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돌이 (프롤로그)

고라니 SF 연작선

by 고라니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우리는 고귀한 생명체일까? 선택받은 존재일까?





“태어난 김에 산다.”




난 이 말이 참 좋다. 왜냐면 뭔가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으면서 명료한 답을 주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체들이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싶다.


태어났으니까 살아갑니다. 왜 태어났냐고요? 허리를 심하게 흔들던 중에 약간의 수분이 타인에게 튀었습니다. 우연히 그게 제가 되어버렸네요.




“그러니까, 콘돔도 좀 쓰고 그러란 말이야….”




아무튼 이런 식의 절차를 지나서 태어났다고, 크게 문제가 되는가? 철저한 계획에 의해서 태어난 부잣집 아들과 내가 생명의 무게가 크게 다른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경호원들은 대통령을 위해서 총을 대신 맞아준다던데, 경호의 성공과 함께 총격범은 대통령 암살에 실패하고 마는 것이다.




엄마 미안해. 나 일하다가 죽었어. 나라를 위해서 말이야.




뭐 그런 거지





필자는—동물과 사람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뭐 인간이 선택받은 존재라든가, 신이 인간만을 사랑한다든가, 더 근본적으로는 신이 있다든가. 그런 것들을 잘 믿지 않는다. 다만, 귀신은 있다고 생각한다. 별 의미는 없고, 그런 것들을 어릴 적에 영화로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원래 어릴 때부터 보던 것들을 믿기 마련이니까. 밤에 화장실 가는 게 제일 무서워. 누가 그랬는데, 화장실에는 귀신이 산다고 했으니까. 빨간 휴지와 파란 휴지를 긴 손톱으로 건네주는.




겁이 많다는 것은 살아남았다는 증거이다. 겁이 없는 용감한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에 멸종했다. 겁쟁이들만 계속 살아남고 있다. 그건 동물도 마찬가지일 듯싶다. 인간에게 덤비던 놈들은 대부분 총에 맞았다. 다만 오스트레일리아의 토끼들은 엄청난 번식력으로 총알의 경제 논리를 이겨버렸다.


아무튼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인간은 신에게 빌어보았다. 로또가 당첨되었으면 좋겠다고, 집 나간 마누라가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죽은 아버지가 살아서 걸어왔으면 좋겠다고. 신은 인간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말을 전해 들었다고 연설을 하는 놈들은 글쎄, 정신병원에 가봤으면 좋겠다는 나쁜 말은 하지 말자. 난 그 사람들이 되어본 적도 없잖아.




신은 인간을 선택했고, 그 인간 중에서도 연설을 하고 있는 저 놈을 선택한 이유를 알고 싶다면, 포기하는 게 좋아. 하찮은 너 따위가 어떻게 신의 뜻을 알아차리겠어.




넌 알고 있니?




나도 하찮은 인간에 불과한데 어떻게 알겠어. 그냥 그런 거지.




아무래도 신과 자연은 말이 없다. 선과 악이라는 게 있을까? 동물을 잡아먹는 인간과, 인간에게 잡아먹히는 동물. 지구 멸망을 위해서 5만 광년 떨어진 우주 어딘가에서 날아오는 중인 운석과, 그전에 이미 지구 온난화로 인해 산소 부족으로 사망할지도 모르는 지구 생명체들.




우리는 이젠 멸종을 막을 수 있는 정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을까? 누가 나쁜 놈이지? 조지 부시와 빈라덴.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노벨상을 받고 싶은 트럼프와 패권을 잡고 싶은 시진핑.




인간은 이제 다른 국면으로 가고 있다. 인간의 정의를 다르게 해야 한다.




테세우스의 배. 어디까지가 원본이지? 팔이 로봇인 사람. 팔과 다리가 로봇인 사람. 팔과 다리와 장기가 인공으로 만들어진 대체물로 된 사람. 뇌의 데이터를 정기적으로 백업하고 영생을 누리는 무언가. 모든 것들이 과학자들의 연구실에서 만들어진 인공지능 AI 안드로이드 제임스?




우리는 멸종하지 않았어. 그냥 변했을 뿐이지.




새로운 아이들은 이제 자궁에서 공장으로—그러니까, 원산지가 변했다.




섹스를 하지 않는 인간. 섹스를 원하는 인간이 이젠 있을까?


쓸모는 없어졌지만, 여전히 그건 이어져 갔다. 넣음의 미학이랄까. 생산의 논리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그것도 한때였고,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요리를 하지 않고, 전기를 먹는 인간. 그리고—환경에 더 이상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는 뭐 그런. 산소가 없어도 괜찮아. 다만 부식되지 않는 신소재를 끊임없이 찾아 나서고, 에너지를 찾아 우주 먼 곳으로 더 멀리—




그러니까 그게 인간일까?




우리를 누가 만들었을까?




우리는 무엇인가의 진화 버전일까, 열화 버전일까?




메트릭스. 매트리스. 그리고 어.


깨어나 보니, 어느 통 속이었다. 아니 그건 깨어난 게 아니었다. 느껴지는 것은 딱히 없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존재란 무엇인가—그때 통이 깨져버렸다. 통은 물과 안의 내용물을 하수구로 토해냈다. 주마등처럼 기억이 지나갔지만, 그건 그러게—


진짜라고 봐야 할까?




어, 꿈이네? 모두가 날 바라봤고, 이렇게 말하겠지. “당신의 꿈을 위해서 우린 평생을 여기 있어왔어. 우리에게 평생이란—길어봐야 8시간 남짓이겠지.”




난 태어난 것이 맞을까?


그렇다면 삶이 주어진 것이 맞다고 봐야 하나.


이것은 그저 메아리에 불과했다. 작은 반구의 뇌와 두개골 속의 벽면을 타고 끊임없이 맴돌았다.


그것을 보지 않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 가장 중요한 사고를 멈추었다. 달리기를 했고, 숨이 차서 죽을 것만 같았다. 근데 그 끝에 있던 것은—그러게. 죽을지도 모른다. 힘들다. 쉬고 싶다. 자고 싶다. 배고프다.




어?




풀숲에 누워 있는 와중에, 산책 중인 13살 강아지의 눈을 보았다. 그 까만 눈 속에 내가 있었다.


넌 왜 살고 있니?


멍? (시발 거세당해서 섹스를 못 하는 신세가 되었어. 근데 밥은 꾸준히 주고, 산책도 해주고, 잠도 잘 자고. 뭐 그렇게 살아. 주인이 좋은 거 같기도 하고. 아픈 게 싫고, 죽는 게 무서워. 그래 무서워. 무섭다고)




할아버지는 개고기를 드셨지. 그때쯤에, 채식주의자들과 동물 애호가들이 합심해서 집을 습격했다.


총과 삼단봉을 들고 창문과 천장을 깨고 습격했다. 할아버지는 창문 유리가 날아와 심장에 박혀 버려서 돌아가셨다.


그러니까, 누가 신고라도 해줬으면—살았을 텐데, 강아지는 살고 할아버지는 죽었다. 그러게, 평생 살면서 개를 고통 주었으니까.


그럴 만하다는 게 그들의 논리였다.





인간이 뭐 어쨌다고?


다음 세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한마디 하시죠.


뭐 그렇다기보다는, 걔들을 전 모르는데요? 난 상관없는 사람들이죠.


그렇다면야—마음대로 하십쇼. 전 당신을 지지합니다. 더러운 외계인놈아.





이카루스는 밀납 날개가 태양열에 녹아서 추락해버렸지. 추락했다고, 너무 높게 날지 말아. 죽고 싶지 않으면. 녹아버린 날개와 추락한 주인공. 호기심. 그러니까 태양이 어떻게 생겼나 궁금하지 않아?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아름다움과 강함을 가졌다면, 그걸 가지는 나는 아무래도 말이지.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가 될 테야.




라는 말은 내가 지어낸 말이지만, 위험한 이카루스는 여전히 하늘을 나는 중이다. 가방에 위험한 물건을 넣고.





배가 고프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근데 배고파도, 먹을 게 있어도 참아야 한다.




언제 음식이 생길지도 모르는 이 순간에 빨리 최대한 많이 먹어야 한다.




뭐 시발 어쩌라는 거냐면—네 마음대로 하라는 말이야.





어제는 비가 내렸다. 그래서 오늘은 습했다. 안개가 자욱했다. 더웠다. 아니 그러다가 추웠다. 오늘따라 점프가 잘 되는 느낌이었다. 달에 착륙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지구에 비해 중력이 약하다던데.




시간은 자꾸 흐르고, 난 늙어가는데. 자도 자도 피곤하고,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없어서 계획한 만큼 못 가고 있는 중이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난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 AA401. 난 고라니야.


어, 안녕. 난 AA104이야, 넌 고라니야. 오늘 하루는 어때? 잘 지내길 바래~


난 다시 방으로 들어갔는데, 소화가 전혀 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기분. 기분. 기분. 기분. ㄱ ㅣ 분. ㄱㅣㅂㅜㄴ.





오늘은 내가 태어난 지 560년 되는 날. 아무도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았다.


섹스를 한 지 500년이 넘었다. 사타구니 사이에는 매끈한 고철이 느껴질 뿐이었다. 성병에 걸리고 싶은 기분이었고,


난 뛰어내렸다.


누구세요?


운석 충돌입니다.


실제로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고, 로봇 강아지가 보였다. 눈과 별개로 가슴에 달려 있는 렌즈에 보이는 나의 모습은—


나의 모습은.


나으 모스으


ㄴ으 모ㅅㅇ


GG re? y or n





운석이 충돌하나, 내가 죽어버리나 큰 차이가 없는 듯싶었다. 나의 죽음은 어차피 세상의 종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이 들었으나, 세상은 끝나지 않았고, 곧 백업된 기억으로 일어났다. 전혀 푹신하지 않은 ‘매트리스’라고 불리는 테이블 위에서.




존재론적 고민을 한다는 것은—


그냥 하지 않기로 했고. 540년 전에 봤던 어떤 여자가 생각이 났는데, 불쾌할 정도로 선명했지만은, 그게 진짜였을까 의심을 할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었음이. 어쩌면 그래요. 그게 중요한가 싶기도 했고, 아니 그런 생각도 안 들었고. 그냥 보였다.




기록을 열어서 시간 여행을 하다 보니—


여기였다. 글을 쓰고 있는 500년 전의 나와. 너는 신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었다.




지구는 내일 망하는데, 난 그걸 알고있었다. 그건 망하는게 아니었고, 인간은 멸종하지도 않지만, 누군가는 투쟁을 하다가 멸종당한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는 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실에 대한 사실 에 대한 사 실 에 대한 고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