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도 가족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영미야 네가 왔구나 엄마 보러"
입원한 지 3일 후 수술시간이 잡혔다. 수술과 마취에 동의한다는 보호자 사인이 필요하다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어떻게 수술이 이루어지는지 설명을 듣지 못했지만 입원도 어렵게 얻어낸지라 수술할 수 있는 것만으로 감지덕지, 감개무량해서 나는 냉큼 수락했을텐데 오빠는 면담신청을 해서 상세히 설명을 듣고야 사인했다. 확실히 오빠의 일처리 방식은 나와 다르다.
레지던트 도움으로 수술 후 회복실에 있는 엄마와 전화연결이 됐다. 통화가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고맙다. "괜찮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잘해준다"는 엄마의 한 목소리를 들으니, 막연하게 품어왔던 의사에 대한 불신이 나의 편견이었음을 느끼며 마냥 감사했다. 수술 결과가 좋다는 담당의 소견까지 더해지니 그냥 좋다 이 병원이.
그런데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몸은 좋아지는데 치매가 급속히 진행되어 퇴원할 때쯤 우리들을 못 알아보면 어쩌나. 안 그래도 하루하루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데 한 달이나 자식들을 못 보고, 또 여기는 낯선 곳이고, 하얀 옷 입은 사람들만 오가고, 몸에는 주삿바늘이 꽂혀 있으니 일상을 완전히 잊어버릴까 봐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날로, 엄마 휴대폰을 개통해서 병실담당 간호사에게 전했다. 엄마가 전화 사용법을 모르니 오고 가면서 한 번씩 1번 버튼을 눌러서 통화할 수 있게 해달라고.
드디어 첫 통화가 됐다. 엄마가 나를 알아본다 밝은 소리로 내 이름도 알고 아저씨와 아가씨, 아줌마들이 잘해준다 말한다. 의사, 간호사, 요양보호사를 그리 말하는 것 같다.
전화를 아무 때나 받을 수 있는 사람 순으로 저장했다. 1번은 나. 2번은 올케, 3번은 동생, 4번은 언니, 5번을 오빠로 저장해 두고 나와 통화가 되면 그다음은 2번을 누르라고 엄마에게 일러줄 수 있었다.
이렇게 간간히 통화를 했는데 하루가 다른 치매라 안달이 나서 한번 통화가 되면 1시간씩 붙들고 있었다. 다른 병상에 있는 환자들의 움직임이나 엄마 눈에 보이는 모든 걸 화제 삼아 속삭이듯 대화를 이어갔다. 노래를 불러드리기도 하면서.
입원 한 달 동안 엄마가 좋아하는 '전선야곡'과 '섬마을 선생님'을 100쯤 불렀을까.
간호사를 무던히도 귀찮게 해서 간호사와도 하루에 한 번은 통화했다. 엄마와 통화가 안되면 전화 좀 연결해 달라 문제없냐 괜찮냐 치매라 정신없어 그런다 등등. 진상가족이었다. 너무 미안했지만 그때는 믿고 기다릴 배짱은 없었다.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했으니까.
한 보름정도 지나니 역전됐다. 간호사가 보호자를 더 찾는다. 엄마가 난동을 부리고 욕한다고.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인데 침대에서 무리하게 내려가려 한다. 제지하면 폭언에 고함에 욕에 강제 퇴원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병원에서 내려진 조치가 팔목을 침대 난간에 묶어놓는 거였다. 이젠 전화를 받기도 힘든 상태. 산 넘어 산이다. 이어폰을 이용해서 전화연결을 해도 금세 빠져 버리니, 통화를 제대로 할 수 없었고 한 달 가까운 병원생활이 힘들어지니 섬망 증세까지 더해져 정신과 진료도 받으며 겨우겨우 버텼다.
다시 간호사를 귀찮게 하는 시간을 한 주 보내고 드디어 퇴원하는 날, 엄마를 모시러 간 병실에서 웃고 있는 엄마를 보았다. 나를 알아보신다.
“영미야, 네가 왔구나 엄마 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