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하 이야기

1. 밖에 네가 좋아하는 비가 잔뜩 온다.

by 달기

'밖에 네가 좋아하는 비가 잔뜩 온다.'

세상은 비를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비를 싫어하는 사람 두 부류로 나뉜다. 나는 어떤 어느 쪽에 서 있는 사람인가? 7월 어느 날, 끝난 것 같았던 장마가 다시 시작됐다. 요란한 여름비는 자기의 존재감을 여지없이 뽐낸다. 봄비, 가을비, 그리고 겨울비도 있지만 여름날의 비는 다른 형제들과 다른 맛이 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여름 더위에 지쳐있을 때, 여름날의 비는 시원한 그늘이 되어 한껏 달아오른 열기를 달래주고 어디서 난지 모를 지저분한 세상의 때도 닦아준다. 그렇게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노라면 생각나는 그 애 생각에 엉겨진 나의 잡념도 조금씩 씻겨내려 희미해져 간다.


그 애는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비가 올 때면 모든 게 무거워진다. 비에 젖은 옷가지는 물론이며, 물을 잔뜩 공기만큼이나 무거운 분위기는 세상에 지친 한 껏 지친 나에게 더욱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다. 비가 오던 어떤 하루에 비 오는 게 왜 좋냐고 물었다. 그런 내 물음에 그 애의 답이 무어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물 먹은 신발이 3배나 무거워졌다며 투덜대면서, 그 애는 비 오는 날이 좋다고 했다. 비가 올 때마다 나의 단골 질문이었지만 이해되지 않는 탓에 그 애의 답을 흘려들었고, 나와 그 애의 적은 말수 대신 저 높은 하늘 어디선가 떨어진 빗방울과 지면이 인사하는 소리만 가득했다.


하루의 끝엔 그날에 있었던 모든 일이 말을 걸어온다. 대부분은 오늘 그 일은 평생 이불킥할 흑역사로 남겠다며 달리 행동했더라면 어땠을까라고 혼자 머릿속으로 생각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창문 밖에는 오랜만에 만난 비와 땅이 정겹게 인사하는 소리가 가득하다. 자기들끼리 반가워야 하는 그 소리에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언제부터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를 빗소리가 기분 좋게 가득하다. 언제부턴가 나도 이유 없이 비 오는 날이 좋아졌다.


"밖에 너 좋아하는 비 온다. 비 그치면 내일 수목원에 다녀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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