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며, 서서히 자리 잡은 나의 기준이 와르르 무너졌다. 이 땅 위에 살아 숨쉬기 시작하면서 천천히 쌓아 올린 가치와 신념 그리고 미적 기준들이 '민하'를 만나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었다. 처음 민하를 봤을 때 머릿속에 '예쁘다'라거나 '아름답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더 나은 표현이 있진 모르겠지만, 인상 깊게 귀엽게 생긴 얼굴정도 였다. 하지만 지금 나의 모든 미의 기준은 '민하'가 되었다. 나는 눈썹이 꽤나 진한 편이었지만 민하 옆에 있으면 '아 나는 모나리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그 애는 엄청 흰 피부는 아니었지만 꽤나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그 애의 눈썹은 더욱 진하게 보였다. 나는 길고 숱이 많은 민하의 눈썹을 매만지며 짱구라 놀리는 게 좋았다. 그 애를 알게 되고 바뀐 것이 있다. 홍대, 신촌 등 어쩌다 번화가에 약속이 있거나 다른 목적지로 향할 때 스치듯이 지나치는 지하철에는 항상 예쁜 여자들이 많았었다. 평소 쉽게 마주치지 못할 미를 가진 여자들이 잔뜩 이 좁은 칸의 지하철에 모여있나 보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많던 여자들이 보이지 않았고 민하만 보이거나 그 애를 만나러 가는 지하철 속 차장에 비쳐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는 내 모습만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미의 기준은 민하가 되었다.
민하는 화장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못했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 진하게 생긴 그 애의 얼굴에서 비치는 강인함과 다르게, 민하의 피부는 화장품에는 약했다. 덕분에 민하의 얼굴에는 인위적인 더함이 없었다. 민하의 눈은 크고 쌍꺼풀이 진했다. 동그랗고 작은 얼굴에 오뚝한 코, 붉은 입술은 자신들의 가장 완벽한 위치를 알고 있다는 듯이 자리 잡았다. 짱구 같은 그 애의 눈썹은 말할 것 없이 완벽했다. 그 위 넓고 동그라니 입체적인 이마는 짙고 강인한 얼굴에 귀여움이라는 점을 아낌없이 더해주었다. 민하는 자신의 길고 날 선 코를 자부했지만 나는 항상 민하의 눈매를 보고 경외감을 느꼈다. 길고 짙은 눈썹과 함께 크고 빛나는 눈을 보고 있노라면 밤하늘의 꽉 찬 달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으며, 그 빛과 조우하는 순간마다 시간의 틈 사이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여자아이의 눈이 어쩜 매서우면서도 귀여운지 나는 분명 사람의 손길이 닿았으리라 짐작했다. 성형을 하고 눈썹 문신을 한 게 아니냐고 몇 번이고 물어보며, 밤하늘의 짙은 구름 같은 눈썹을 문질러 보았다. 그때마다 민하는 눈썹을 모으고 강렬한 눈빛을 쏘며 내 팔뚝을 꼬집었다.
아무 생각 없이 민하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세워왔던 모든 기준들이 어느새 내 눈앞의 존재에 맞춰져 있음을 깨닫는다. 나의 세상은 어두운 밤하늘, 홀로 빛을 발하는 달만이 보이고, 그 빛에 의지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세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