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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May 05. 2023

철암랩소디-검은 사슴

[그림대화] 47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창유리를 타고 슬픔으로 흐른다. 멈칫 주저하다가 흐르기도 하고, 그만 지쳐 마른 흔적으로 머물기도 한다. 주르륵, 추락하듯 미끄러지기도 한다. 저마다 사연이 다를 거다.


     창 너머엔 함태광업소가 절벽처럼 버티고 있다. 이미 좋은 시절 다 흘러가버린 뒤련만, 콘크리트는 스스로 삭아 스러지지도 못하고, 저리 덩그러니 서있다. 스산하다.


     두꺼운 외투에 두 손을 찔러 넣고 건물 벽에 붙어 땅을 보며 걷는 사내, 사내의 품에 파묻혀 흐느끼는 여인. 쓸쓸하다.      


     먼발치서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뿔 달린 사슴, 뿔과 이빨을 자르겠다고 덤벼드는 광부의 손아귀에서 용케도 잘 빠져나와 마침내 지상에 올라온 그 ‘검은 사슴’*일까? 미련일랑 버리고 얼른 튀어!


     건물 위 끝에 한 사람이 부웅~ 날아오른다. 비오는 겨울, 그곳만 하늘이 파랗다. 구름도 그를 엄호하듯 지켜본다. 가슴을 활짝 열고, 거칠 것이 없다. 숨통이 트인다.

* 한강의 장편소설 <검은 사슴>     


#화가 #형 #류장복 #그림대화

철암랩소디-검은 사슴, oil on linen, 65.1x272.7cm, 2015-21/ Jangbok 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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