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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Apr 27. 2023

두 개의 거울이 있는 방

[그림대화] 34

     날씬한 여인이 가벼운 원피스 차림으로 앉아있다. 아담한 어깨에서 자연스레 흐르는 팔의 선이 매끄럽다. 스툴에 앉아 겹쳐놓은 다리가 세련되다. 약간 짙은 피부색이 파랑-빨강의 알록달록한 옷 무늬와 어울리면서 건강해 보인다.

     여인의 뒤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튀어 보인다 싶었는데, 그림자가 아니다. 얼굴이 있다. 남자 얼굴이다. 그런데 몸은 상체만 보이고 그나마 문짝 같은 것으로 몸의 일부를 가린 채, 노려보듯 여인의 뒤를 응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여인의 뒷꼭지에 눈의 초점이 맞춰져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기이한 장면이다.  

     그러고 나서, 다시 화면을 훑어보았다. 우측 화면도 세로 수직선으로 잘려있다. 책이 꽂인 책꽂이의 일부가 보인다. 화면의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전형적인 구상(具象) 화면인데, 그 화면의 구성이 뒤죽박죽이다. 한참을 뚫어지게 보았다.      

     여인은 모델이다. 그 뒤 남자는 화가인데, 모델 뒤 벽거울에 비친 화가의 모습이다. 화가의 몸을 가리고 있는 것은 그리고 있던 캔버스(canvas)다. 그럼, 화면 오른쪽 세로로 잘린 책꽂이 장면은 또 뭔가?

     그렇다! 수직 세로선의 좌측 화면은 캔버스였다! 즉, 여인과 여인을 그리는 화가의 모습이 그려진 캔버스를 다시 그린 것이다. 수직 세로선 우측 화면은 방 안에 있던 책꽂이를 그린 것이다.


     재밌는 공간 트릭이다. 나(작가)와 타자(모델)의 구도는 타자(모델)와 나´(거울 속 나)의 구도로 전환되고, 이 전환된 구도를 나(작가)가 다시 직면함으로써, 이 그림이 탄생한 것이다.   음향의 하울링(howling) 현상과 유사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작가가 거울을 통해 대상으로 빨려 들어가고, 모델과 ‘거울속작가’를 대상으로 그려낸 캔버스를 책꽂이 옆에 세워놓고 또 다시  그려낸 것이다. [나(작가) ↔ 타자(모델)] ⇨ [타자 – 나´(거울 속 나)] ⇨ [나 ↔ (타자-나´)] ⇨ 나 ↔ [나´ - (타자-나´´)] …… 화면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화면 속에 작가가 등장하는 것은 왜일까? 작가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작가의 지각(감각작용)과 붓질(노동)의 결과는 화폭에만 남을 뿐이다. 작가는 화면에서 보이지 않으므로, 감상자는 결과물(그림)을 놓고 작가를 간접적으로 추론할 뿐이다.

     감각하고 노동하고 있는 작가 자신을 화면에 등장시킴으로써, [작가(나) ↔ 모델(타자)] 대립 속에서 벌어지는 교감과 역동을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싶어서였을까? 확성기의 하울링(howling)이 소리를 자동 증폭시키는 것처럼, 대상을 앞뒤로 배치함으로써 생기는 화면깊이와는 사뭇 다른 ‘깊이감’이 화면에 생기는 거 같다.      

#화가 #형 #류장복 #그림대화

두 개의 거울이 있는 방, oil on linen, 90.9x72.7cm, 2018/ Jangbok 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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