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안 써지는 입스에 걸려버렸다.

by 고라니

전말은 이러하다.


3문장 이상 쓰는 게 고통스러운 그런 느낌인데, 그것은 그 사건 이후로의 일이다. 다들 들어봤겠지만, 믿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 나의 이야기가 그럴 것이다. 왜냐면, 시간에 관한 이야기이니까. 시간이란 흘러가는 것이고, 흘러간 시간은 인간의 신체로는 잡을 수 없다. 시간은 무한하지만, 우리는 유한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시간은 유한하다. - 그러니까, 앞으로만 가는 우주 기차 같은 셈이다. 적어도 내 경험상 기차가 후진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다만, 앞뒤에 기관차를 달면 기차는 앞뒤로 움직 일 수 있게 된다. 독일에서 그 관경을 목격했는데, 가끔 기차는 반으로 분리되어서 각자 앞뒤로 갈 길을 간다. 기차는 반으로 갈라지기도 한다. 선택을 잘못하면 이상한 목적지로 향하게 된다. 아무튼 이렇게 마구잡이로 이야기하려던 것이 아닌데,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선택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의 시간에 관한 이야기.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언젠가 어떤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영상에서 어떤 출연자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과거로 갔다고 해야 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미래가 생기고 있다고 하는 게 맞는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과거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생겼고, 그래서 과거로 간다고 해도, 그것은 새로운 미래가 생기는 것이라는 논리였다. 나는 설득당했다. 아 맞는 말이지. 아무튼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뭐 그런. 다음으로 이런 고민을 했다. 과거로 돌아가서 다른 선택을 한다면 현재에 영향을 주게 되지 않을까? 예컨대 내가 기차에서 내리지 않는다는 과거와 다른 선택이 불러올 나비효과가 화산 폭발로 이어져서 인류의 멸망이라는 뭐 그런 터무니없고 개연성 없어 보이는 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뭐 그런. 그렇다면 세계와 세상은 멸망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가는 정교한 스위스 시계와 같은 것일 텐데,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모든 선택이 우리의 멸망을 피해가는 완벽한 선택지인 셈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완전히 내 맘대로 산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일까?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 여행을 한다면 어디로 돌아갈지는 대충 생각해 놓은 바가 있었기에, 나의 능력을 알게 된 즉시 난 그곳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시간 여행을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눈을 감고, 어디로 갈지 생각한 다음에, 숫자 25를 세고, 25층에서 뛰어내린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말하고 싶지 않다. 아무튼.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방법도 있다. 우리는 원래 처음부터 시간 여행자라는 사실을 인지하면 된다. 정신은 기본적으로 몸이라는 미래로 가는 시간 여행 기계에 타고 있다. 시간은 미래로만 향하긴 하지만, 항상 미래로의 시간 여행을 하는 중인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지, 우리는 잠깐 왔다가 떠나는 여행자일 뿐이라고. 그래. 우린 여행자야.


거창하게 말했지만, 돌아오는 방법은 없다는 말이었다. 새로운 선택에 걸맞은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하기에, 내가 떠나왔던 우리가 부르는 현실이라는 공간과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은 여행자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기억 속으로의 시간 여행 방법을 알아낸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 그런데 - 슬프게도 기억은 온전하지 않기 때문에 아슬히 한발로 듬성듬성 있는 외나무다리 중 하나에 서 있는 꼴이 될 것이다.


이게 글과 무슨 관련이 있냐고?


나는 2025년으로 여행을 온 2050년의 여행자이다. 난 그곳에서 명상과 글쓰기 말고는 하지 않는 - 국가에서 주는 배당금을 받는 무명작가이다. 이젠 아니지. 51살의 남자는 26세의 청년으로 돌아갔고, 다시 51세의 남자로 회귀하는 중이다. 그 26세의 청년은 불안하고, 아무것도 없지만, 뜨거웠고, 힘이 넘쳤다고, 기억하고 있었지만 - 무력했음을 아마 잊었던 것 같다. 다시 가면 작가로 성공할 것만 같았고, 사랑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더 활기찬 인생을 살 것이라고 믿었지만은 - 이 모든 것을 잡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지 못했음을 여전히 26세의 청년은 몸만 늙은 냄새 나는 아저씨였다는 사실에 또다시 시간 여행을 시도하다가


난 지금 병원에 있고,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아무튼 약 1년 전 겨울로 돌아갔을 때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그러니까, 2025년 초의 겨울이다. 독일에 있었고, 뜨겁게 사랑했으며 많이 울었음을 기억한 채로 돌아갔다. 돌아가서 뭔가 할 수 있었냐고?


똑같이 가난했고, 무력했으며 - 어찌할 바가 없었다. 난 똑같이 용기가 없었고, 배포가 없었으며 세상은 잔인했다. 그 이후로 봄과 약간의 여름은 너무 힘들었다. 그 점을 난 잊고 있었지. 그런 거 다들 잊어버리던데, 몸이 건강하던지, 그렇지 않던지 - 힘든 일은 여전히 힘들다는 것을 잊고 젊은 육체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을 막 고문하잖아. 장미란한테도, 그리고 너한테도 150Kg짜리 역기는 여전히 150Kg이다. 뭔가 잘못된 시간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난 그때만큼 뜨겁고 강하고 솔직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약간 식었고, 가식이 있으며 입스가 도져서 글을 막 쓰지 못하는 26살의 남자가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상황은 예정보다 더 악화될 뿐이었고, 난 발악을 했다. 도둑질을 했고, 주식을 했으며, 코인을 했다. 예정되지 않은 행동 때문에 알고 있는 대부분의 예정된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난 그래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


시간 여행도 할 수가 없다.


이젠 어디로 돌아갈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과거가 되어버린 51세의 나로 돌아갈까 고민 중이다. 병원은 3층짜리 건물이고, 산속에 있다. 근육질의 간호사들과 무서운 의사. 어쩌면 내가 죽길 바라는 가족들까지. 난 돌아갈 날만 기다린다. 그렇다면 아마도 - 정신병에 걸린 51세의 남자가 있겠지. 언제 정신병에 걸렸는지는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 밖은 아무도 나오지 않고, 푸른색 비스킷 사료만 먹고, 기아와 가난은 없지만, 버블로 가득한 과거의 환상만 가진 사람들이 누리기에 현실은 잔인하도록 비참하니까. 과거는 아름답다던 어느 기타리스트의 어록이 시나브로 떠오른다. 아련해진 그 기억이 아름다운 것이지, 나의 과거가 마냥 아름답지는 않았음이. 그냥 네가 보고 싶다는 막연하고 미련한 생각을 너무 오래 담고 있었나 보다.


그러다가 화산 폭발이 일어났다. 그 지역은 활화산이라고 불릴 만한 산이 없었을뿐더러, 그 어떤 전문가도 예측하지 못한 현상이었다. 다만 - 지층이 갈라지면서 안에 있던 용암이 폭발하고 주변이 초토화되었다. 창문 밖으로 파동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1.. 2 ... 3........10 ...... 15.....20. .... 22. 23..24..25 그리


병원은 위로 날아갔다. 20층 - 22층 - 25층 근데 그게 어떻게 가능했냐고?


나도 모르지. 나의 예정되지 않았던 행동들이 일으킨 나비효과가 아닐까? 오른쪽 다리가 발이 녹아버린 채로 허우적 걸렸고, 왼쪽 다리에는 불이 붙었다. 손은 날갯짓을 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물 없는 하늘에서 허우적대는 남자를 본 사람들의 생각은 - 어땠을까? 아무튼 난 22층에서 25층으로 날아올랐다. 잠시 시간이 멈추었다. 중력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침대도 휠체어도, 근육질 간호사도. 잠시 하늘에 멈추었다. 그다음에 떨어지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지만, 서로를 잠시 쳐다보고 안쓰럽고 애처로운 웃음을 짓는 것은 상호 간의 선택의 결과였다.


난 미련하게도 다시 생각을 시작했다. 떨어지는 그 순간 동안 난 어디로 가야 하나 - 난 하지만 어디로 갈지 미리 생각을 해 놓았지. 그렇지만 떨어지면서 느껴지는 것은 어째서인지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리고 다리가 너무 뜨겁다는 고통과 공포뿐이었다.


퍽.



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 거야?


어.


왜?


그 순간이 너무 숨 막히게 아름다워서.


그래.


그 순간 펼쳐진 것은, 2월에 비 내리는 바이덴이라는 독일 도시 사이에서, 눈빛으로 대화하는 따듯한 정적 속에 서 있는 외국인 두 명의 연결이었다. 그 뒤에 일이 예정되어 있는 이유는, 다르지만 비슷한 것을 하기로 또다시 결정했기 때문이었고, 후회하게 될 것을 후회하지 않기로 - 또다시 의미 없어 보이는 결심을 했음을 알고 있었어서이다.


이번엔 덜 아프고, 덜 후회하기를.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소용돌이 - 조각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