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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Apr 27. 2023

낮꿈 Daydream

[그림대화] 33

     이번 창은, 화면이 온통 부유하는 듯 비현실적이다. 점묘파의 작품처럼 화면 전체적으로 작은 색점들이 모여 색채를 형성한 듯한데, 사실은 덧칠된 물감의 요철(마띠에르, Matière)이 빛과 충돌해서 일으키는 시각적 효과다. 모래알갱이처럼 하얗게 난반사되는 빛이 몽환적 공간을 창출하고 있다.


     대상사물이 배경에 새겨진 흔적으로 보일 정도로 배경과의 경계가 거의 없다. 하지만 형체의 윤곽이 결코 시각적으로 소멸하지 않는다. 그 경계를 타는, 참 섬세한 눈과 집요한 붓질이있었으리라 짐작해본다      


     잘 살펴보면 화면에 등장하는 소재가 꽤 많다. 이글이글 타오르며 빛을 발산하는 별, 꼬리를 길게 흘리며 떨어지는 별똥별이 상단에 있다. 우측으로 에펠탑과 석탑이 나란히 겹쳐지고, 그 옆엔 비행기가 날고 또 건물에 불이 붙어 타오르고 있다. 좌측 아래엔 넘실대는 파도를 따라 범선이 위태롭게 출렁댄다. 범선 옆에는 잠수부가 바닷 속을 활강한다. 탑 아래 심해 바닥에 세월호가 처참하게 좌초되어 있다.       

     밝고 화려한 색감인데, 왠지 불안과 혼란의 감정이 올라오고, 우울감이 밀려온다. 소재들이 암시하는 느낌 탓일 거다. 총체적 재난의 묵시록 같은 느낌이다. 화면 왼쪽 구석에 표범이 있다. 배경에서 쓰윽 스며나온 듯하다.


     표범 특유의 유연한 자세로 움직이는데, 앞발 하나를 슬며시 걸치며 창틀을 넘어 들어오고 있다. 별안간 몽환적 상황이 ‘현실’로 전환된다. 멸망의 징조가 무자비한 재난으로 밀어닥치며  긴박-절박감을 불러일으킨다. 아, 그냥 ‘낮꿈’이었기를...      

#화가 #형 #류장복 #그림대화

낮꿈 Daydream, oil on linen, 90.9x72.7cm, 2014-21/ Jangbok 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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