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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뉘 Aug 16. 2024

마음을 반짝이게 하는 것

커피와 일상

나에게 커피란 그저 단순한 카페인 만은 아니다. 커피를 함께 마시는 사람, 그날의 공간, 온도, 바람, 습도, 냄새. 모든 것이 일상이 된 하루의 달콤함이다.

모든 것이 어우러진 종합 선물 상자이며 하루 시작을 알리는 자명종 같은 것이다.

어렸을 적 나는 도시가 아닌 시골 그것도 산골짜기에서 살았다.

아침에 일어나 마주한 나의 첫 세상은 늘 짙은 안개로 자욱했다. 안개에도 냄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안개 넘어 세상이 궁금하고, 그 세상 속 사람들을 동경했다.

세상 온통 적막함 속에 새소리, 나무 바스락 거리는 소리, 풀잎 스치는 소리, 계곡 물소리, 동물들에 소리, 풀 냄새, 나무 냄새, 이슬 냄새 등. 자연이 주는 냄새로 하루를 시작하였다.

깊은 산속, 짙은 안개가 숲을 감싸 안는 순간, 세상은 몽환적으로 변한다. 잿빛 구름이 산등성이를 휘감아 돌며, 능선을 따라 흐르는 안개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유유히 움직인다.

발밑에 펼쳐진 숲은 안갯속에 잠겨 흐릿하게 윤곽만 드러낸다. 마치 꿈결 속을 걷는 듯,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은 하얀 면사포를 두른 듯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풀잎 위에 맺힌 물방울은 투명한 보석처럼 반짝인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 새들의 지저귐이 희미하게 들려온다. 마치 안갯속에서 울려 퍼지는 요정들의 노랫소리 같다. 숲 속을 가득 채운 습기는 코끝을 간지럽히고, 풀 내음과 흙냄새가 뒤섞인 향기는 마음을 정화시킨다.

안개는 모든 소리를 흡수하고, 시야를 가린다. 오감을 통해 세상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세상을 느끼는 순간이다. 고요함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연과 하나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며 안개는 서서히 걷히기 시작한다. 햇살이 비치며 숲은 다시 생기를 되찾고, 안개는 숲 속 어딘가에 자취를 감춘다. 하지만 몽환적인 아름다움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힘든 순간마다 나를 위로해 준다.

산속 안개는 자연이 선물하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다. 잠시 일상을 벗어나 깊은 산속을 찾아, 안갯속을 거닐며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후각이라는 것은 참 신비롭다. 같은 나무여도 매일 다른 냄새가 나고, 익숙한 향기가 코끝을 스미며 과거의 영상이 떠오르게 만든다.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한 것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혹은 지나쳐 왔기에 갖는 미련, 혹은 그리움이 아닐까.

성인이 되어서 아침을 맞는 풍경은 시끄러운 차 경적 소리,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대화 소리로 가득하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동굴에서 세상 속으로 걸어가는 소리인 것 같다. 무엇이 분주한 지 일률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과 같다. 

이런 나에게 커피는 소소한 일상의 첫출발이고, 기억에 그리움이고, 오전에 활기다.

누가 나에게 밥 먹자 하면 밍기적 밍기적 귀찮아하다가도, "커피 한잔 할래?" 하고 전화가 오면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인다.

"좋아 커피"

난 커피를 사랑한다. 사실 커피맛은 잘 모른다. 0.5샷.

원샷도 아니고 0.5샷을 해달라고 하면 사장님들은 다들 "추가시죠?" 하고 묻는다.

"아니요 0.5샷만 내려 주세요"

지인들은 무슨 맛으로 마셔  혹은 안 마시고 만다는 견해와 커피 물이다 라면 나를 놀린다.

맞다. 사실 커피물이다.

난 연하게 마시는 커피 물이 좋다. 남들은 차라리 마시지 말라고 하고 아예 디카페인으로 마시라고 하지만 커피 마시는 행위는 나에게 쉼이다. 휴-하고 한숨을 내시는 행위다.

바쁜 일상 속에서 내가 나 나 자신에게 주는 휴식이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은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나만의 고요한 동굴로 잠적해 버리는 순간이다.

사실 커피를 통해 나는 잠시 이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커피 한잔이 주는 위로가 있다.

따스한 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 손에 든 커피 한 잔의 온기는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 준다. 갓 내린 커피에서 풍겨오는 향긋한 향기는 잠자던 감각을 깨운다.

커피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 우리 삶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한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고민이 될 때, 커피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지친 하루를 마무리하며 위로를 받기도 한다. 커피 한 잔의 여유는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에게 작은 행복을 선물하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오늘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통해 작은 행복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바삐 움직이는 사람 구경도 하고, 어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지 살펴보고 내 마음에 작은 나를 만나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며, 인위적인 것보다는 자연이 주는 쪽으로 시선을 두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 노력이 10분이어도 좋고 단 5분이어도 좋다. 더불어 내가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과 함께 라면 더할 나위 없다.

소소한 대화 혹은 대화 없이 커피 잔만 만지작 거려도 이 행위를 이 침묵에 고요함을 사랑한다.

세상 어느 말 말보다  커피 한잔 할래요?라는 말을 사랑하는 나.

오늘 하루도 이 커피 한잔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다. 수없이 나에게 귀 기울이고, 상대한테 귀 기울이는 시간.

커피가 있기에 가능한 시간들, 공간, 사람들.

오늘 저랑 따뜻한 커피, 혹은 아아 한잔 하실래요? 아님 다정함 한잔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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