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님들 공저 시간
브런치 작가님들과 공저 모임이 있는 날.
한 달에 한 번, 달력 위에 조용히 동그라미를 그려 두는 날이다. 그날이 다가오면 마음은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있다. 아직은 글로만 오가는 이야기들이 몇 달 뒤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올 거라 생각하면, 설렘은 늘 예정보다 먼저 문을 똑똑 두드린다.
서로 다른 시간, 다른 삶의 온도로 써 내려간 문장들이 한데 모여 어떤 계절을 이루게 될지 상상해 본다. 누군가의 봄은 아직 꽃망울을 틔우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을 테고, 또 다른 이의 여름은 소나기처럼 급히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가을을 통과하는 문장도, 겨울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그 모두가 한 권의 책 안에서 같은 하늘을 나눠 갖게 되는 일.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 한쪽이 따뜻해진다.
글쓰기는 종종 고독한 일이다. 빈 화면 앞에 앉아 있으면 세상에서 자신만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단어 하나를 고르기 위해 몇 번이고 지우고 다시 쓰는 동안, 시간은 무심히 흘러가고 마음은 자주 흔들린다. 잘 쓴 것 같던 문장이 다음 날이면 낯설어지고, 자신 있게 내놓았던 문장은 스스로에게 가장 먼저 의심받는다. 글쓰기가 모험이라면, 그것은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은 여정일 것이다. 지도도 없고, 정답도 없다. 다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자신을 조금 더 깊이 만나게 될 뿐이다.
그럼에도 이 길을 계속 걷게 되는 이유는, 함께 걷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공저 모임에서 마주 앉은 작가님들의 얼굴을 바라보면, 각자의 문장 뒤에 숨은 시간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누구는 가족의 하루를 건너왔을 것이고, 누구는 직장의 소음 속에서 문장을 품었을 것이다. 또 누구는 아픈 기억을 끌어안은 채, 누구는 사소한 기쁨을 주머니에 넣은 채 이 자리에 왔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의 모든 사정을 알지 못하지만, 글 앞에서만큼은 묘한 연대감으로 연결되어 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사실, 나만 흔들리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은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된다.
글쓰기는 ‘자신을 비우고 다시 채우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마음속에 쌓아 두었던 감정과 기억을 꺼내어 문장으로 흘려보내는 일은, 어쩌면 스스로를 비우는 일에 가깝다. 그렇게 비워진 자리에는 새로운 감각이 들어온다. 다른 작가님의 문장을 읽으며 미처 알지 못했던 감정의 이름을 배우고, 미처 느끼지 못했던 삶의 각도를 발견한다. 공저라는 작업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자신의 언어로만 가득 차 있던 세계에 타인의 계절이 스며들고, 그로 인해 문장은 조금 더 넓고 깊어진다.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계절을 안고 모였다. 아직 다 쓰지 못한 이야기, 끝내 말로 옮기지 못한 마음, 쓰다 멈춘 문장들까지 모두 품은 채로. 이 미완의 시간들이 언젠가 한 권의 책 속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알기에, 지금의 서툼마저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글은 완성될 때보다 쓰이는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남긴다. 흔들린 시간, 망설인 순간, 서로의 문장을 건네며 나눈 침묵까지도 모두 기록의 일부가 된다.
몇 달 뒤 책이 나오면, 우리는 아마 이 날을 떠올릴 것이다. 아직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았던 오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단단했던 마음을. 글이 우리를 이어 주고, 사람이 길이 되어 주었던 이 시간을. 그래서 오늘도 다시 믿어 본다. 글쓰기는 혼자 하는 일이지만, 결코 혼자 완성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이 계절을 함께 건너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기꺼이 다음 문장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