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이나 진부한 표현이다. 이런 나를 본 주위 친구들은 분명 '그때와 그대'를 놓고 상념에 젖은 나에게 못난 표정을 짓겠지.
남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가슴이 뻥 뚫릴 만큼 시원했다. 기대한 성적이 아닐지언정 전국모의고사를 치르고 나왔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나온 그 순간만큼은 여유가 넘치기 마련이니까. 서울 한가운데서 우리를 내려보고 있는 남산을 올려보며, 내가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했다. 그 순간, 낯익은 추억들이 작게 일렁일렁이다가 춤을 추기 시작한다. 노래는 그런 힘이 있다. 그래서 가끔은 우리는 과거로 갈 수 있는 타임머신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시간이 다듬어준 추억들은 다소 미화된 부분이 있겠지만, 나에게 좋은 추억으로 소중하게 남아있다가 다시 일어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춤을 추는 추억과 함께 나의 몸을 흔들게 만든 건, 행복한 그때일까? 그때와 함께한 그대일까? 답이 없다는 건 알고 있다. 이미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정리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은 문제니깐. 그래도 좋다. 그대와 함께한 행복한 그때 속으로 들어가 좋은 추억과 함께 춤을 추었고 내 기분을 환기했으면 그 뿐. 후회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후회는 과거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거고 춤을 추는 것과는 좀 다르달까? 글을 좋아하지만 서툰 편이다. 우매한 나와 다르게 이 글을 읽게 되는 이들은 분명 이해하리라.
글을 꽤 오래 쉬었다. 동기화 실패로 몇 년간 끄적였던 내 모든 글들이 일순간에 사라진 뒤로, 글을 다시 쓰기 좀 꺼려졌다. 영원히 남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록했던 나의 감정과 기억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니, 처음을 잃어버린 글들을 다시 이어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러다 보니 게으름도 함께 왔다. 특별한 계기로 글들을 다시 이어 적는 건 아니다. 그냥 때가 돼서 다시 하는 것 같다. 이미 베어버린 게으름으로 규칙 없이 쓰게 될지도 모르지만... 인생이라는 책의 페이지를 조금씩 채워나가보려 한다. 그래야 그 때든 그대든 나와 함께 춤을 춰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