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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생 Sep 06. 2023

치매 엄마의 우당퉁탕 유쾌하고 개구진 하루 [10]

"잡채 가져갈꼬야"...엄마는 여전히 자식들의 뱃속을 책임지고 있다

치매 환자도 가족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Noodles thai food photo created by vecstock - ko.freepik.com</a>


 두 달에 한번 엄마 치매와 우울증 약 처방을 받으러 정신과 병원에 간다. 

가기 전에 노인주간보호센터 사회복지사에게 전화 상담을 요청한다. 

식사는 잘하는지, 프로그램은 잘 따라하는지, 이상 행동은 없는지, 화장실 이용에 문제는 없는지,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떠한지등을 체크하기 위해서다.

집에서 생활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테지만 혹시나 밖에서는 다른 모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과, 또 이렇게 두 달에 한 번씩 상담을 하다 보면 엄마를 더 관찰해주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크다. 사실 통화가 길어질수록 내 의도와 달리 복지사의 넋두리를 듣는 쪽으로 바뀌지만.


그런데 사회복지사가 이번에는 새로운 말을 한다.

센터에 있는 색연필이나 휴지, 가위를 챙겨 오는 건 오래된 버릇인데 이제는 손에 담아 가기 힘든 음식에도 눈독을 들인다는 거다. 


한 번은 호박전을 입에 넣고 씹지 않은 채 주변을 둘레둘레 눈만 끔벅끔벅하고 있더란다. 그래서 왜 안 드시냐 했더니 집에 가져가서 애들 주겠다고 하더란다. 

엄마가 말하는 그 애들은 이제 모두 50이 넘었는데.  


그리고 점심식사 메뉴로 잡채가 나온 날 엄마가 식사를 한 후, 오후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고 주방을 배회하더란다. 잡채를 찾고 있는 듯, 여기저기 뚜껑을 열어보며 집중하고 있을 때 직원이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했더니 곧장 욕을 쏟아내더라고.

맛있다 싶은 반찬이 있는 날은 종종 그러는데, 직원의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으면 대번에 고함치고 욕하기. 특히 잡채가 나오면 백발백중 주방에서 엄마를 찾는 모양이다. 


사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엄마에게 서운한 기억이 있다.

부모님은 추석 다음날이면 주로 동네 친구분들과 함께 명절음식을 나눠먹었다. 그날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잡채가 바닥날 거 같아서 엄마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집을 나섰다. 

“엄마 잡채는 손님상에 내놓지 말고 남겨줘 나 먹게 꼬오옥 응? 꼭이야 잊지 마” 

몇 번을 말했고 엄마는 몇 번을 알았다 했는데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역시나 잡채는 없었다. 학교에 있는 내내 잡채 먹을 생각만 했는데.

그리고 울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약속을 어겼다고. 

엄마는 내놓을 음식이 부족해서 그랬다며 짧게 말했고, 나도 잡채는 일 년에 두 번 먹는 거라며 바락바락 악을 쓰고 엄마는 늘 오빠만 자식이라며 며칠 토라져 있었다.


그때는 잡채가 세상 맛있었다. 사실 그때는 먹을 게 없었다. 검소하신 부모님 덕분에 하루 세끼를 먹긴 했지만 배부르게 먹은 적은 없었고 반찬도 주로 김치에 상추 감자가 다였다. 그러니 명절 음식은 일 년에 두 번 구경하는 요리여서 귀했고, 그중에 잡채가 제일 맛있었다. 

그 후론 엄마가 하는 말을 모두 신뢰하지는 않을 정도로 어린 내겐 충격적이었다.


그런 사연이 있던 잡채를 엄마가 집에 가져오려 했다는 말을 사회복지사에게 듣고는 울컥했다. 혹시 어린 날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한 나 때문인가 싶어서. 

24시간 돌봄을 받아야 하는 처지인데도 엄마는 여전히 자식들의 뱃속을 책임지고 있나 보다. 

지금은 먹을 게 천지라 그닥 즐기지 않는 잡채인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엄마는 가구공장에서 의자의 거친 면을 사포로 연마하는 노동자였다. 집에서 과묵했고 매정하게도 딸들에게는 애정 표현을 아꼈다. 그날 해야 할 집안일들만 줄줄이 주문하고 집을 나섰고 돌아와서는 해놓은 일에 대해 평가를 잊지 않았다. 피곤해서인지, 엄마가 무너지면 안 되니 마음을 단단히 다잡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엄마와 나른한 대화를 이어간 적이 없었다.  


자식에 대한 정이 뚝뚝 떨어지는 여느 엄마들과 다르다고 엄마를 많이 원망하기도 했는데 이제 알겠다. 가장으로서 의무감, 책임감을 내려놓은 치매 엄마에게서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자식 사랑을 무의식적으로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걸.


그 당시에는 철야작업을 해서라도 하루 세끼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는 게 엄마의 자식 사랑이었음을 알겠다. 

엄마의 마음은 변함없이 자식들에게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원망의 마음도 사라지고 그 마음을 몰라주고 가슴을 후벼 파는 소리를 해왔던 시간들이 미안하고, 엄마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 비로소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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