있다. 그게 그렇다고 통상적인 객관적 진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진실은 어디 있는가? 진실은 구조속에서 가끔 대중의 의견과 다른 목소리가 때때로 있는 모든 개인에게 있는 것이다.
이쯤 생각하다 보니, 가짜뉴스라는 워딩과 현상은 - 아무래도 정치적 수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의견은 꽤나 많은 곳에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필요하면 가짜라고 하고, 필요하면 진짜라고 말을 하면 된다. 어차피 사실 여부에 관련 없이 어떤 개인은 여러 가지 척도에 따라서 믿거나 믿지 않거나 한다. 어쩔 때는 필요에 따라서 속아주기도 한다.
모든 말과 사진, 그리고 동영상은 개인의 의도가 들어있다. 객관적 보도라는 말은 허상처럼 느껴진다. 메이저 언론과 마이너 언론의 경계가 흐려진 지금, 그리고 메이저 언론의 신뢰도가 의심받는 지금에 있어서, "실제 언론 보도처럼 보이도록 가공해 신뢰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유포되는 정보"라는 정의에서 실제 언론보도라는 것이 있는가도 점점 흐려지고 있다.
결국엔,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있다. 말장난 같아 보이지만, 세계란 자신의 확장이라는 말이기 때문에,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말이다. 빵이 없는 사람들은 빵이 보급된다는 말과 그 정부에 신뢰감과 지지를 보내고, 물이 없는 사람들은 물 없이 건빵이 보급된다는 소식을 들으면 분개할 것이고 그것이 설마 사실일리가 없다고 부정하며, 사회 분란을 조장한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두 마을에 드라이한 군용 파운드 케이크가 보급된다면, 그 케이크에 대한 의미와 진실은 달라진다. 다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이야기에 따라서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지게 된다.
가짜뉴스란, 믿고 싶지 않은 정보라는 것이기도 하다. 이 말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더욱 이해가 간다.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신의 관점과 다르면 가짜뉴스라고 낙인을 찍는다. 근데 그건, 그 뉴스가 진짜 가짜뉴스인지, 가짜 가짜뉴스인지는 어쩌면 상관이 없는 것이다. "객관적 사실"이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같은 현상을 보고도 다들 다른 생각을 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모든 현상이 자연과학 현상처럼 합의된 척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그렇다. 게다가 모든 현상에 그런 것을 만들 수도 없다.
그래서 필자는 AI로 인한 가짜뉴스의 폭발적 양상이 심각한 문제이지만, 그것 자체가 위기의 근원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기 때문이고, 가짜와 대비되는 사실과 진실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개성과 본인의 심지가 없어진 사람들이다.
아무래도 이런 철학적 사유의 끝에는 결국 "나"에 대한 고찰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진짜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며, 세상은 허상 위에 쌓인 신기루 같은 것인가? 나는 뭘까 하는 뭐 그런. 나의 개성과 의견이 순전히 나에 의해서 만들어진 고유의 내 것인가.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우린 일을 하고 사랑을 하며 밥을 먹고 영화를 본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 과정 속에서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가게 된다. 알고리즘이라는 거울 속에 앉아서 허공의 자아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결국 외롭지 않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판단 기준을 세우는 것처럼 판단하게 만들어서 결국 "나의 의견"이라는 허상을 만든다. 가짜라는 것이 판치는 세상일수록, 비교적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는 대화를 하면서 건강한 나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싶다.
누군가는 자꾸만 획일화된 개인을 찍어내려고 한다.
지구의 생명체들은 돌연변이로 인한 진화로 멸절을 피해왔다.
과연 우리는 멸절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본인이 누구인가를 확실하게 알아가는 과정이야말로 핵심적으로 중요할테지만, 그건 너무 오래걸리는데다가,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러니까, 진짜라고 통상적으로 믿어지는 것들과 진실된 소통을 나누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에서의 공허함으로 인한 인식의 증발을 견디려고 하는 것은 더욱 스스로를 우울과 가짜의 길로 몰아넣는 사회적 매장과 같다. 좀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다양한 세상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하는 중이다.
싸우더라도 죽이지 않고, 나중엔 꼭 안아줄 수 있을 정도로만 했으면 좋겠다. 그게 진실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