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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Mar 26. 2023

백합

[그림대화] (10)

     화병에서 꽃들이 폈다. 활짝 핀 것도 있고, 꽃망울이 터진지 얼마 되지 않은 것들도 섞여있다. 이미 시들어 화병 아래 쓰러진 꽃들이 함부로 벗어놓은 옷처럼 널브러져 있다. 가만 보니 이파리는 꺾이고 구부러진데다가 꽃잎은 이미 변색되어, 처참하다. 그 모습을 가까이서 내려다보고 있는 백합은 며칠 후 자신의 운명을 짐작하기라도 하는지, 처연하다.

 

     마치 인생과 세월을 음미하기라도 해야 할 것처럼, 화병에 착 달라붙어 있는 탁상시계가 보인다. 청동의 청(靑)이, 구리(銅)가 산화해서 생긴 녹(綠)의 빛깔에서 온 거라던데 …… 녹의 신비한 푸른빛이 화병과 시계에 어른거린다. 허공 속 공기와 오랜 시간 부대껴온 인연의 흔적이어서 그리 아름다운가보다.      


#화가 #형 #류장복 #그림대화

백합, oil on linen, 45.5x37.9cm, 2018-22/ Jangbok 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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