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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Apr 25. 2023

이브 Eve

[그림대화] 30

     생명의 ‘활력과 평화’로 다가와야 마땅할 빽빽한 초록의 더미가 파란 담벼락에 억눌려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창틀 위 처마의 음영이 그 위를 더 짓누른다.      


     담벼락에서 꿈틀대는 ‘움직임’은 억압을 뚫고 담벼락 너머를 갈망하는 넝쿨의 몸부림일까? 아니다, 이미 작은 희망조차 기대할 수 없음을 알리는 담벼락의 경고이다.      


     넝쿨이 혼신의 힘을 쏟아 담벼락을 넘을 무렵, 무자비한 태양의 광열(光熱)에 눌려 그 자리에 그만 말라붙어 버렸다. 넝쿨은 마침내 담벼락에 깊은 상처로 패인 채 묻히고 말았다.      


     ‘지옥의 문’ 앞에서 절망의 순간을 안타까워하며 서로를 탐닉했던 120여 년 전의 남녀가, 지금 다시 창가에 있다. 부엉이가 창밖의 절망을 알아차린 남녀의 운명을 안타까워하며 그 위를 배회한다.      


#화가 #형 #류장복 #그림대화

이브 Eve, oil on linen, 90.9x72.7cm, 2014-21/ Jangbok 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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