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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Jan 18. 2022

쇼도 보고 영화도 보고

세탁소와 공짜 영화표

   우리 집이 세탁소여서 좋은 일도 있었다. 공짜로 극장표가 생겼다. 동네에 극장 홍보 포스터를 우리가 붙여주고, 극장 공짜 표를 2장씩 받았다. 세탁소가 영업을 마치고 밤이 되면 가게 유리문을 바깥에서 문짝으로 덮고 안에서 잠근다. 아침이 되면 쪽문으로 나와 문짝을 떼서 가게 옆 담벼락에 포개서 세워둔다. 마지막 문짝은 뒤집어서 세워두는데, 뒤집힌 그 문짝 면에 극장 포스터를 아래위로 나란히 두 장을 붙여놓는다. 

   포스터를 배달하는 사람이 두어 주 만에 한 번씩 와서 예전 포스터를 떼어내고, 그 자리에 새 포스터를 붙여놓고 간다. 처음에는 문짝에 고무줄을 팽팽하게 둘러서 그 안에 포스터를 넣어 고정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좀 크고 기다란 호치키스를 포스터 위에 대고 사방으로 옮겨가며 탁탁, 탁탁, 쳤다. 문짝은 나무로 틀을 짜서 한 면에 함석을 씌우기 때문에 나무 뼈대가 노출된 뒷면에 포스터 가장자리를 맞춰서 붙였다. 그리고는 가게로 들어와서 극장표 2장을 건네주며 “잘 부탁합니다.” 인사를 하고는 자전거에 휙 올라타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공짜 표는 세탁소 기술자 아저씨가 극장갈 때 사용하던지 손님 중에 누굴 주던지, 암튼 기술자 아저씨가 알아서 처분했다. 그래서 나도 가끔 아저씨 따라서 극장에 가보기도 했다. 우리 동네에는 극장이 세 곳이나 있었다. 미도극장, 미아리극장, 대지극장이다. 이 중에 대지극장이 개봉관으로 제일 좋은 극장이었는데, 지금의 미아삼거리역 이마트 맞은편쯤에 있었다. 그다음 급으로 재개봉관인 미아리극장은 지금의 길음역 8번 출구 건너편 자리에 있었다. 제일 아랫급이 미도극장인데, 큰길에서 정릉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었다. 미도극장 앞은 지금은 복개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정릉에서 나오는 얕은 천이 흘렀다. 여름이 되면 동네 애들하고 다 같이 몰려가서 종일 물장구치며 놀았다. 


   미도극장에서는 항상 ‘동시상영’을 했다. 동시상영이란 극장에 한 번 입장하면, 영화를 두 편을 연이어 보여주는 거다. 그런데도 입장료는 미아리나 대지극장보다 쌌다. 그렇다 보니 동시상영 영화에서는 항상 ‘비가 왔다.’ 개봉한 지 한참 지난 영화라서 여러 영화관을 돌다가 막바지에 오느라 필름이 상해서 화질이 선명하지 않았던 거다. 게다가 비만 오는 게 아니고, 영화 내내 계속 뚝, 뚝, 뚝, 소리가 났다. 어떨 때는 뚝 소리가 시끄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가끔 ‘쇼도 보고 영화도 보고’도 했다. 말 그대로 영화 한 편 보여주고 이어서 쇼 공연을 했다. 쇼는 여러 명의 가수가 나와서 노래하고 춤추는 공연인데, 가수 한 명이 다하는 ‘리사이틀’ 공연도 있었다. 미아리극장에서 하춘화 리사이틀 할 때는 하춘화 보러 간다고 동네가 난리가 났었다.      

   설날이 되면 동네에서 친구들과 형들이 다 함께 극장엘 갔다. 받은 세뱃돈에서 조금씩 떼어내 회비로 걷어서 단체로 극장에 갔다. 그때 상영한 영화가 <아랑곡의 혈투>였다. 제목만 딱 봐도 홍콩 무협영화인 ‘칼싸움’ 영화였다. 하기야 어린 시절에는 영화를 칼싸움 아니면 총싸움 영화로 구분했다. 그 외엔 지루하고 재미없는 영화였다. 이를테면 내 또래였던 김정훈 배우가 나오는 <엄마 찾아 천릿길> 같은 영화가 그랬다. 아침에 세배하고 떡국 한 그릇 후딱 해치우고는, 집결지인 우리 집 앞에 다들 모였다.

   열댓 명의 크고 작은 애들이 우르르 몰려서, 한 손에 약과며 한과를 집어 들고 의기양양 극장으로 향한다. 제일 큰 형아가 미리 걷어 둔 돈을 매표소 구멍에 밀어 넣으며 호기롭게 외친다.

   “애들 열넷이요.”

   매표소를 가로막고 있는 유리판 위쪽으로 아저씨 얼굴 하나가 쑥 삐져나와 늘어선 애들을 죽 둘러보고 수를 세고 들어간다. 애들은 반값이라 일일이 머릿수를 확인했다. 곧이어 유리판 아래쪽 반달 모양의 구멍으로 극장표가 삐죽 밀려 나온다. 우리는 입장표 한 장씩을 받아 들고 으스대며 극장 출입문을 지키는 아저씨에게 표를 내민다. 한 명씩 차례로 통과시켜주는 대로 회전문을 돌리며 밀고 들어가면 마침내 드디어 극장에 들어선다.

   극장 로비는 천정이 2층 높이였다. 2층으로 가는 계단도 따로 나 있다. 다행히 우리 좌석이 모두 2층 자리였다. 극장에선 2층 맨 앞자리가 명당이다. 그러면 어른들 머리에 가리지 않고 뻥 뚫린 화면을 시원하게 볼 수 있다. 재수 없을 때는 키 큰 어른들이 나란히 벽을 치고 앉은 바로 뒷자리에 걸리기도 한다. 그런 날은 의자에 등도 기대지 못하고, 내내 허리를 곧추세우고서 어른들 머리를 요리조리 피해 가면서 봐야 한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는 널따란 나무판대기 상자에 오징어며, 땅콩, 양갱 같은 먹을 것을 이것저것 담아서 의자 사이를 돌아다니며 파는 아저씨가 있었다. 아니 아줌마도 있고, 어떤 때는 애들이 팔기도 했다. 쟤는 영화를 공짜로 보니 좋겠다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따르르릉’ 유난히 자지러지는 종소리가 울리고, 천장과 벽 쪽 전등이 일시에 모조리 꺼진다. 순간 칠흑처럼 깜깜해지고, 소란했던 극장 안의 소음들도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 일순 조용해진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요란한 음악 소리와 함께 <대한늬우스>가 나오고, “에이~” 소리와 함께 극장 안은 다시 술렁인다. 뉴스가 끝나도 내친걸음, 이것저것 광고 선전 영상들이 한참 동안 이어진다. 대부분 안경집, 고급식당, 예식장 이런 것들이어서 동네에서 익숙한 곳들이었다. 선전이 끝났다 싶으면, 이번에는 다음에 올라갈 영화 예고편을 몇 개 더 틀어준다. 이제 본영화가 시작된다는 신호다. 함께 간 아이들은 이미 익숙해진 어둠 속에서 스크린의 밝은 빛을 틈타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후, 각기 편한 자세를 다잡고, 가져간 오징어 다리 한 개씩 빼물고 본격적인 영화감상에 들어간다. 

   영화가 끝나고 실내 등이 일제히 켜지고 크레딧이 올라가면, 애들은 다들 아쉬워하며 극장 의자에서 일어설 생각도 안 하고 영화의 결말을 두고 옥신각신하다가, 마지막에 청소하는 아줌마의 비질에 쓸려 나온다. 나오면서도, 죽기 직전 막판에 기적적으로 살아나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파죽의 기세로 단칼에 악당들을 우수수 쓰러뜨리는 비련의 주인공 흉내를 내며 소란을 떨어댄다. 그런데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면, 왠지 훌쩍 커버린 것 같은 흐뭇한 생각이 들곤 했는데, 그건 왜 그랬을까? 나만 그랬나? 


#미아리의추억 #극장표 #미아리극장 #미도극장 #대지극장 #아랑곡의혈투 #리사이틀 #동시상영

류해윤_정월 설날_종이에 아크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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