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면 또 집에 와서 엄살 부리니까 하지 마”하는 엄마 말 끝에
“엄마가 나를 잘 알아? 뭘 알아? 다 알아? 엄마면 다야? 딸한테 욕이나 하고” 언니의 언성이 치솟았고 언니는 이내 눈물을 왈칵 쏟았다. 12살 반려견 아리는 언니 품에 파고들어 눈물을 핥는다.
아뿔싸. 올 것이 온 건가 엄마도 언니도 더는 말하지 않기를 나는 소망한다. 엄마가 치매라 속내를 털어놓으며 소통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니 지금부터 하는 말들은 내게도 상처로 남을 듯한데 엄마는 연신 입술에 힘을 주어 이를 드러내며 욕을, 언니는 가까스로 욕을 참으며 자신이 못났음을 엄마 탓이라며 한탄한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엉킨곳이 어디인지 찾느라 내 전두엽은 순식간에 시속 200킬로 강풍에 휩싸인다.
경험상 내가 감지할 수 있는 건 도화선일 뿐, 문제의 본질은 은밀히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는 걸 종종 안다.
차근히 되짚어보기로 한다.
주식투자로 조카 유학까지 보낸 능력자가 요즘 미국발 주가 폭락으로 힘든 모양이다. 그러다가 언니 지인이 배달을 하고 있는데 괜찮다더라 배달을 해보겠다는 말을 엄마가 심상찮게 듣고 거든 말에 언성이 높아진 거다.
엄마가 오래간만에 정신 차리고 딸을 걱정하는 말로 나는 들었는데 언니는 ‘넌 못해 또 힘들다고 난리 칠 거야 끝까지 진득하니 해본 게 뭐가 있니’라는 말로 해석한 모양이다. 사실 크면서 언니가 엄마에게 자주 듣던 말로 성격 좋고 뒤끝 없는 언니의 거꾸로 난 비늘 하나가 그렇게 생겼고 이번에 또다시 건드려진 거다.
이 상황을 보고 있는 나는 복잡하다. 언니가 치매 14년 차인 엄마의 주보호자 역할을 2년째 하고 있는데 한계에 다다른 걸까. 이틀에 한번 꼴로 볼 때마다 밝은 표정이던 언니에게서 내가 모를 깊은 노고가 있음을 직감한다.
내가 방문하는 시간은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 귀가하는 5시에서 잠들기 전 8시까지이니 엄마가 하루 중 가장 좋을 때다. 그때만큼은 노래도 부르고, 퍼즐도 하고, 웃으면서 대화가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밤을 지키는 언니의 노고에 비할바가 못될 터. 일주일에 세 번 방문으로 체면치레를 하고 있으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내 쓰임을 고민하게 된다. 뭔가 더 해야 하는 건 아닌지를.
엄마, 언니, 나 셋은 하나의 상황을 두고 각기 다른 입장에서 해석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엄마는 걱정을, 물론 이것도 내 생각이지만 언니는 ‘내 능력을 무시하지 말아 줘’, 나는 엄마를 모시는 게 많이 힘들구나로 해석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상황을 종료하기 위해 엄마를 모시고 급하게 외출했다. 엄마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하던 욕을 멈추고 순순히 따라나섰고, 나선 김에 엄마와 누룽지탕을 먹고 식당 앞 화단 의자에 앉아 에어컨 바람도 식힐 겸 몸이 뜨끈해질 때까지 저녁놀을 보고 들어와 보니 언니는 그새 평소 목소리로 돌아와 있다.
엄마 잠자리를 봐드리고 불을 끄니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자 불 켜줘” 엄마도 엉뚱한 일상적인 말투로 돌아와 있다.
“엄마 자려면 눈부터 감는 거예요”
이렇게 또 한 번의 폭풍은 지나갔다. 각기 다른 생각은 서로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덮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