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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Apr 29. 2023

꿩동산의 봄

[그림대화] 38

     마치 영화관 스크린을 마주한 듯한 스펙터클한 화면이다. 화면을 가득 채운 곱고도 산뜻한 색감에 시선이 머문다. 결국 연분홍은 몽글몽글 따뜻하게 저미듯 마음을 적시고 만다.       


     쓰러질듯 기운 나무둥치에서 나뭇가지들이 왈칵 뛰쳐나오더니, 가지들에선 연분홍 꽃들이 흐드러지게 흘러내린다. 


     어부의 손을 떠난 그물망이 바다를 향해 아가리를 한껏 벌려 덮치는 찰나인가, 화산에서 치솟은 용암이 온누리로 쏟아져 내릴 참인가. 그 기세도 기세지만, 스냅사진으로 잡아둔 듯 여전히 꿈틀대고 펄럭거리는 장면의 역동이, 바로 눈앞의 광경인양 생생하다.        


     이런 요란한 하늘의 요동(搖動)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무 아래 의자에 걸터앉아 숨을 고르는 노인, 손주 태운 유모차를 끌고 나무 다가오는 할머니 …… 4.3의 그 비극을 각인처럼 새기고 있을 제주의 강토, 강토를 적시고 흘러간 그 핏빛으로 푸르른 바다,가 비현실적이리만큼 한가롭고 평온하다. 그래서 ‘그날’의 서러움이 더 서럽다. 


     화면 오른쪽 구석에 낙관(落款)이 찍혀있을 자리에 낙관 대신 커다란 바위가 처박히듯 꼽혀있다. <꿩동산>에 있던 바위덩이를 가져다가 박아두었나? 작품의 제목이 다시 환기된다.      


     먹을 듬뿍 머금은 붓이 한 호흡으로 장쾌하게 휘갈겨낸 ‘속도와 운동감’이 깊은 원근(遠近)의 시선 아래 차분한 붓질로 담아낸 바닷가의 평온한 풍경과 공존한다.      

#화가 #형 #류장복 #그림대화

꿩동산의 봄_oil on linen_53x116.8cm_2022-23/ Jangbok 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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