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석장에 흐르는 고흐의 혼
아비뇽은 독특한 도시다. 도시 전체가 성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곽도시인 것이다. 저녁 먹을 시간이어서 식당도 찾을 겸 아비뇽 성당 광장을 둘러봤다. 아비뇽에서 가장 핫 플레이스다. 버스킹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축제 기간이라 인파가 광장을 꽉 매웠다. 광장 주변에도 음식점들이 즐비했지만 어김없이 평점을 따라 골목으로 들어갔다. 목표한 식당을 찾았다. 각자 한 가지씩 음식을 시키고 와인도 한잔씩 시켰다. 우리가 오는 시간에 맞춰 축제를 열어준 아비뇽 시장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축제는 언제나 즐겁다. 여행자의 지친 마음을 흥분하게 만들어 도파민 샤워를 시켜준다.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광장으로 갔다. 디저트를 먹으며 광장에서 공연도 보고 축제 기분을 만끽하고 싶어서다. 프랑스의 시그니쳐 디저트인 크랩을 시켰다. 9시가 돼서 모든 공연이 끝났다. 성당 옥상에 사람들이 올라가 있어 우리도 올라갔다. 시내가 보이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꿈틀거리는 모습이 마치 도시전체가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꿈같은 아비뇽의 축제를 뒤로하고 내일 다시 올 생각으로 숙소로 돌아갔다. 흥분이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축제를 즐기는 프랑스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생각해 보면 우리 가족도 같이 모여 즐겁게 식사해 본 지가 꽤 오래됐다. 네 명 모두 흩어져 살고 있다. 나는 대구에 직장이 있고, 딸은 결혼했다. 아들은 호주에서 7년째 살고 있다. 아내만 집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다. 주말 부부는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 할 수 있는 일이라지만 온 가족이 떨어져 있으면 서로 서먹해진다. 아내와 아들은 오랜만에 만나도 서로 신나게 잘 어울린다. 나만 서먹한 것 같아 그것도 서운하다.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비애는 나도 예외일 수는 없나 보다. 프랑스에서는 식사시간에 와인이 없으면 서운하다. 우리도 저녁 식사 때마다 와인을 주문했다. 그동안 서먹했던 감정이 와인잔에 조금씩 녹아내리는 것 같아 여행의 보람을 느낀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우리 가족의 관계회복이다. 가족이라기보다 나만 가족의 품에 들어가면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채석장을 활용한 비디오아트장으로 향했다. 미리 예약을 해서 줄 서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채석장을 이용한 장소라 벽들이 불규칙하게 위치하고 있었고 그 불규칙적인 벽에 불규칙하게 비치는 비디오 아트는 환상적이었다. 사람들도 자기가 보고 싶은 장소에서 아무렇게나 앉거나 서서 구경하고 있었다. 자유로운 모습 자체가 예술이었다.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패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는 잠시 흥분됐다. 10명 작가들의 작품을 차례로 보여주고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고흐의 작품들이 별처럼 쏟아져 내렸다. 40분 간격으로, 중간에 2분 쉬고 계속 상영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굿즈 머그컵을 한 개 샀다. 황홀한 기분을 만끽하고 점심을 먹으러 바로 옆에 있는 르 벨리라는 마을로 이동했다.
에즈처럼 중세 건물이 많은 멋진 골목이 있는 마을이었다. 마을을 구경하고 맛집을 찾아갔다. 베지테리안 식당이었는데, 테라스 테이블에 앉았다. 니스에서 테라스가 없어 홀에 앉았던 한 식당을 제외하곤 모두 테라스에서 식사했다. 날씨와 상관없이 테라스를 즐기는 프랑스 사람들의 영향을 받은 거다. 샐러드를 시켰다. 프랑스는 샐러드가 메인으로 부족함이 없는 영양구조로 되어있다. 소위 지중해식 식단이다. 맛이 좋아 여기서도 디저트 커피까지 모두 해결했다. 특히 천연 과일을 갈아서 만들었다는 보라색 디저트는 집에 가서 해 먹어 보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아비뇽으로 돌아와 다시 축제 현장으로 들어갔다. 거리에는 각종 공연을 홍보하는 단원들이 공연의 일부를 보여주며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거리를 가득 매운 인파와 홍보하는 사람들로 빈틈이 없는 거리를 구경하며 우리도 계속 걸어 다녔다. 피곤을 느낀다고 하면 미안할 정도로 모두가 흥분의 도가니였다. 아비뇽 역까지 밀려가서야 허기가 느껴졌다. 오늘 생일인 나에게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르라고 해서 일식당에 갔다. 일식집을 찾아 세트메뉴를 주문하고 와인도 한 병 시켰다. 남프랑스 아비뇽 축제 속에서 맞이하는 생일도 특별한 기분이었다. 마치 내가 중세 왕이었고, 내 생일을 맞이하여 민중들이 생일 파티를 해주는 걸로 생각하기로 했다. 착각은 자유니까.
축제가 무르익어 가는 만큼 가족과의 어색한 분위기도 점점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아비뇽은 축제로 기억될 것이다. 내 남은 인생이 매일 축제로 다가오기를 바라본다. 학교에 가기 전 호텔에서 엔터테인먼트 매니저를 한 적이 있다. 호텔의 행사를 담당하는 업무다. 크리스마스, 밸런타인데이 등 특별한 날에는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을 했다. 인생이 축제였던 시절이었다. 지방의 학교에서는 선비의 가면을 쓰고, 또 다른 자아로 살아야 했다. '아~ 옛날이여'를 가끔 소심하게 외쳐보곤 한다. 다음 목적지는 내가 원해서 계획에 넣은 보르도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