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일어나면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나아간다.
경제 위기가 찾아오면 구조조정이 일어난다.
지진 쓰나미가 찾아오면 저지대에 살던 사람들의 집이 사라진다.
뭔가 문제가 생기면 몸으로 때워야 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그건 우리들이다.
뭐 그런 말들 하잖아요. 명령을 내리는 것은 늙은이들인데 싸우는 것은 우리 아들들이라고.
그럼 늙고 병든 내가 싸우리?
아뇨 뭐. 그러니까,,, 저 고지를 17시간 내에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점령하라는 그런 명령이 잘못된 거겠죠. "명령을 내리는 내가 죽는 거 아니니까" 그런 말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요.
며칠 전에 어떤 대통령이 어떤 대통령에게 체포되어서 어떤 대통령 나라로 가서 재판을 받았다. 실로 엄청난 작전임에 틀림이 없었다. 세계 최강의 군대와 그 군대 안에 있는 인간 병기들로 가득한 특수부대. 그러니까, 여드름을 짜서 휴지에 싸서 버리는 것도 아니고, 그런 느낌으로 사람이 축출되는 장관을 뉴스로 보게 되었다. 이게 자랑인지 위협인지. 아무튼 아주 여러 의미로 충격적이었다. 주권국가의 대통령이 저렇게 당하는 게 충격적이었고, 그 나라 군대의 파워가 충격적이었고, 이 통쾌하면서도 등골이 서늘한 느낌이 충격적이었다. 분명 독재자가 축 줄 되었다고 뉴스에서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대통령이 축출됨을 엄청 좋아하고 있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어떤 전문가는 마약 밀매 범죄 독재자가 제거된 사건이라고 이야기하는 반면에, 어떤 전문가는 그런 명분 이면에 다른 어떤 지정학적인 속내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아무튼 난 왜 서늘한 느낌이 들었을까?
역사적인 열등감이 있다. 우리는 세계대전을 지나오면서 룰을 만들었고, 그 룰을 지키는지 감시하는 기관도 만들었다. 모두들 그 법칙을 지키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고, 전체주의와 파시즘의 망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들을 악으로 규정하고 서방세계를 정의 수호의 선봉으로 정하고 노력을 해왔다. 글로벌 세계화 세상에서 태어나고 살아간다고 믿었던 개인들은 그 규칙이 변칙이 되어감을 목도하고 있다. 태초부터 존재했던 국제헌법을 넘은 대단한 법칙이 그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 힘의 논리. 강자가 살아남는 - 적자생존의 법칙. 힘은 모든 것을 압도하고, 그깟 글씨로 만들어진 법과 규제를 뛰어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그런 세계에서 강자에 섰던 적이 드물다. 게다가, 최근 근대의 역사에서는 그 규칙을 무섭도록 잘 따르는 모범 플레이어였다. 기적은 그렇게 시작되면서 그림자 속으로 약자라는 연료를 끊임없이 던져 넣으면서 위로 상승해 왔다. 그것은 산업화와 서방의 규칙이었다.
전관예우가 판치는 법치사회와, 경제사범과 사기꾼이 합당한 벌을 받지 않는다는 그런 불신. 우리는 법을 신뢰하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다. 사적 제제와 정의로운 강자의 악의 무리 심판이라는 키워드는 어느 때보다 스릴이 넘치는 콘텐츠가 되었다. 법을 뛰어넘는 넘어서는 훨씬 빠르고 강한 사회 정화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근데 그게 정의인가는 생각해 봐야 한다. 나치사회에서 히틀러는 신이었다. 나치독일 안에서 그를 악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정의롭고 강한 구원자라고 생각하는 쪽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건 수치로도 금방 알 수 있다. 물론 그 이유를 승전국들은 나치 특유의 강하고 교묘한 프로파간다로 설명하곤 한다. 물론 이건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때의 프로파간다와 지금의 프로파간다가 과연 어떤 것이 더 교묘한가, 정의로운가, 정당한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봐야 한다. 아무튼 이 모든 것들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 시스템 불신을 하도록 만든다.
법을 믿지 않게 되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법과 규칙이 없는 사회는 힘의 논리가 강하게 적용된다는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힘이 미미하다.
힘이 미미하기 때문에 법치주의 사회에서 불리하다는 생각도 정당하다. 그래 보이기도 하고, 강자는 어느 시스템에서도 강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법치주의 사회에서는 나름의 사슬이 있다. 그 우리 안에서 우리를 정비하고 강화하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과, 사슬을 끊고 도망치고 싶어 하는 맹수 사이에서 갈팡질항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오히려 가장 안전한 위치일지도 모른다는 이 인식이야말로 가장 비참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악당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고,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정의마저 강탈당해 버렸다.
어떤 사람은 지금 진짜로 전쟁터에 있을 것이다. 교전을 하다가 총을 맞을 것이고, 그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전선에서 먼 곳에서는 평화 협정이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승자와 패자가 평가로 정해질 것이고, 패자로 평가된 나라의 군인들은 전쟁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몰려옴과 동시에 졌다는 뿌리 깊은 패배의식과,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을 느낄 것이다. 평화협정을 성공시킨 사람들은 아마 약간의 아쉬움과 슬픔을 뒤로하고 자축의 샴페인을 마시러 가겠지.
며칠 전 독재자가 축출되면서 그의 경호원들은 거의 다 죽었다. 축출 핀셋에는 흠집도 가지 않았다. 아마 약간의 생채기라도 났으면 도시가 하나 없어졌을 수도 있다. 또 다른 독재자에게 구매했던 방공망은 핀셋에게 비웃음을 당했다. 독재자가 사라진 도시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석유가 핀셋나라에게 갔다.
우리는 어디에 서 있어야 할까. 민족의 배신자와 민족의 수호자는 도대체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
힘의 논리 앞에서 생존이야말로 가장 큰 능력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죽게 된다.
아무것도 들고 갈 수 없는 죽음의 세계로.
혹시 오해할까봐 말해두는데,
난 그 독재자놈을 옹호할 생각이 하나도 없다. 사람들을 위험하게 만드는 모든 종류의 놈들을 혐오한다.
영생하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 하던 그 두 독재자놈들도 난 머릿속에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