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와 천사의 속삭임

천사 악마와 사는 나

by 볕뉘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악마와 천사를 한 세트로 장착하고 산다고들 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심지어 나의 악마와 천사는 직급 체계도 확실하다. 악마는 대리 정도 되고, 천사는 과장쯤 된다. 그런데 문제는, 실질적인 업무는 늘 대리인 악마가 더 많이 한다는 데 있다.

예를 들면 아침에 눈을 뜨면 천사가 속삭인다.
“일어나서 씻어요. 정돈된 하루는 깨끗한 육체에서 시작돼요.”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악마는 침대 안에서 반박한다.
“오늘 하루 머리 안 감은다고 안 죽어. 어제 감았잖아. 오늘은 그냥 자연 건조 분위기 컨셉으로 가자!”

천사가 다시 말한다.
“안 돼요. 감아야 해요. 깔끔해야 마음이 맑아요.”
악마는 팔짱을 끼고 말한다.
“마음은 안 감아도 맑을 수 있어. 샴푸가 인생을 결정하지는 않아.”

결국 나는 양쪽의 싸움에 휘말린 채 욕실 문 앞에서 서성댄다. 이 전쟁은 보통 악마가 이긴다. 왜냐하면 침대가 너무 포근하기 때문이다. 침대는 악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악마의 지지 세력이다.

씻기 전쟁을 가까스로 마치고 나면 두 번째 싸움이 기다린다. 정리하기 전쟁이다.
천사가 말한다.
“책상 위 정리 좀 해요. 저 상태로는 영혼도 길을 잃어요.”
악마가 바로 반격한다.
“아니야. 저건 창조적 혼돈이야. 위대한 작가들은 늘 책상이 어지러웠다고.”

천사: “그건 위대한 작가니까 그래도 된 거예요.”
악마: “그럼 지금부터 우리가 위대해지면 돼!”

말은 그럴싸하지만 결국 어지른 사람도 나고, 치워야 하는 사람도 나다. 악마는 말만 한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악마는 노동을 사랑하지 않는다. 하지만 ‘설득’은 기가 막히게 잘한다.


하지만 내 안의 천사도 쉽지 않은 존재다. 정리라는 건 단순히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일이 아니라, 마음의 온도를 맞추는 의식이라며 내 귀에 속삭인다. 그러다 보면 정말 내 삶도 조금 정돈되어야 할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움직이게 된다.

이때 또 악마가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근데… 지금 넷플릭스 새 시즌 떴던데?”
그 한 마디.
그 마성의 속삭임 한 줄이 모든 다짐을 ‘저 멀리 다음 생’으로 날려 보낸다.

천사가 다급하게 소리친다.
“지금 보면 오늘 하루 다 날아가요!”
악마는 미소 지으며 말한다.
“그래서 좋은 거야. 하루쯤 날아가도 인생은 계속되거든.”

결국 리모컨은 내 손에 쥐어진다.
이때 천사는 마지막 힘을 짜낸다.
“책상 정리하고 책 읽으려고 했잖아요…!”
악마는 0.1초 만에 반박한다.
“우린 인생이라는 긴 책을 매일 읽고 있어. 오늘은 시청각 자료로 보완하는 거야.”

결국 나는 넷플릭스 앞에 앉고, 천사는 고개를 떨구고, 악마는 팝콘을 든다. 이상하게도 늘 패배하는 건 천사지만, 이상하게도 또 가장 오래 잔소리하는 것도 천사다.

그런데 이런 전쟁을 매일 치르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는다.
내 인생에는 악마도 필요하고, 천사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악마가 있어야 조금은 게으르고 자유롭고, 천사가 있어야 삶이 정리정돈 되어 균형이 살아난다.
악마는 내 삶의 여유고, 천사는 내 삶의 결심이다.

무엇보다 둘이 함께 있어야 내가 ‘나답게’ 움직인다.
악마 같은 여유와 천사 같은 결심이 번갈아 가며 나를 일으키고 눕힌다.

오늘도 그 둘은 나에게 묻는다.
“그럼 오늘의 선택은 누구야?”

나는 웃으며 말한다.
“둘 다. 씻기는 천사가 맡고, 넷플릭스는 악마가 맡아. 정리는… 음, 내일의 나에게 맡긴다.”
삶은 늘 그 사이 어디쯤에서 흔들린다.
여유와 결심 사이, 악마의 속삭임과 천사의 잔소리 사이,
그리고 매일 아침 침대와 샤워기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나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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