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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May 05. 2023

악몽

[그림대화] 46

     엷게 푸른 창이 시원하고 밝은 기운이 가득하다. 그런데 창을 가로지르는 묵직한 실루엣이 심상찮다. 하늘을 유영하는 돌고래인가. 아니, 불발한 채 처박힌 포탄인가. 세월호다! 해저에 처참하게 고꾸라진 그대로의 세월호다.


     순간, 창은 서늘한 죽음의 공간으로 바뀌어있다. 수몰의 현장에서 출발한 부엉이 한마리가 힘겨운 날개짓으로 안간힘을 쓰며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 창은, 공포와 절규 속에서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가라앉고 있던 아이들을 전 국민이 눈 뜨고 보고만 있었던 바로 그 TV 화면창이란 말인가.


     창 안쪽 소품들도 심상찮다. 5,60년대 내전과 독재의 시대를 앓다 간 김수영 시인이 여전히 분노와 슬픔과 허탈의 표정으로 있다. 외국잡지의 표지사진에 등장한 딸이 오래전 무대에서 사라진 독재자 아버지를 소환한다. 팔 달린 토르소의 외침이 고통스럽다. 털모자에 장화까지 신은 병아리 인형이 애처롭다. 병아리 머리 위에는 “악몽을 꾼 거야”라고 쓰여 있다. 무엇보다 무감각-무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저 관절인형이 무섭다. 그래도 선반 끝에 놓인 화분 속 어린 싹은 희망일 수 있으려나.    

 

#화가 #형 #류장복 #그림대화

악몽_oil on linen_90.9x72.7cm_2014-17/ Jangbok 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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