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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생 Sep 05. 2023

치매 엄마의 우당퉁탕 유쾌하고 개구진 하루 [9]

공동 돌봄//여름휴가를 엄마와 보내는 환갑의 아들

치매 환자도 가족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https://kr.freepik.com

엄마의 주보호자인 언니 가족이 2박 3일 휴가를 떠났다.

당연히 내가 엄마를 챙겨야겠다 준비하고 있었는데 오빠가 엄마와 함께 있겠다 한다. 오빠도 이번 주가 휴가라 엄마와 지내겠다고.

기저귀를 착용하다 보니 아침저녁으로 샤워를 해드려야 하고, 기저귀 관리에 식사 챙기기, 2박 3일을 함께 지내야 하는데 오빠가 하겠단다.

어차피 언니가 이사 오기 전에는 오빠가 하던 거라 어렵지 않다고.

오늘 아침에는 엄마 노인복지센터에 직접 모셔다 드리고, 직원 수 대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들고 가서 엄마 잘 부탁드린다 하고 왔단다. 


오빠는 우리 세 자매와는 다르게 컸다. 남들이 보기에도 남매가 맞냐 물어볼 정도로 귀하게 키운 장남이다. 다른 형제들의 희생이 있을지라도 첫째 아들에게 모든 혜택을 몰아주었던 부모님 덕분에 오빠는 대학 등록금도 지원받았고, 공부할 수 있는 시간도 충분이 허락되었고, 고3 학급 반장이었을 때는 반장 부모 역할 한다고 반 인원수대로 요구르트 한 개씩 돌리는 정성을 보이기도 했다.


나는 대학 입학금부터 이웃의 호의에 기대야 했고, 방학마다 요요 공장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장학금을 받지 못한 학기는 학자금 융자를 받으며 공부를 이어갔지만 자퇴를 심각하게 고려했을 정도로 힘들었다. 졸업은 겨우 했지만 학자금 대출을 상환하는데 5년이 더 걸렸다.


막내는 예외라 쳐도 언니와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집안일에 잡다한 심부름을 도맡았다. 

중고등학교 때도 시험공부를 위해 자유로운 시간을 가져본 적은 없다. 맞벌이하는 엄마는 아침 출근할 때 그날 해야 할 일을 일러주고 가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생략해도 될 일이 많았다. 명절날을 대비해서 놋그릇 꺼내 광내기, 조개젓 담근다고 하루 종일 조갯살 발라내기, 저렴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재료 손질하기, 집안 청소 하루에 서너 번하기 등등 굳이 이 일들이 필요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의아하다.  굳이 그릇까지 광내야 했을까. 조개젓은 안 먹어도 됐을 텐데, 학교 다녀와서 밥하고, 설거지, 빨래, 청소 한 번씩 하기도 바쁜데 곁가지로 해야 할 일들이 늘 있었다. 엄마가 어린 시절에 하루를 이렇게 보냈구나 싶다. 당신이 살아온 방식대로 자식을 대할 수밖에 없다는 걸 지금은 이해한다. 생계를 꾸려나가느라 바빴던 엄마는 남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들여다볼 틈이 없었고 엄마도 그땐 어렸으니까. 


언니와 나는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 모르고 집안일하느라 바쁜데 인간관계가 넓고 돈독한 오빠는 친구들까지 집에 우르르 데려와서 밥 내와라 과일 내와라 등등 귀찮게 했다. 내 중간고사 전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엌에는 일절 발을 들여놓지 않는 전형적인 한국의 장남이다.


물론 엄마의 바람대로 오빠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입사하고 엄마의 든든한 장남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 대소사며, 친척 어르신들 사촌들까지 세심하고 통 크게 챙겨주는 편이라 늘 엄마에게는 하나뿐이 자랑스러운 아들이다. 


그런데 엄마를 밀착 케어해야 하는 순간 오빠가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확실히 엄마는 딸들이 챙겨드리는 게 편해 아들은 아무래도 엄마가 불편해해”하면서 살짝 뒤로 빠지는 느낌이 많았다.

습관대로 잡다한 일은 동생들 몫이고, 하루라도 동생들이 엄마와 함께하기를 바랐다.


그러던 오빠가 변했다. 

엄마의 치매가 깊어질수록 엄마 눈에 며느리와 사위는 남이다. 대놓고 할 말 안 할 말을 마구 퍼부어대니 올케언니 보호 차원에서라도 오빠가 나서기 시작했다.

게다가 작년, 엄마의 대퇴부 골절 사고 후에 더 변했다. 오빠도 어지간히 놀랐나 보다. 엄마를 다시는 보지 못할 수 있다는 걸 느꼈는지 솔선수범이다.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에 주저함이 없다.


엄마가 퇴원하자 그때부터 목욕도 직접 해드리고 기저귀관리도 오빠가 직접 했다.

그전에는 올케언니나 동생들에게 맡기던 걸 나서서 하니 오빠를 원망하던 마음도 사라지고, 4남매가 엄마를 중심으로 서로의 일을 앞장서서 나눠가지려 한다.

그럴수록 엄마에게 가는 길이 가벼워진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한 동네의 노력이 필요하 다했는데 치매엄마를 돌보는데 우리 4남매가 모두 필요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마음이 단단해짐을 느낀다.

휴가를 엄마와 보내고 있는 오빠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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