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찾아가는 여행.
학교 강연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강의실 창가로 겨울 햇빛이 살짝 기울여 들어오고, 선생님들의 눈빛도 어느새 차분해진 그때, 한 선생님이 손을 들며 이렇게 물었다.
“작가님에게 글쓰기란 어떤 의미인가요?”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생각했다. 계속 써왔기에 너무 당연하게 여기던 일을 누군가 다시 묻는 순간, 마치 오래된 낡은 서랍을 천천히 여는 기분이 들었다. 입안에서 맴도는 대답은 평소처럼 ‘위로’ 거나 ‘다정함’, 혹은 ‘휴식’이라는 말들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쪽에서는 작은 떨림이 일었다. 그 문장은 사실이지만,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의 가장 깊은 자리를 설명하지는 못했다.
돌아오는 길, 그 질문을 다시 떠올렸다. 글쓰기는 나를 나답게 살아가게 하는, 가장 은밀하고 단단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나는 글을 쓰며 위로받기도 하지만, 사실 더 자주 무너지고 나를 곧게 세우는 편이다. 적당히 포장할 수도 있는 말들이 문장의 울타리 앞에서는 힘을 잃고, 마음속 깊이 숨겨 둔 본래의 얼굴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글은 나로 하여금 나를 속이지 못하게 한다. 타인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을 속일 수 없는 것이 글쓰기다.
그 어떤 거울보다도 더 정직한 표면을 가진 것이 글이기에 나는 늘 그 앞에서 다시 태어난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역할을 입고 벗는다.
엄마, 아내, 딸, 친구, 작가, 대표…. 그러나 글 앞에 선 나는 오로지 ‘나’한 사람으로만 존재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얼굴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마음과 아물지 않은 결들이 가장 먼저 고개를 든다.
그래서 글쓰기는 나에게 내 마음을 번역하는 느린 작업 같아, 가끔은 단어 하나를 건지기까지 긴 침묵을 견뎌야 한다.
말로는 끝내 설명할 수 없던 마음을 조금씩 번역해 내는 밤들의 반복이 나를 지켜낸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문장을 쓰다 보면 마음이 먼저 앞서가는 자신을 만난다.
글 속의 나는 때로 더 솔직하고, 때로 더 약하고, 또 때로는 비겁하고, 내가 미처 알지 못한 강인함을 품고 있다. 그 모습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를 이해하게 되고 그 이해에서 비로소 새로운 삶의 방향이 열린다.
쓴다는 행위는 삶을 기록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삶을 만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기록은 삶을 두 번 사는 것이라 하였다. 한 번은 경험으로 한 번은 마음으로. 음미하면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쓰는 행위다.
쓰는 삶이란,
흘러가는 하루를 붙잡아 자기만의 온기로 데워내는 일이며 지나간 시간을 마음속에서 다시 피어오르게 하는 가장 고요한 애정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말한다.
“왜 그렇게까지 글을 쓰세요?”
나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글쓰기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내 안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여행입니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흔들리는 날들의 무게를 그대로 품어 줄 수 있는 유일한 공간, 넘어지는 순간에도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는 작은 손길이 언제나 글의 한 모서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또 한 줄을 쓴다.
그 한 줄이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갈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를 잃지 않게 해 준다는 믿음만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여기, 한 가지 사실을 더 고백하고 싶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다.
선한 글, 밝은 글을 쓰기 위해 애쓰고 내가 쓴 문장에 책임을 지고자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부족함을 느낀다. 세상은 종종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글로 나를 판단하려 한다. 문장 몇 줄이 내 삶 전체를 설명할 수 있다는 듯 나의 마음과 존재를 문장으로만 규정하려 한다.
그러나 조심스레 말하고 싶다. 나의 모든 것이 글로써 보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글은 나의 한 조각일 뿐, 내가 살아가는 모든 얼굴을 다 품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더욱 신중하게 쓴다. 한 문장을 내보낼 때마다 글 앞에서 겸손해지고 책임을 배우며 한 줄 한 줄 의미를 부여 하도록 말이다.
글쓰기란,
결국 자신을 발견하는 가장 조용한 방식이며, 자신을 찾아가는 진정한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